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덴티티,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까

저작권법 개정안에 ‘초상 등 재산권’ 조항 신설…퍼블리시티권 명시 여부 촉각

[지식재산권 산책]

바나 화이트가 문제를 제기한 삼성전자의 광고. /구글이미지


유튜브·인스타그램·틱톡 등의 매체는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젖혔다. ‘좋아요’가 늘어날수록, 또 ‘구독’과 ‘팔로워’가 늘어날수록 자신의 경제적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누구나 성명·초상·목소리 등 자신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상품화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사람의 성명·초상·목소리 등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가 갖는 재산적 가치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퍼블리시티권’이라고 한다.

퍼블리시티권은 미국에서 본래 프라이버시권의 영역에서 보호하던 개인의 성명·초상 등에 관한 권리가 ‘성명·초상 인격권’과 ‘성명·초상 재산권’으로 분리되고 후자의 권리가 유명인이 성명·초상의 경제적 가치를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로 발전해 나가면서 정립된 개념이다.

이 같은 퍼블리시티권 개념을 우리 법체계에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찬반 대립이 있어 왔다.

최근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저작권법 전부개정법률안에는 ‘초상 등 재산권’에 관한 조항을 신설했다. 퍼블리시티권을 우리 법체계에 명시적으로 도입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은 ‘초상 등’을 사람의 성명·초상·목소리 또는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으로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유명인의 초상 등만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개정안은 한국 국민의 초상 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외국인의 초상 등에도 일정한 조건 아래 보호의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초상 등이 특정하는 사람이 자신의 초상 등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일반 공중에게 널리 인식되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초상 등 재산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권리자는 제삼자에게 초상 등의 이용을 허락하고 그 대가를 받음으로써 초상 등의 경제적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상업적 목적이 무엇인지, 일반 공중에게 널리 인식되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초상 등 재산권은 특정한 사람과 결부돼 발생하는 권리로 그 사람에게만 귀속돼야 한다. 개정안은 이러한 ‘일신전속성’을 명시하고 초상 등 재산권이 양도나 담보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로선 개정안이 통과될지 여부를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인정 여부에 관한 찬반 대립이나 법률에의 도입 논의와 별개로 퍼블리시티권은 이미 광고 모델 계약 등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이고 관련 분쟁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판례 중에도 퍼블리시티권 개념을 인정하면서 판단한 것이 있다. 결국 현시점에서는 퍼블리시티권으로 어디까지 보호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다소 오래됐지만 흥미로운 미국 판례를 하나 소개한다.

삼성전자 미국법인은 비디오 카세트 녹화기(VCR) 등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진주목걸이와 금발 가발을 한 로봇이 ‘휠 오브 포천(Wheel of Fortune)’ 게임쇼의 문자판과 유사한 문자판을 돌리고 그 하단에 ‘가장 오래된 게임쇼. 2012년’이라는 자막이 들어간 광고를 방송했다.

이에 대해 게임쇼의 여성 진행자로서 문자판을 돌리는 역할을 하던 바나 화이트(Vanna White)는 이 로봇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므로 퍼블리시티권을 침해당했다며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퍼블리시티권의 침해는 성명이나 초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이외에도 유명인의 아이덴티티를 이용하는 모든 행위에까지 확장되는 것인데, 이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혼동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바나 화이트의 손을 들어줬다.

성명·초상·목소리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의상·헤어스타일·주위 상황 등을 통해 특정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퍼블리시티권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판결에 대해서는 바나 화이트의 외모가 아니라 바나 화이트가 하는 일에 대해 독점권을 준 것으로 과도한 보호라는 강력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

문진구 법무법인(유) 세종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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