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설계 ‘M1’ 칩 탑재한 애플…반도체 산업의 ‘뉴 노멀’ 온다

빅테크 기업, 범용 대신 자사 제품에 최적화된 칩 개발 추세…구글·아마존·테슬라도 가세

[테크 트렌드]

2020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본사에서 열린 애플파크 신제품 발표 행사. 이날 애플은 자체 개발한 M1이 탑재된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를 공개했다.


애플은 4월 21일 5세대 아이패드 프로 모델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된 아이패드 프로는 초고속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 칩 지원과 12.9인치 레티나 디스플레이(Liquid Retina XDR)를 갖춘 최상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화려한 제품 성능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아이패드 프로에 탑재된 반도체 칩이 애플이 자체 설계한 ‘M1’ 칩이라는 것이다.

정보기술(IT) 리뷰 전문 매체인 씨넷(CNET)은 ‘애플의 2021 아이패드 프로는 M1 기계다(Apple’s 2021 iPad Pro is an M1 Machine)’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아이패드 프로를 소개하고 있다. 도대체 M1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애플, 자체 개발 반도체 팁 탑재

M1 칩은 애플이 2020년 자체 개발한 컴퓨터용 시스템 반도체 칩이다. 시스템 반도체이다 보니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시스템메모리(RAM)·신경망처리장치(NPU) 등이 하나로 통합되고 작은 크기와 전력 효율성이 중요한 맥(Mac) 시스템에 최적화돼 있다. 트랜지스터가 무려 160억 개, CPU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코어(Core)가 8개, 최대 40% 빨라진 GPU, 저전력 칩 탑재에 애플 뉴럴 엔진(Apple neural engine)을 통한 혁신적인 기계 학습 성능을 제공한다. 보통 애플 아이패드 프로에는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사용하지만 이번 제품에는 PC와 동일한 칩셋이 탑재됐다.

애플이 반도체 칩을 설계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 M1이 처음은 아니다. 아이폰 A6부터 애플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 칩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용 A 시리즈뿐만 아니라 맥북용 M 시리즈 반도체를 자체 설계해 자사 제품에 이용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애플은 2005년부터 협력 관계를 맺어 오던 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 기업(IDM) 인텔과 결별하며 탈인텔을 통해 새로운 반도체 사업 생태계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암(ARM) 기반의 맥 컴퓨터용 칩 3종을 개발 중이고 퀄컴 칩을 대체한 자체 5G 모뎀 칩과 자율주행차용 AI 반도체 칩도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회사는 애플만이 아니다. 최근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변화로 반도체 설계 관련 전문 업체들의 기술을 이용해 자사 제품에 최적화된 자체 칩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술(big tech) 기업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초부터 40년 넘게 인텔과 소위 ‘윈텔 동맹’을 이뤄 왔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자체 프로세서 개발을 선언하고 나섰다. 반도체 산업의 뉴 노멀(new normal)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경쟁력 제고 및 기존 사업자에 대한 의존도 탈피 등 몇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기존 범용 반도체보다 더 높은 성능과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기존 범용 반도체는 말 그대로 범용성은 뛰어나지만 최근 데이터 학습과 추론 등 인공지능(AI)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특정 용도에 적용하기에는 비효율적이다. 특히 전력 소모와 발열이 많은 범용 반도체인 GPU 대신 높은 연산 성능과 적은 전력 소모가 특징인 주문형 반도체(ASIC)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주문형 반도체 설계와 생산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글로벌 거대 기업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용 주문형 반도체 칩인 AI 반도체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2015년 기계 학습에 최적화된 텐서플로(TPU)를 오픈 소스로 공개했고 2021년 가을 차세대 스마트폰 ‘픽셀 6’에 삼성과 함께 화이트채플(Whitechaple)이라는 모바일 AP를 자체 개발해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도 자체 인프라 병목 현상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트워크 스위칭용 칩을 개발 중이다. 아마존은 이를 위해 2015년 3억5000만 달러(약 3900억원)에 이스라엘 반도체 칩 제조회사인 ‘안나푸르나 랩스(Annapurna Labs)’를 인수했다.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도 완전 자율주행차에 쓰이는 FSD(Full Self Driving)라는 시스템 반도체 칩을 자체 생산하고 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차 개발 초기에는 모빌아이와 엔비디아의 칩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성능 측면의 문제로 자체 개발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의 FSD는 현재 2019년 출시된 테슬라 모델 S와 X에 탑재돼 있다.

2020년 11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본사에서 열린 애플파크 신제품 발표 행사. 이날 애플은 자체 개발한 M1이 탑재된 맥북 에어와 맥북 프로를 공개했다.


자체 AI 반도체 칩 개발 확산

이러한 글로벌 기업들의 자체 반도체 칩 개발 움직임은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메타버스가 본격화되면 전개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메타버스가 확산되면 대용량 데이터 처리와 연산이 필요해 고성능 프로세서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3D 실시간 몰입형 메타버스를 구현하려면 고용량·고성능·저전력 반도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가상 객체에 대한 이미지 합성(rendering), 증강현실(AR)에서의 물리적인 스캐닝, 위치·방향·거리 구현 등을 위한 연산 작업이나 영상 저장 공간 확보 등을 위해서는 고성능 반도체가 필수적이다.

최근 영국의 조사 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은 가상현실(VR)과 AR 관련 반도체 칩의 시장 규모가 연평균 23% 성장해 2026년에는 77억 달러(약 8조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어 메타버스에 따른 반도체 시장의 성장 전망은 밝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칩셋 기업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VR·AR에 최적화된 반도체 칩을 개발하거나 관련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있다. 대표적 칩셋 설계 회사인 퀄컴은 VR에 최적화된 스냅드래곤 865 XR2를 개발했고 AMD도 VR용 60GHz 무선 칩 기술을 보유한 니테로(Nitero)를 인수한 바 있다.

AR·VR 기기와 서비스 개발 글로벌 기술 기업들도 기존 범용 반도체 칩 외에 성능 향상을 위해 자사 서버와 제품에 적합한 자체 칩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AR·VR 단말은 발열, 전력 소모, 연산 속도에 민감해 범용 칩보다 특정 용도의 주문형 시스템 반도체 칩을 별도로 탑재해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VR 글라스인 홀로렌즈2에 2017년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칩을 탑재했다. 페이스북도 자사 VR 헤드셋인 오큘러스 퀘스트2(Oculus Quest 2)에 자체 개발 칩셋을 탑재했고 삼성과 AR 글라스용 AP 생산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조만간 AR 글라스를 내놓을 예정인 애플은 AR 글라스에 5G 지원 A14 칩을 탑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자 AI와 자율주행차, 나아가 메타버스 등 미래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이러한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최근 글로벌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그로 인한 비대면 환경에서 전반적인 IT 서비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 부족이 일어나고 있다. 출시 3개월 만에 100만 대를 돌파한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 2’는 반도체 공급 부족이 아니었다면 1000만 대는 팔렸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5G 분야에서 중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던 미국은 2021년 들어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 생태계 구축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삼고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CPU 시장을 지배해 왔던 인텔도 20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대규모 파운드리 사업에 다시 진출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선도 기업이지만 부가 가치가 뛰어난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가 AI 반도체를 육성하기 위해 향후 10년간 1조원이 넘은 예산을 투입해 향후 AI 반도체 강국이 되겠다는 계획을 천명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변화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미래 반도체 수요와 경쟁 구도 변화에 맞는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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