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덫’에 빠져 생각이 굳어버리면 망한다 [박찬희의 경영전략]

하루에 2%만 더 노력하면 100일엔 2배의 노력이 쌓여…한 번 더 생각하고 부딪쳐야

[경영 전략]



경영학 책에는 창의와 혁신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훌륭한 회사와 경영자의 얘기들이 나온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늘 하던 일도 제대로 못해 망하는 회사가 무수히 많고 황당한 일을 창의와 혁신이라고 우기다 더 빨리 망하는 경우도 흔하다.

경영 전략이나 조직 이론 분야에는 창의와 혁신의 성공 사례 못지않게 변화의 어려움과 그 속사정을 설명하는 까칠한 연구들이 있다. 성공한 경영자의 영웅담은 학문 세계와 미디어 생태계의 현실과 맞물려 부풀려지고 실패한 얘기는 별 볼일 없는 회사, 어리석은 경영자의 잘못으로 치부돼 잊혔을 뿐이다.

새로운 것을 찾아 공부하는 것은 원래 괴롭고 힘들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불확실한 세상을 읽어 기회를 찾고 기존의 사업 내용과 일하는 방식, 여기 얽힌 이해관계를 넘어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남들이 괴롭고 힘들어 못할수록 제대로 해내면 경쟁에서 이기고 사업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남보다 하루에 2%를 더 노력해 한 번 더 생각하고 난관에 부딪치며 답을 찾다 보면 100일이 지난 후에는 2배의 노력이 쌓이게 된다. 이것이 계속 더해져 경영자의 능력과 경험이 되고 구성원과 사업 파트너들의 노력과 연결돼 더욱 강력한 자산이 된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면 미래를 잃는다

M사는 ‘외장 하드’라고 불리는 데이터 저장 장치를 개발해 중견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같이 소형 모터를 전원에 연결해 구동하는 ‘하드 톱’ 방식의 외장 하드는 속도와 안정성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해 왔다.

특히 Q 사장이 직접 개발한 고유의 절전형 구동 장치는 핵심 기술로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업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데이터를 네트워크로 가상 공간에 저장하는 클라우드 서비스의 확산뿐만 아니라 더 빠르고 용량도 큰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기반의 저장 장치가 등장한 것이다.

M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변화를 내다보고 사업 모델을 바꿀 기회가 있었다. 기존의 사업 기반을 활용해 컴퓨터나 모바일 주변 기기로 사업을 전환할 수 있었고 외국산 SSD 저장 장치의 유통에 나설 수도 있었다. 이점에 착안해 회사를 적절한 값에 매수하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M사의 Q 사장은 성능과 효율이 더 좋은 하드 톱 외장 하드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값을 충분히 낮추면 시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SSD의 발전으로 M사의 제품은 휴대용 메모리와 경쟁하는 처지가 됐고 초소형 외장 하드를 개발한다고 나섰다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빠졌다.

Q 사장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한 나머지 같은 방식을 고집하고 비슷한 답을 찾으려는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진 셈인데, 실패를 복구하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서는 ‘실패의 덫(failure trap)’까지 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기존의 강점에 집착해 한때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 전략의 발을 묶는 ‘경직성(core rigidity)’의 원인이 된 것이다. 컴퓨터와 TV가 스마트폰으로 들어가고 머지않아 자동차가 하늘을 날게 될 세상에서 특정 사업 모델에 국한된 강점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핵심 역량이나 찾으며 한 우물만 파면 망하기 딱 좋다는 얘기인데, 그럴수록 경영자는 사업 생태계 전반의 변화를 늘 살피면서 다양한 분야에 걸친 실험적 노력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사업 모델은 돈과 노력이 드는 데다 잘된다는 보장도 없다. 변화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따라오지 않으려고 한다. 큰맘 먹고 나서도 투자자들의 반응이 부정적이다. 기존의 이해관계에 얽매인 경영자가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믿어주지 않고 더 잘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자를 찾기 때문이다. 미래의 비전을 보이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증명하는 사람만이 이런 어려운 도전을 해낼 수 있다.

달라진 세상을 읽는 색다른 시선

1980년대 소규모 토건 회사에서 시작해 한국의 신도시 개발 붐을 타고 크게 성공한 K 회장은 자신의 세상에 대한 안목과 경영 능력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이나 관련 인허가 과정에서 ‘핵심 실세’를 찾아내 사업을 만들어 낸 얘기는 회사 안팎에서 신화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각종 개발 사업에서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 요로의 내락을 받은 일들이 부정적인 보도 한두 개로 연기되더니 예전 같으면 힘 있는 분들과 얘기하면 쉽게 해결되던 환경이나 노동, 문화재 관련 민원이 고소·고발로 이어져 법정에 서기도 한다.

K 회장의 성공은 그의 능력도 있지만 마침 준비된 시점에 운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달라진 세상을 읽지 못하면 그의 운은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핵심 실세를 찾아내 돌파하던 그의 방식은 달라진 세상에선 무력하다.

다양한 집단이 나름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주장하고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정서와 이익이 증폭돼 반영되는 ‘정치적 과정(political process)’에서 ‘정부 요로’의 재량권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다소 힘센 실세가 있어도 그의 은밀한 지시가 먹힌다는 보장이 없다. 직접 일하는 사람들도 복잡한 정치적 과정에서 자기 주장이 있는 데다 평생을 보장해 줄 수도 없으니 조금만 모호한 부분이 있어도 발을 뺀다.

일이 안되게 할 힘은 곳곳에 있지만 예전처럼 무리한 일도 풀어 줄 힘은 어디에도 없다. K 회장과 친구들은 여전히 핵심 실세를 찾고 직원들도 각종 매체의 기사들을 근거로 “XX가 실세”라고 보고하지만 사실 그런 기사들은 ‘막후 실세’를 찾는 독자들의 정서에 부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K 회장은 하루빨리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읽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깊이 알아보고 멀리 내다보는 노력, 특히 막연하게 갖고 있는 생각의 틀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노력을 ‘더블루프 러닝(double-loop learning)’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대학원이나 법학대학원 입시에서 비판적 사고를 높은 비중으로 보는 것은 세상이 바뀌어도 언제든 그 핵심을 이해하고 판단을 내리는 기초 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인데 쉽게 업그레이드하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장착할 수 있는 운영체제(OS)를 가진 컴퓨터를 가려내는 셈이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정보 판단과 예측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신문을 보면서 사건의 원인과 전개를 다각도로 추론해 보고 기사에 나오지 않는 이면을 알아봤다고 한다.

좋은 학교를 나와도 생각의 틀이 탄탄하지 못해 여기저기 주워들은 조각 지식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얼치기 경영자와 대비되는데 무작정 교과서를 외우고 객관식 시험 족보를 구해 학점을 때웠는지도 모르겠다.

깊이 알아보고 멀리 내다보는 노력이 쌓이면 같은 정보, 같은 경험으로도 다른 세상이 보인다. 그래서 사업의 규모와 수준이 달라지면 접하는 세상이 달라져 정보와 경험의 폭이 더욱 커진다.

하지만 달라지는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려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만만치 않은 사람들과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는 경영자의 일상에서 세상에 대한 치열한 사색을 이어 가려면 남다른 에너지가 요구된다. 쓸데없는 일에 부지런 떨며 트집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못난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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