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농업서 유니콘 나온다’...애그테크에 베팅한 토종 사모펀드
입력 2021-05-04 06:54:02
수정 2021-05-04 06:54:02
IMM이 투자한 팜에이트 7년새 7배 성장…내년 상장 발판으로 글로벌 키 플레이어로 도약
[스페셜 리포트]전 세계 자본이 ‘애그테크(agtech : agriculture technology)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농업과 첨단 기술이 융합된 스마트 팜은 각국의 미래 산업으로 각광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면서 ‘식량 전쟁’ 역시 본격화될 조짐이다. 차기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인 스타트업)을 찾는 투자자들은 미래 산업의 꽃이 될 스마트 농업의 키 플레이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중심에 토종 사모펀드 IMM인베스트먼트와 K스마트 팜의 대표 주자 팜에이트가 있다.
2014년 3월 토종 사모펀드인 IMM인베스트먼트는 IMM AG 벤처펀드를 통해 새싹 채소 재배와 샐러드 유통 업체인 ‘미래원(현 팜에이트)’에 30억원을 투자했다. IMM인베스트먼트의 농업 부문 첫 출사표였다.
그로부터 7년 후인 2021년, 팜에이트는 스마트 팜 기술력을 바탕으로 채소 재배와 샐러드 유통 사업은 물론 스마트 팜 설비와 판매를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의 최초 투자 당시 100억원대에 불과했던 매출은 올해 700억원대를 바라보고 있고 내년 말을 목표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어떻게 일찌감치 팜에이트의 가능성에 주목했을까.
IMM, 한 수 앞을 내다본 장기 투자
“보다시피 전부 새파랗죠. 노지에서는 햇볕을 많이 받아 채소의 끝이 누렇게 돼요. 여기에선 완벽하게 컨트롤된 상태로 자라죠. 개별 채소가 가진 고유의 맛과 색깔이 그대로 올라오는 거예요. 팜에이트의 기술력이죠.”
경기도 평택에 있는 팜에이트 본사에서 4월 25일 만난 구대윤 IMM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최첨단 밀폐형 식물 공장(인도어 팜) 시설을 내려다보며 이같이 말했다. 구 상무는 2014년 IMM인베스트먼트가 팜에이트에 투자할 당시 대표 펀드매니저로, 7년째 팜에이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지상 5m 규모의 인도어 팜 시설에 대해 “1개 층만 해도 노지 대비 40배의 집적 효과가 있는데 2개 층은 단위 면적 대비 80~100배의 집적 효과가 있다”며 “이 식물 공장 안에서 공기·온도·습도·이산화탄소(CO₂)·발광다이오드(LED)광 등 재배 요소를 전부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 상무가 자랑하는 팜에이트의 식물 공장은 외부와 차단된 시설 내에서 빛·온도·습도·CO₂·배양액 등의 환경 조건을 인공으로 제어해 작물을 계절에 관계없이 연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스마트 팜 시스템이다. 특히 팜에이트의 ‘4세대 재배 랙(RACK)’이라고 불리는 재배 시설은 여러 개 선반을 6층 내지 12층으로 쌓아 올릴 수 있어 1개 선반에만 작물을 재배하는 것보다 6배 내지 12배 생산성이 높다. 수직으로 쌓아 올리기 때문에 ‘수직 농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 상무는 “2010년 타사의 재배 시설도 써 보고 1세대에서 4세대로 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지금은 이 하드웨어를 제삼자에게 서비스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중동과 동남아와도 수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팜에이트지만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은 아니다. 팜에이트의 박종위 회장과 강대현 사장이 2004년 말 당시 웰빙 열풍에 새싹 채소 유통으로 시작한 사업은 2005년 말 새싹 채소를 생산하며 큰 변화를 겪게 됐다. 날씨와 병충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 팜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스마트 팜은 농사 기술에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최적의 생육 환경을 자동 제어하는 ‘지능화된 농장’을 의미한다. 경험과 감각에 의존하는 기존의 전통 농장과 달리 센서와 데이터에 기반하는 미래 농장이다.
박 회장과 강 사장은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 팜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기 평택에 공장 부지를 매입해 설비를 갖추고 사업 확장에 나섰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스마트 팜을 운영하기엔 자금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 IMM인베스트먼트가 벤처캐피털(VC)펀드를 통해 자금을 댔다. 2014년 IMM AG 벤처펀드를 통해 보통주에 약 30억원을 최초로 투자했다. 이후 2016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162억원을 투자하며 최대 주주(현재 49% 지분 유지)로 올라섰다. 스마트 팜의 성장 가능성에 기댄 장기적 투자였다.
IMM인베스트먼트의 판단은 적중했다. 팜에이트는 IMM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주요 거래처로 홈플러스·롯데마트·코스트코 등 대형 마켓과 쿠팡·SSG 등 대형 온라인몰, 서브웨이·KFC·버거킹 등 주요 프랜차이즈, GS25·CU 등 편의점을 뒀다. 실상 팜에이트란 기업은 몰라도 팜에이트가 생산한 채소는 먹어 봤다고 가정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9년까지 스마트 팜을 활용해 채소를 재배하고 샐러드와 원물을 공급해 성장한 팜에이트는 2020년부터 투자 자금과 고도화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스마트 팜 설비를 공급해 사업 분야를 다변화했다. 서울 지하철 역사 5곳(상도·을지로3가 등)에 서울도시철도공사와 ‘메트로 팜’을 선보였고 2020년 말에는 남극 세종기지에 컨테이너형 스마트 팜을 공급했다. 두드러진 사업 성과에 2020년 3월 KDB산업은행(50억원), 신영젠티움신기사조합(28억원), 킹고투자파트너스(15억) 등으로부터 100억원대의 증자를 완료해 상장 전 지분 투자(pre-IPO)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유상 증자 후 기업 가치는 약 900억원으로 뛰었다.
