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싣고 아파트 단지 누비는 ‘딜리’…자율 이동 배송 시장 매년 49.5% 성장 전망
[스페셜 리포트]“딜리, 안녕.”
경기도 수원시 광교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한낮의 더위 속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인사를 받은 주인공은 이곳 아파트 단지에서 근무하는 배달 로봇 ‘딜리’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실내외 배달 로봇 딜리가 일터로 이곳을 누빈 지 어느덧 8개월이다. 처음에는 신기한 로봇일 뿐이었지만 주민들에게 딜리의 배달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앱으로 호출하고 13분 뒤…
오후 1시. 식후 커피 한잔이 구미를 당기는 시간이다. 집 안 또는 아파트 단지 내 곳곳에 부착된 QR코드를 읽으면 배달의민족 애플리케이션(앱) 내 배달 로봇 딜리의 배송 가능 상점이 뜬다. 5월 현재 딜리가 배송 가능한 상점은 총 9개다. 이 중 커피 전문점에서 4500원짜리 음료 한 잔을 주문했다. 배송료는 0원이다. 조유리 우아한형제들 매니저는 “현재 시범 서비스하고 있어 최저 주문 금액에도 배송비가 별도 부과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3분 뒤, 상점 앞에 딜리가 도착했다. 6개의 바퀴 위에 네모상자가 달린 모양새다. ‘안녕하세요 딜리입니다’라고 적힌 몸통 위로 외부 촬영 카메라가 있다. 관제 서비스와 연결돼 모니터링 역할을 한다고 했다. 배달 상품이 준비되면 가게 점원이 이를 딜리의 몸체 안에 넣는다. 로봇이 실을 수 있는 용량은 미니 냉장고 수준인 25리터 수준이다, 최대 적재 무게는 30kg까지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하게 설계됐다. 안에는 보온·보랭 백을 설치해 최적의 온도로 배달될 수 있도록 제작했다.
가게 점원이 완료를 누르면 딜리는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딜리의 옆에는 기기당 한 명의 현장 요원이 따라붙는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한 예방 조치이기도 하지만 보행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법규이기도 하다. 정부는 시범 테스트 지역 내에서 자율주행 로봇의 규제 애로를 일부 해소하는 대신 현장 요원 상시 동행, 위험 지역에서 관제 모드로 통제, 최고 주행 속도 제한 등의 안전 조치를 조건부로 달았다.
딜리 D-17(로봇명)의 안전 요원으로 근무 중인 이원상 씨는 “이삿짐 차 등의 단지 내 차량 운행을 방해할까봐 딜리를 따라다니지만 실은 관여할 부분이 거의 없다”며 “관제에서 컨트롤하기 힘든 상황이 생기면 바로 대응하고 관제에 이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 요원 상시 동행 조건은 이후 기술 고도화에 따라 해제되거나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회 우아한형제들 로봇사업실 엔지니어는 “향후에는 안전 요원 없이 딜리만 다닐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현장에서 관제 모드로 통제할 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속 4~5km로 이동 중인 딜리를 따라 상가에서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막힘없이 움직이던 딜리는 근처에 사람이 있거나 장애물이 있으면 잠시 쉬었다 가거나 옆으로 이동해 다시 움직였다. 단지로 가는 오르막길에서는 배달을 마치고 내려오는 또 다른 딜리와 만났다. 조우한 딜리들은 인사하듯이 잠깐 멈췄다가 이내 한 딜리가 옆으로 비켜 서 각자의 길을 갔다. 딜리의 꼭대기와 하단부에 달린 라이다(물체까지의 거리 등을 측정함으로써 주변의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장치)가 주변 상황의 변화에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것이다.
커피를 품에 안은 딜리가 단지 안에 들어서자 잡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인사를 한다. “어, 배달 로봇 딜리다.”, “딜리 안녕.” 로봇이 익숙한 듯 말을 거는 모습이 신선했다. “서비스 초기에는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고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아이들이 딜리의 뒤를 쫓아다녔는 지금은 매일 보니까 다들 익숙한 듯해요.” 김광회 엔지니어는 “한 번은 어떤 아이가 꽃을 따 로봇(딜리) 위에 올려주는 것을 봤는데 인상적이었다”며 주민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딜리의 일상을 전했다.
