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튤립 가격보다 더 오른 비트코인…차익 거래 ‘미시즈 와타나베’도 재등장
입력 2021-05-05 06:53:01
수정 2021-05-05 06:53:01
비트코인 중심의 가상화폐 질서 형성
신흥·선진국, 가상화폐 규제에 상반된 정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난해 3월 5000달러(약 550만원) 초반에 머무르던 비트코인 가격이 1년 만에 6만 달러(약 6646만원)를 넘어섰다. 수익률만 12배가 넘는다. 한 송이 가격이 1년 중산층 생활비의 10배에 달하던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가격보다 더 오를 정도로 투기 광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크게 집중받던 2017년과 현재의 차이점은 다른 가상화폐에도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가상화폐 시장으로 자금 대이동이 나타나 전통 자산 시장에 커다란 변화가 감지된다. 법정화폐 시장의 미국 달러화처럼 가상화폐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중심의 가상화폐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4년 만에 ‘미시즈 와타나베’도 재등장했다. 엔화를 차입해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일본 여성을 통칭해 부르는 용어다. 엔화로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한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매수한 후 일본에서 매도해 차익을 노린다.
가상화폐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장에 자금이 너무 많이 풀렸고 이를 회수하는 출구전략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과 같은 위험 자산도 크게 올라 대체 자산을 찾는 과정에서 가상화폐의 매력이 재차 부상한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열광하는 것은 가상화폐 가격 움직임이 ‘냄비 속성’이 강한 국민성과 어느 정도 맞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는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 완전히 비탄력적이어서 수요가 증가해 수요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하면 가격이 급등한다. 반대의 경우 수요 곡선이 좌측으로 이동해 순간 폭락 현상이 발생한다.
신흥·선진국, 가상화폐 규제에 상반된 정책
가상화폐 열풍이 호기심에서 출발해 조만간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던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방치하기에는 가상화폐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비트코인 거래액은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넘어섰다. 테슬라 등은 자사 제품의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것을 선언했고 가상화폐 관련 금융 상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동시에 위기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2017년 6월 이더리움 가격과 9월 영국의 비트코인 펀드가 95% 정도 폭락하면서 나타났던 ‘마진콜(증거금 부족)’과 ‘드로다운 로스트(대손실)’가 최근에도 또다시 발생했다.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발 사태에서 재확인된 것처럼 마진콜이 발생하면 이에 응하는 ‘디레버리지(기존 자산 회수)’ 과정에서 다른 시장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가상화폐발 금융 위기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한 국가의 문제가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각국의 대응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각국 정부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신흥국은 적극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특히 한국 정부는 가상화폐 대책에서 청소년 거래 금지와 시세 차익에 대한 과세,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등과 같은 강력한 카드를 꺼냈다.
반면 선진국은 신흥국 만큼의 큰 규제까지는 실시하지 않을 모양새다. 미국은 달러화와 충돌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지만 크게 규제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는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대책이 다른 방향성을 보이는 것은 가상화폐가 갖고 있는 양면성 때문이다. 투기 광풍과 금융 불안 등과 같은 부정적 측면을 우려해 신흥국은 규제에 나선다. 반면 선진국은 4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가상화폐의 핵심 기술에 주목했다.
블록체인은 블록을 잇따라 연결한 모임을 뜻한다. 블록에는 일정 기간 가상화폐 거래 내역이 담긴다. 이를 체인으로 묶은 것처럼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한다. 모든 정보를 슈퍼컴퓨터(서버)에 저장해 해커의 공격이나 예기치 않은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JP모간 등 글로벌 투자은행에서부터 월마트와 같은 유통사, 세계 최대 해운사인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을 상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신흥국이 단기적으로 규제에 나서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진국의 움직임을 따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상화폐, 화폐 역할 수행할 수 있을까
가상화폐의 미래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논쟁이 있다. 과연 화폐가 될 수 있는지 여부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비트코인이 달러보다 낫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반면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은 수표를 만드는 종이에 가치가 있다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가상화폐가 화폐가 되기 위해선 거래 단위와 가치 저장 기능, 회계 단위 등의 본래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 요건이 갖춰진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보편적 화폐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공식적으로 기존 화폐를 가상화폐로 대체한다는 개혁이 단행돼야 한다.
분명한 것은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를 가지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현금의 저주’ 단계에까지 접근했다.
통화 정책의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해 통화 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상화폐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통화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가상화폐를 누가 발행하느냐와 어느 단계까지 발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중앙은행의 금리 조절 능력 등을 집중 검토하고 있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