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리스크 공개 압박하는 금융회사…‘TCFD’가 주류화 이끈다

자발적 참여 독려 넘어 강력한 표준으로…중소·중견기업도 예외 될 수없어

[ESG 리뷰] ESG 환경 강좌

금융위원회는 2020년 8월 정부서울청사에서 녹색 금융 추진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진행했다.


녹색 금융 붐이 일고 있다. 필자가 겪은 둘째 녹색 바람이다. 2010년으로 기억한다. MB 정부의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 기조에 녹색 금융이 포함돼 있었고 환경 컨설턴트로서 금융회사에 녹색 투·융자를 할 수 있도록 환경 정보를 잘 정리해 제공하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때 은행·자산운용사·보험·증권 등 금융회사의 속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고 금융 감독 기관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산업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정책과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 녹색 금융의 선두 주자로서 앞장서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하는 금융회사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기업의 환경 정보가 금융회사에 유의성을 갖기 위해서는 환경 제재를 받았을 때 또는 환경 우수 기업이 시장에서 경제적 성과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안타깝게도 환경 법규를 준수하지 못한 사업장이 일정 기간 폐쇄 조치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안정적으로 여신을 추진하고 있었다.

녹색 금융이 국제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가 녹색 금융을 환경 개선과 관련된 상품·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해 저탄소 녹색 성장을 지원하는 활동과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에 자금 공급을 차단하는 활동 등으로 정의하면서다. 한국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 제28조 저탄소 녹색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 상품 개발, 기반 시설 구축 사업에 대한 민간 투자 활성화, 녹색 경영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때도 UNEP FI에서 중요하게 정의한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에 투자를 철회하는 내용은 한국의 녹색 금융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기후 리스크에 더 민감해진 금융회사

그 후 10년이 지났다. 2019년 제3차 녹색 성장 5개년 계획 수립에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녹색 금융 인프라 구축이 중점 과제에 포함돼 있었고 10년 전 모습과 다르지 않게 녹색 투자 5조원, 환경 정보 금융회사 제공 등으로 초안이 제시됐다. 글로벌 금융회사의 탈석탄 투자 기조가 강했고 기후 리스크를 고려한 투자 지침이 연이어 발표됨에도 불구하고 금융 당국은 “금융도 산업이다, 변화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금융회사가 석탄 투자 강국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한 상황으로 느껴졌다. 정작 한국의 금융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기후 리스크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유럽과 미국 등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산업 생태계의 혁신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동시에 최근 잦아진 폭염·폭설·태풍 등 이상 기후 현상은 많은 인명 피해를 낳고 있고 경제 시스템을 마비시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은행과 보험사 등 많은 금융회사는 투자 자산에 대해 급격한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금융계의 국제기구라고 부를 수 있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는 2020년 1월 기존의 정책(탄소세 등)만으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부족하고 중앙은행의 과감한 개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또 기후 변화 재무 리스크 식별 방법론을 구상할 것을 요구했다. 그전에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 요청에 따라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기후 변화 정보를 토대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의 기후 변화 관련 재무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TCFD(Task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권고안을 발표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기후 변화 관련 지배 구조, 전략, 위험 관리, 지표와 감축 목표 등 위험과 기회 요인을 파악할 수 있는 폭넓은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기후·환경과 관련해 수많은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넘치고 있지만 대부분이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규제에 민감한 한국 산업계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법하다. 하지만 금융 관리 감독 기구로부터 태생한 TCFD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2021년 2월 기준 총 1755개 글로벌 기관이 TCFD 지지를 선언했고 그중 859개가 금융회사로 조사된 바 있다. 금융회사가 TCFD에 참여한다는 의미는 다른 제조 기업이 참여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즉 금융회사의 투자 자산에 대한 기후 변화 위험과 기회를 파악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 때문에 TCFD는 기후 변화를 재무 영역에 통합하는 활동을 주류화한 가장 강력한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도 10대 지속 가능 금융 액션 플랜을 발표했다. 그중 첫째가 지속 가능한 투자 분류 체계 구축(taxonomy)이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니 녹색 금융 투자 대상을 정의한 분류 체계가 아니었다. 녹색 경제 활동 분류 체계였다. 녹색 산업 이외에도 일반 경제 활동 중 넷제로에 도움이 되는 경제 활동을 포함하고 있었다. 중요한 6가지 원칙이 제시됐는데,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에 기여해야 하며 순환 경제, 환경 오염, 수자원 보호,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제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가령 생태계를 위협하는 형태로 설치되는 태양광 발전소는 녹색 경제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당연한 가이드라고 생각했다. 기후 환경 정책 내에서도 많은 상반된 기준과 중요도가 있다 보니 시장의 혼선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양한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우선 글로벌 투자 기관으로부터 기후 변화 관련 정보 공개를 요구 받을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정보 공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 위험의 경우 이를 어떻게 감소시켜 나갈 것인지 계획이 함께 담겨야 하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변화를 고민할 수도 있게 된다. 반대로 혁신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 또는 재생에너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기존과 다른 비즈니스 기회를 맞게 된다.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 중소·중견기업일지라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예외는 아니게 된다. 모기업으로부터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요구받게 되며 재생에너지 도입이나 친환경 기술을 요구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상하는 정책 금융 역할론…녹색금융공사 설립될까

저탄소 사회, 에너지 전환 사회를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현실에서 녹색 금융의 핵심적인 역할은 민간 금융 보다 정책 금융의 역할이 더 크다고 본다. 안정화되지 않은 녹색 산업과 녹색 기술에 대한 투자 안정성을 담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간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투자를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녹색금융공사 설립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융의 속성은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산업·기술·금융이 3박자를 이루기 위해서는 투자 대상 산업이 예측 가능한 상황이 돼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기후 환경 정책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산업 생태계가 불안전한 상황이 된다면 민간 금융과 정책 금융 모두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다.

기후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을 수도 있다. 배출권거래제, 탄소세 등 각종 규제 수단을 동원했지만 온실가스 감축 성과는 미미했고 기후 위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기후 위기는 곧 경제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녹색 금융이 확산됐으면 한다. 녹색 금융으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 체제하에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여기에서 언급한 제도적 시스템이라는 것은 금융 당국의 금융회사에 대한 기후리스크 관리 감독 규정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 부분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녹색 금융 담당 부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것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해 여러 민간 금융회사가 녹색 금융에 동참하는 기사를 봤다. 작년 11월 국민연금은 2년 내 자산 50%를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반영한 자산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몇 %를 고려하겠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고려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몇 %를 고려했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고려해 어떤 결과를 가져왔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결국 금융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하는 하는 척만 하지 말고 진지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기를 당부한다.

이한경 에코앤파트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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