출발한 지 5분 뒤. 딜리가 목적지인 2동 공용 현관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공동 현관이 열리고 딜리가 현관문 안으로 들어섰다. 카드키나 비밀번호 없이는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다. 김 엔지니어는 “작년 말까지는 공동 현관문 앞까지만 진입했는데 통신 기술을 고도화하고 시설 엔지니어들과 협력해 올해 초부터 현관문 안에까지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안쪽까지 들어선 딜리가 우편물 함 앞에서 대기했다. ‘딩동’ 그때 기자의 휴대전화에 알림 메시지가 떴다. ‘배민로봇 딜리가 도착했어요. 로봇 문 열기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세요.’ 메시지 창에서 ‘로봇 문 열기’를 누르고 로봇 안에서 음료를 꺼냈다. 상품 주문 후 13분, 딜리가 배달을 시작한 지 5분이 경과한 시각이었다.
일상으로 침투한 배송 로봇
배송 로봇이 우리의 일상에 침투했다. 더 이상 전시회나 미디어 속 모습이 아니다. 아파트·마트·회사 등 일상에서 배송 로봇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배송 로봇은 크게 실내와 실외로 구분된다. 실내에서는 서빙 로봇이 대개 배송 로봇 역할을 한다. 실외는 또 근거리와 장거리로 나뉘는데 장거리 배송 로봇이 곧 로봇 카, 즉 자율주행 차와 개념이 같다. 이들 배송 로봇은 실내외 영역에 따라 쓰이는 기술이 각기 다르다.
현장에서 만난 딜리는 우아한형제들이 선보인 실내와 실외가 혼합된 배송 로봇이다. 실외 주행 로봇은 실내 로봇에 비해 기술 장벽이 훨씬 높다. 자동차와 자전거는 물론 아이들이나 반려견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고 주행할 노면 및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상용화할 수 있다. 김요섭 우아한형제들 로봇사업실장은 “실외 로봇 배달 서비스는 노면·장애물·날씨·돌발 상황 등 로봇의 정상 주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실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정밀한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가 결집돼야 상용화할 수 있다”며 “배송 로봇이 식당에서 음식을 수령하고 실외 환경에서 배달하는 기술은 한국에서 딜리가 처음이고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흔하지 않다”고 말했다.
생활(서비스) 로봇에 집중하고 있는 LG전자는 지난해 말부터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과 손잡고 실내 로봇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에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자사 건물 내에서만 시범 서비스하던 것을 지난 5월 5일부터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까지 확대했다. 양 사 건물 내 자리한 GS25 편의점에서 LG전자의 실내 배송 로봇인 ‘LG 클로이 서브봇’을 통해 건물 내 고객들에게 상품을 배송하는 로봇 배달 서비스다. LG 클로이 서브봇은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간을 오가며 입주 고객들에게 도시락·샌드위치·음료 등을 배달한다. 만약 GS타워 23층에 근무하는 고객이 앱으로 GS25 상품을 골라 주문하면 편의점 근무자가 주문 제품을 로봇에 싣고 고객이 있는 층을 입력한다. 로봇은 스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당 층에 도착해 고객에게 전화와 문자로 도착을 알리는 식이다. 배송 중 도난이나 분실을 막기 위해 보안 잠금 장치가 있고 관리자가 로봇 관제 시스템을 이용해 원격으로 로봇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배송 이력 등을 관리할 수 있다.
통신사 KT는 지난 4월부터 광화문 사옥에서 근무하는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내 로봇 배달 서비스인 ‘AI 로봇 우편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기존엔 우편 지원센터 직원이 사내 직원들에게 배송 도착 알림 메일을 보내고 직원이 지원센터를 방문해 물품을 수령하는 구조였지만 AI 로봇을 통해 방문 없이 직원 각자의 자리에서 우편물을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우편 담당 직원이 우편물을 로봇에 쌓고 수령 대상자의 사무실을 입력하면 로봇이 스스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이동하는 방식이다. KT는 사내 임직원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서비스 고도화를 통해 공공 기관이나 일반 사무실 등으로 AI 로봇 실내 물류 배송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송재호 KT AI·DX융합사업무분장은 “이번 서비스로 배송 회전율을 높일 수 있고 임직원들은 손쉽게 우편물을 수령할 수 있어 업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며 “사내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AI 로봇을 활용한 실내 배송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배송 로봇 움직임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중국·유럽을 중심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한 배송 로봇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고 한정된 지역이지만 실제 운영에도 돌입했다.