스마트 농업, 달라진 패러다임
불과 7년 전 1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한 회사가 성장 가도를 달린 것은 농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주효했다. 농업의 첨단 산업화로 스마트 농업이 부상하면서 농업과 첨단 기술을 융합한 다양한 신산업에 무한한 기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른바 농업에 기술을 더한 ‘애그테크(agtech)’다.
애그테크는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 문제 해결, 기후 변화에 따른 식량 생산 감소와 병충해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로 글로벌 공급망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식량 자급자족을 위한 각국의 식량 안보 전쟁이 시작된 것도 애그테크의 성장을 부추겼다.
강대현 팜에이트 사장은 “최근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기존의 농작물 재배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며 “코로나19가 만연되며 국가 간 식량 서플라이 체인이 무너진 것 또한 스마트 팜이 전 세계적 화두가 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조민서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농식품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농업 인구 감소와 지속 가능한 농축 산업에 대한 의식이 제고되면서 현대 농축 산업의 대안으로 첨단 기술이 융합된 애그테크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그테크 시장 성장세에 사모펀드·벤처캐피털·액셀러레이터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애그테크 투자 열기는 그야말로 뜨겁다. 글로벌 투자 관련 시장 정보 업체인 피치북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애그테크 관련 기업으로 해마다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PE·VC·액셀러레이터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투자자가 애그테크 분야 기업에 투자한 건수는 연평균 24.5% 수준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9년 한 해만 보더라도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 건수는 495건으로, 2010년 69건의 약 7배 이상에 달한다. 특히 미국·중국·일본의 투자 규모가 가장 크다. 미국과 일본은 민간을 중심으로, 중국은 국가를 중심으로 대단위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10년대 초와 비교해 최근 들어 애그테크 투자가 더욱 활발해진 것은 ‘글로벌 키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며 산업의 경제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 상무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관련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 몇몇 기업들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 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그린 프로젝트와 애그테크 산업이 맞물리며 정책적 지원은 물론 투자자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에어로팜스, 미국의 플랜티 등 수직 농장 시스템을 영위하는 애그테크 기업들이 대표적인 키 플레이어다. 미국 뉴저지 주의 한 오래된 제철소를 매입해 대형 수직 농장을 건설한 에어로팜즈는 골드만삭스와 푸르덴셜금융과 같은 금융회사에서 유치한 3400만 달러(약 395억원) 투자금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실내 수직 농장을 세웠다.
삼정KPMG는 ‘스마트 농업과 변화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란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투자자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지 않고 농업생명공학, 실내 수직 농업 솔루션 등의 신규 농업 시스템 관련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에 투자하며 폭넓은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서고 있다”며 “애그테크로의 투자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투자자들이 관련 분야에 투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사모펀드 운용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주요 투자자들은 한국 농업 법인을 주요 투자처에 올리고 물색 작업에 한창이다. 첫 시작이 바로 IMM인베스트먼트와 팜에이트의 만남이다. 2014년 IMM인베스트먼트가 농업펀드를 조성해 팜에이트에 투자한 이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앵커에쿼티파트너스·KDB산업은행 등이 한국 농업 법인에 투자했다.
이를 기반으로 팜에이트와 만나CEA 등이 2022년 주식 시장 상장을 도모하고 있다. 조민서 애널리스트는 “팜에이트와 만나CEA를 시작으로 스마트 팜 관련 기업 상장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자생력이 높고 국내외로 경쟁력을 갖춘 업체가 육성된다면 비상장은 물론 상장 시장에서도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MM인베스트먼트는 한국의 팜에이트가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성장의 고삐를 당기겠다는 계획이다. 제1 목표는 글로벌 톱 스마트 팜 기술 선도 업체로 도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2022년 하반기를 목표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IMM인베스트먼트는 팜에이트가 상장하더라도 최대 주주로 남아 회사의 해외 진출과 신규 사업을 견인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몽골·싱가포르·일본 등 주요 수출 거점 국가를 기반으로 아시아 시장 내 점유율을 확대하고 이후 북미·유럽의 스마트 팜 선진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을 다지고 있다. 실제 팜에이트는 자체 기술력을 무기로 현재 중동·동남아 업체들과 긴밀하게 수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고 곧 성과를 발표할 것으로 기대된다. 구 상무는 “생산 재배 중량과 가격 경쟁력에서 글로벌 상위 업체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다”며 “최근 들어 팜에이트의 기술력이 세계적 최고 수준이 됐다는 내부적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마트 팜 선도업체로 발전하기 위해 단기적인 영업이익 달성보다 시장점유율을 선점해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K스마트 팜’의 장래를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 또한 요구된다. 현재 정부는 스마트 팜을 혁신 성장 핵심 선도 사업의 하나로 선정하고 2019년부터 4개 거점 지역에 스마트 팜 혁신 밸리를 조성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는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는 애그테크 전쟁에서 ‘K스마트 팜’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강대현 사장은 “스마트 팜에 많은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지만 수직 농장 등 세분화된 분야에는 아직 체계적인 지원이 없다”며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