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가지 색상 실크 스카프 대성공…80년 넘게 이어져[명품 이야기]

그레이스 켈리가 든 ‘켈리백’도 전 세계 인기…한 명의 장인이 36개 가죽 조각으로 만들어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에르메스②

에르메스 최초의 스카프 ‘쥬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쉐’

3대 에밀 에르메스는 과거에 애착을 가짐과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에 대한 열정도 강했다. 따라서 그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했고 1925년 처음으로 남성용 의류와 골프 재킷을 만들었다. 에르메스는 1927년 주얼리를 선보였고 이듬해 시계와 샌들을 출시했다. 그에게는 딸 4명이 있었고 사위들에게 사업을 물려줬다.

이들 중 로베르 뒤마(사진)가 에밀 에르메스의 뒤를 이어 4대 에르메스 가업을 이어 받았다. 활동적인 여성에게 관심을 가졌던 에르메스는 군인들이 지령이나 지도를 프린트해 사용하는 제품을 1920년대부터 여성복 라인에 선보였다. 1937년 로베르 뒤마는 마들린~바스티유 간 파리 버스 노선 개통을 기념해 파리 버스와 노선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가로세로 90cm 정사각형의 ‘주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쉬(사진)’라고 불리는 실크 스카프를 최초로 만들었다.

뒤마는 당시 유명했던 실크 기술공들이 많은 리옹 지역에서 여성들을 위한 90cm 정사각형의 실크 스카프를 만들었다. 정사각형을 프랑스어로 까레(carre)라고 하며 에르메스 스카프는 정사각형을 기반으로 제작돼 80년 넘게 이어져 에르메스 까레라고 불린다.

기본 스타일의 스카프는 90×90cm, 가브로쉬는 50×50cm, 숄은 140×140cm로 만들어졌고 까레 출시 70주년을 맞아 70×70cm 크기도 출시됐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1년에 두 번의 새로운 디자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일반 스카프보다 두께감이 두터운 특징이 있다. 최초의 목각판 인쇄 방식에서 1947년부터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에르메스 골프 제품 광고. 1929년


마차·경마·달 탐험 등 그 시대상 반영한 디자인 사용

특히 에르메스 스카프는 색상이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아티스트들이 7만5000색상이 넘는 팔레트에서 색상을 선택하고 하나의 스카프에 최대 48가지 색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의 색을 프린트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스크린 판이 필요하다. 스카프에 48색상이 사용됐다면 48개의 스크린이 필요하다.

최초의 까레 스카프가 대성공을 거둔 후 스카프에 삽입되는 일러스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구상에서부터 파리 사교계 모임, 여행·마차·경마·보트·항해·달 탐험 등 그 시대를 반영하는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동물과 사물, 기하학 패턴 등의 다양한 소재와 함께 자율적인 모티브를 스카프에 디자인하게 함으로써 스카프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을 탄생시켰다.

1930년대 로베르 뒤마가 디자인한 핸드백(시티백)은 미래의 켈리백이 됐다. 사다리꼴 모양의 둥근 손잡이, 양쪽의 스트랩과 회전 걸쇠로 여닫는 덮개를 지닌 가방이 바로 켈리백(사진)이다. 숙련된 커팅 기술과 직선의 기하학적인 구조가 특징이다. 이 가방은 1950년 왕비가 된 할리우드 스타 그레이스 켈리가 든 사진이 보도되면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켈리는 이 가방을 탈의실이나 또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혹은 임신한 배를 가릴 때 착용했다. 그녀의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켈리는 당시의 가방들보다 크기가 큰 편이었고 이는 변화하는 사회의 상징으로서 여성들에게 독립성을 선사했다. 에르메스는 켈리에 대한 ‘오마주(특정인 또는 작품에 대한 존경)’로 이 핸드백의 이름을 ‘켈리(Kelly)백’이라고 불렀다.

켈리백에 사용된 복스(Box) 가죽은 1920년대부터 사용된 송아지 가죽이다. 복스 가죽은 부드러운 촉감과 견고함을 지니고 있고 가방 제품에 잘 어울리는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가죽이다. ‘가죽의 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복스는 특유의 우아함, 부드러움, 광택, 둥그스름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질감으로, 눌러보면 섬세한 소리와 함께 다시 솟아올라 ‘바운스(bounce)’라고 불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표면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보면 가죽의 ‘텍스처(재료 표면의 느낌)’는 마치 그 결이 평평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한 멋을 풍기는 가죽으로, 문지르면 그 흔적과 스크래치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특징을 지녀 종종 ‘마법’이라고도 불린다.

에르메스 ‘켈리백’

에르메스, 2000여 개의 색상이 개발…계속 확대

에르메스가 설립된 이후 2000여 개의 색상이 개발됐고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색상 팔레트는 태닝 작업에서 독특한 음영과 맞춤형 광택을 위한 가이드로 쓰인다. 일부 컬러는 가죽·환경·빛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놀라운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들은 ‘카멜레온 컬러’로 불린다, 도브 그레이 또는 에토프 색상이 그 예에 해당하는데 이들은 때로는 분홍빛 회색, 때로는 어두운 보라빛이 도는 진주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라 색상의 진동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선택된 톤의 조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장 가죽 작업자가 하나의 켈리백을 구성하는 36개의 가죽 조각과 다양한 금속 부품을 박음질·접착·조립하는 데 약 15~20시간이 걸린다. 고품질의 작업을 완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각 가방은 작업대에서 한 명의 장인이 처음부터 마지막 바늘땀까지 ‘1인 1백’ 접근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박음질에는 양질의 가죽을 가르는 작업이 중요하고 그 품질은 가죽을 두세 개의 층으로 나누는 스플리팅 작업에 따라 달라진다. 양질의 가죽을 가르는 작업은 원피와 그 결함의 면밀한 분석에 달려 있다. 결국 전체 프로세스의 각 세부 단계가 상호 연결돼 결국 우수한 품질의 상호 연결을 형성하는 것이다. 에르메스 장인들은 조각 하나하나에 자기 자신을 불어넣는다.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사진·자료=her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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