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탄소 중립국으로’…1조 유로 투자하는 ‘EU 그린 딜’

탄소 배출 많은 역외 수입품에 탄소국경세 부과…회원국 포괄하는 유럽기후법 잠정 합의

[ESG 리뷰] 이슈



2019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 중립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담은 ‘유럽 그린 딜(Europe Green Deal)’을 가장 큰 목표로 제시하며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다졌다. 우르줄라 폰 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그린 딜은 기후 위기 대응책인 동시에 유럽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라며 혁신과 녹색 기술 개발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린 딜 목표를 설정한 이후 EU의 행보는 상당히 적극적이다.

EU 집행위는 4월 21일 폴란드를 제외한 EU 회원국이 유럽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 잠정 합의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합의된 기후 법안에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최소 55%까지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이용 비율을 33.7%까지 증가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990년 대비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40% 감축하기로 했던 이전 목표에 비하면 큰 수준으로 상향된 셈이다.

EU 집행위는 유엔 2030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와 파리협정에 근거해 탄소 중립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한다. 유럽 그린 딜은 온실가스·에너지·산업·교통·건물·식품·오염·생태계 등 크게 8가지 분야로 목표를 정하고 있다. 그중 온실가스를 제외하고 탄소 배출 감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는 에너지·산업·교통·건물이다.



배출권 거래제, 건설·자동차로 확대

에너지 부문에서는 기존의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새로운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동시에 철강·화학 등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의 현대화와 환경 친화적 산업으로의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노후된 건물이 많은 유럽에서는 건축도 또 다른 과제다. 건축 시 들어가는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환할지에 대한 목표치도 설정했다. 교통 분야는 EU 탄소 배출량의 2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해결해야 할 몫이 크다.

EU 집행위는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 철도나 수로를 사용한 수송 시스템 전환 지원 등을 통해 도로 수송의 에너지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현 EU 집행위는 2019년 출범 이후 유럽 그린 딜 투자 계획, 유럽 기후법 법안, 에너지 시스템 통합 및 수소 전략을 연달아 발표하며 그린 딜을 위한 신사업의 기반을 닦고 있다. EU 집행위는 정책 이행을 위해 2030년까지 최소 1조 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다.

EU 집행위의 정책 방향도 상향된 그린 딜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변화를 예고했다. 기후법 제정이 그 시작이다.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위해 투명하고 체계적인 운영을 약속한 EU 집행위는 5년마다 환경 영향 평가를 실시, 평가 결과를 법안 이행 과정에 반영할 예정이다.

기후법 이후로 큰 화두가 된 것은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의 확대와 탄소 국경세 도입이다. EU는 일찍이 탄소에 대한 규제책을 마련하고 실행해 온 만큼 탄탄하고 엄격한 탄소 배출 규제를 유지해 왔다. 역내 기업들은 자연스럽게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별도 비용을 지출해야 했고 이것은 역외 기업에 비해 불공평한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탄소 배출 규제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 단가가 저렴한 기업으로 생산지를 옮기는 등의 ‘탄소 누출’ 사례도 빈번하게 발견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탄소 배출권 거래제 확대와 탄소 국경세 도입 논의의 시작이다.



탄소 배출권은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우선 규제하는 것이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연 단위의 배출권을 각 기업에 할당해 그 범위 내에서 탄소 배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여분 또는 부족분의 배출권에 대해 기업 간 거래가 가능해 에너지 전환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 온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를 통해 별도의 수익을 창출하기도 했다.

EU는 2005년부터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해 왔고 거래되고 있는 탄소 배출량은 45%에 달한다. 현재 에너지 생산·산업물·항공편에만 적용되고 있던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건물·수송 분야로 확대할 것을 논의하고 있다. 건물이나 수송 분야로 확대되면 자동차·건설업계의 해외 진출이나 신규 사업 집행 시 고려해야 할 실질적인 규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EU 집행위가 또 다른 변화로 언급한 것은 탄소 국경세다. 탄소 국경세는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에서 배출량이 적은 국가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수출할 때 부과되는 무역 관세를 의미한다. 탄소 규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기업이나 국가에 그에 따른 페널티를 부여하겠다는 의지다. EU 집행위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EU 역내 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탄소 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EU 집행위는 탄소 국경세 도입으로 연간 50억~140억 유로 규모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예상되는 탄소 국경세의 규제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수입품 자체에 탄소세를 직접 부과하는 방식과 모든 제품에 과세한 뒤 탄소 배출이 적은 기업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EU 집행위는 늦어도 2023년 중 탄소 국경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6월 중 탄소 국경세에 대한 공식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파리기후협정에 복귀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강경한 방침을 밝힌 미국 바이든 정부 역시 탄소 국경세를 주요 통상 의제로 선정했다.

탄소 국경세에 긴장하는 세계

탄소 국경세는 무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부분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 수출 의존율이 높은 한국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석탄·발전 산업이 주요 수입원인 EU 역내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EU는 체코와 헝가리 등 석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대해 2027년까지 최소 1000억 유로(약 137조원)를 지원하는 공정전환기금을 운영하겠다는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탄소 국경세가 실제 도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먼저 EU 회원국 사이에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현재 유럽 그린 딜은 폴란드를 제외한 EU 회원국이 합의한 상태다. EU 집행위는 회원국을 지원하는 투자펀드·기금 등을 운영하겠다고 밝히며 유럽 그린 딜의 추진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EU 역외국에 대한 탄소 국경세 부과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탄소 배출량 측정을 위한 객관적인 지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기술적인 과제는 그다음 문제다. 현재 각 국가별로 상이한 기후 정책을 운영하고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탄소 국경세가 잘 이행될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는 탄소 국경세를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 어떻게 공존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특히 탄소 배출량이 많은 중국과 인도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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