과중한 부담 낮춘 개정법…‘반성’ 취지라도 소급 적용은 불가

대전도시공사, 산업단지 내 공장에 시설 부담금 부과
한 달 전 개정된 기준 적용해 달라 소송

[법알못 판례 읽기]




친환경 산업단지 내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부과하는 시설 부담금 산정 기준이 바뀌었다고 해도 이를 소급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아무리 기존 법률에 문제가 있어 이를 합리적으로 바꾼 법이라고 할지라도 소급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사건은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도시공사는 2018년 6월 대전 동구 일대에 음식료품·섬유의복·석유화학 등의 업종을 유치하는 친환경 일반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에 대전도시공사는 해당 사업 구역 내에 있는 A사에 같은 해 7월 시설 부담금 7780여만원을 부과했다. A사가 굳이 자리를 옮기거나 철거하지 않아도 친환경 산업단지 조성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설 부담금을 부과한 것이다. 시설 부담금은 산업단지 조성으로 해당 지역 내 건물 소유자가 얻게 되는 이익을 환수하는 성격이 있다.

A사는 부담금을 납부할 수 없고 설령 납부한다고 하더라도 부담금을 부과하기 직전인 2018년 6월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며 바뀐 법에 따라 시설 부담금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산업입지법은 개발 후 분양하는 총면적, 공공 시설 건설비용 등을 기준으로 시설 부담금을 산정했다. 하지만 시설물 소유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개발 방식에 따라 부담금 규모가 크게 달라져 시설 부담금이 과중하다는 이유에서 개정이 추진됐다. 개정법에 따라 부담금을 다시 산정하면 A사가 납부해야 할 시설 부담금은 3090여만원이었다.

1심 “7780여만원 부담금 적정”
1심은 대전도시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A사가 7780여만원을 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애초에 A사는 자사가 산업입지법에 따른 존치 시설물 시설 부담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사가 운영하는 공장이 대전도로공사의 산업단지 개발 사업으로 조성되는 도로·공원·녹지와 같은 공공 시설에 따라 얻는 편익도 없고 오히려 불편만 가중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사 공장은 친환경 산업단지 개발 사업 구역 내에 자리하고 그에 따라 새로 설치되는 도로와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며 “직원들은 주변 녹지와 공원을 사용해 휴식을 취함으로써 근무 역량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도시공사의 개발 사업으로 A사 공장이 얻게 되는 이익이 있으니 A사는 부담금 납부 대상에 포함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대전도시공사가 산정한 부담금 액수도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령이 변경되면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법치주의 원리와 헌법 제13조(소급입법 금지) 등의 규정에 따라 법 변경 전에 발생한 사항에 대해서는 구 법령을 적용해야 한다”며 “산업입지법 개정규정은 A사의 시설 부담금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설령 개정된 법률을 소급 적용하더라도 일반 국민의 이해에 직접 관계가 없거나 오히려 불이익이나 고통 없이 그 이익만을 증진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A사에 대해서는 개정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 “개정법 소급 적용해야”
2심은 이를 뒤집고 A사의 손을 들어줬다. 산업입지법을 소급 적용해 A사는 3090여만원의 부담금만 납부하면 된다는 취지다. 우선 재판부는 A사가 시설 부담금 부과 대상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전도시공사가 이 사건 개발 사업을 시행해 산업단지 내에 도로·공원·녹지 등의 공공 시설을 설치하는 것만으로 A사의 공장은 그 가치가 상승했다”며 “구 산업입지법의 규정 취지에 의하면 이 사건 공장 건물의 소유자인 피고에게 시설 부담금을 내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담금 액수는 개정된 산업입지법을 적용해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개발 사업의 시설 부담금이 다른 개발 사업에 비해 2배 이상 과중하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해당 법률이 개정됐다”며 “대전도시공사가 A사에 시설 부담금을 부과한 2018년 7월은 이미 개정된 산업입지법이 공포된 지 1개월 지난 시점이므로 대전도시공사도 개정된 법의 취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전도시공사가 A사에 통보한 액수는 정당한 금액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점 등을 종합할 때 법령의 소급 적용이 허용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대법 “반성 취지에서 개정됐더라도 소급 적용은 불가”
대법은 이를 재차 뒤집었다. 법령의 소급 적용은 신중히 적용해야 하며 A사는 기존대로 7780여만원의 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비록 시설 부담금이 과도하다는 이유 등 반성적인 고려에서 산업입지법이 개정됐다고 하더라도 소급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비록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법률이 개정됐다고 하더라도 기존 산정 방식이 존치 시설물 소유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개정 법령의 입법자가 해당 법령을 소급 적용하도록 하지 않은 이상 법원은 구 법령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개정된 산업입지법의 시행일인 2018년 12월 전에는 구 산업입지법을 적용해 시설 부담금을 계산해야 하고 그전에 부과된 시설 부담금에 관해 소급 적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은 “개정 법률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원심의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해당 사건을 파기 환송한다고 밝혔다.


[돋보기]
법률 소급 적용이 쟁점이었던 또 다른 사건은

소급 적용은 어떤 법률의 영향이 해당 법률이 시행되기 전의 일에도 미치는 것을 뜻한다. 한국의 헌법 13조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법 47조 등에 따르면 형벌에 관한 법률 조항이 위헌 결정날 경우 그 조항은 소급해 효력을 잃는다.

최근 법률 소급 적용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사건으로는 낙태 수술 도중 태어난 아이를 숨지게 한 의사 사건이 있다. 산부인과 의사 A 씨는 2019년 3월 서울 한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를 하는 방식으로 불법 낙태 수술을 진행했고 수술 도중 아기가 산 채로 태어나자 고의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 불합치는 헌재 심판 대상이 된 법률 조항이 위헌인 것은 맞지만 법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법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해당 법률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에 근거해 A 씨 측은 “헌법 불합치 결정은 위헌 결정이므로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형벌에 관한 법률 조항은 소급해 효력이 상실된다”고 주장했다. A 씨가 받는 혐의 중 낙태죄는 무죄가 돼야 한다는 취지였다. 2심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통해 이미 위헌 결정난 형법상 법규를 선고 시점부터 개선 입법 시까지 계속 적용하라고 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A 씨의 혐의 중 낙태죄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 역시 해당 판단을 확정지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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