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예측 AI 도입, 로봇 활용’…건설업계, 내년 시행 ‘중대재해법’ 초긴장
입력 2021-05-20 06:52:01
수정 2021-05-20 06:52:01
지난해 산재 사망자 51.9%가 건설 노동자…업계 “처벌 과도, 보완 입법 필요”
[비즈니스 포커스]“중대재해법 시행으로 현장 노동자가 안전 수칙을 위배해 발생한 개인 과실 사고도 기업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왔다.”(A 건설사 관계자)
“안전 관리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법안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경영진 처벌이라는 징벌 수위는 기업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B 건설사 관계자)
건설업계는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비상이다. 내년부터 인명 사고 등이 발생하면 사업주와 ‘최고경영책임자’까지 처벌 받을 수 있는 만큼 각 기업들이 안전 관리에 만전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법 적용 범위와 모호한 처벌 규정 등으로 시행 이후에 나타날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최고경영자(CEO)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 재해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지난해 1월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보다 처벌 수위를 높인 법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지난해 6월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올해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내년 1월부터 노동자 50인 이상 기업에 우선 적용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24년부터 시행된다.
건설업계가 중대재해법 시행에 가장 경계하는 것은 사업주와 CEO, 기업에 가해지는 징벌 수위가 너무 높다는 것이다. 노동자 1명이 숨지거나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 재해 발생 시 대부분 처벌 받는다.
처벌 수위가 매우 무거운 만큼 건설사들은 안전 관리 조직을 신설해 과거 사고 사례를 분석하고 앞으로 있을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882명) 중 건설업 노동자는 51.9%다.
재해 예측 시스템 개발 등 사고 방지 총력전
중대재해법 시행 6개월여를 앞두고 건설업계는 재해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안전신문고 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고 방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건설은 법안 발의가 준비되던 지난해 10월부터 전 건설 현장에 ‘재해 예측 인공지능(AI)’을 도입해 AI를 활용한 안전 관리에 나섰다. 작업 당일 예상되는 재해 위험 정보를 통해 선제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자체 개발한 시스템이다.
과거 10년간 수행해 온 토목·건축·플랜트 등 전체 프로젝트에서 수집한 3900만 건 이상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개발했다. 실제 발생한 안전 재해 정보와 함께 현장 내 결빙 구간에서 공사 차량이 미끄러져 전도될 위험이나 인적 없는 곳에서 공사 자재가 낙하한 사례 등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준 사고 정보까지 포함했다.
삼성물산은 현장에서도 고위험 작업으로 분류되는 ‘내화뿜칠’을 로봇에 맡겨 사고 방지에 나서고 있다. 내화뿜칠은 건물의 철골 기둥 등에 내화재를 덧칠해 높은 열에도 견딜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높은 곳에서 작업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추락 사고와 유독성 물질 노출 위험성이 높다.
대우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안전 관련 조직을 신설했다. 대우건설은 사업본부장 직속의 품질안전팀을 신설했고 안전관리자 선임 대상 확대와 자격을 강화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안전경영실을 신설하고 상무급 임원이 담당하도록 했다.
올해 1분기 한국 상위 100개 건설사 중 가장 많은 노동자 사망 사고(3건)가 발생한 태영건설은 4월 30일 ‘세이프티 퍼스트(safety first)’ 선포식을 열고 안전 관리 강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동시에 안전보건위원회를 신설해 임직원 대상 교육과 현장 안전 관리비 예산 증대, 운영 관리 재정비 등을 약속했다.
“처벌 기준 완화 등 현장과 소통 나서야”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동시에 건설업계는 모호한 처벌 규정 등을 두고 중대재해법에 보완 입법이 필수라고 의견을 모은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법을 위반하면 형사 처분을 받게 되고 규정이 모호하고 포괄적이어서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대 산업 재해 기준을 ‘1명 이상 사망’에서 ‘3명 이상 사망자가 1년 내 반복 발생’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부터 중대해재법이 시행됐다면 1~3월 사망 사고가 1명 이상 발생한 태영건설과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등은 처벌을 받아야 했다. 업계에선 1명 이상 사망이라는 법안이 현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가혹한 기준이라고 지적한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의 책임을 ‘경영책임자’에게 포괄적으로 묻는 법안 역시 개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명 사고가 발생하면 CEO뿐만 아니라 현장 관리자 등 관련 책임이 있는 다수의 인원이 일거에 처벌 대상에 올라 조사·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사고 현장뿐만 아니라 건설사 전체 경영이 마비될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C 건설사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 관리에 크게 투자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사고를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 역시 건설사 운영에 심대한 타격을 미칠 수 있어 법 시행에 앞서 정부가 현장과 충분히 소통해 법령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