글로벌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은 배송 로봇 테스트를 가장 활발하게 하는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6륜 배달 로봇 ‘스카우트’는 지난해부터 미국 일부 지역에서 테스트 운행 중이다. 고객이 앱으로 주문하면 배송지로 로봇이 이동하고 고객이 인증을 거치면 자동으로 로봇이 잠금 해제된다. 아직은 시제품이라 직원이 동행한다.
페덱스의 자율주행 배송 로봇 ‘세임데이 봇’은 4개의 바퀴와 2개의 보조 바퀴로 구성돼 있다. 평지는 물론 가파른 경사와 인도 사이 턱, 계단에서도 주행할 수 있다. 페덱스는 제휴 리테일 업체 기업의 고객을 대상으로 시범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의 스타십 테크놀로지스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배송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 내 대학 캠퍼스에 시범 운영해 누적 배달 건수가 50만 회를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대학 내 서비스 경험을 기반으로 대형 마트와 제휴를 맺고 온라인 식료품 구매에 로봇 배송을 시범 서비스할 계획이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배송로봇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시장 조사 전문 업체인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자율 이동 로봇 배송 시장이 2024년까지 매년 49.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통업에서는 소비자에게 상품이 전달되는 최종 마지막 단계를 ‘라스트 마일(last mile)’, 심지어 ‘라스트 미터(last meter)’라고 부르는데 이 라스트 마일 단계에서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발생한다. 물류 단계는 많이 자동화돼 있지만 물건을 실어나르고 소비자에게 배달하는 최종 배송 구간은 아직 인력이 대부분 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성차업계가 자율주행차에 뛰어들었지만 자율주행차량이 운전자 없이 물품을 배송하는데, 최종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물건을 전달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실상 자율주행의 실효성은 한 단계 떨어질 것이다. 이에 유통과 IT 등 수많은 기업들이 블루오션이자 대박의 장으로 통하는 라스트 마일을 잡기 위해 너도나도 배송 로봇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다.
독일의 자동차 부품사인 콘티넨탈 또한 같은 이유로 라스트 마일 시장에 뛰어들었다. 자율주행차량인 셔틀에 자율 배송 운반이 가능한 로봇을 태워 이들이 고객의 우편함까지 물품을 배송할 수 있도록 하는 시험 배송을 진행하고 있다. 바퀴가 네 개 달린 소형 로봇 ‘코리에’가 택배 물품을 전달하고 모선 역할을 하는 무인 셔틀로 다시 돌아가는 방식이다. 콘티넨탈 관계자는 “여객 운송 수요가 적은 시간에 운행 중인 셔틀은 계속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동시에 배송을 위한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배송 로봇의 일상화에는 여전히 수많은 걸림돌이 남아 있다. 5G 기술로 배송 로봇 시장에 뛰어든 SK텔레콤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활발한 기술 개발과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배송 로봇이 일상화되기까지는 아직 많은 허들이 존재한다. 땅이 넓고 번잡하지 않은 교외 지역의 인도를 다니며 단독 주택에 배달하는 것과 복잡한 도시, 고층 빌딩에 배송하는 것은 난이도가 다르다. 로봇 하나당 비용도 높고 돌발 사항에 대한 대처 능력이 아직 미흡하고 안전과 도난의 이슈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사회적 문제도 있다.
하지만 계속해 기술이 발전하고 법적 규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겨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테스트 지역이 아닌 일반 지역에도 배송 로봇이 일상화되는 때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도 배송 로봇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로봇 산업 규제 혁신 로드맵’을 발표하고 시장 확대를 위한 규제 개선과 다양한 테스트베드 조성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3년부터 그동안 출입이 제한됐던 보도·횡단보도·공원·승강기에서도 로봇을 만날 수 있게 됐다. 현재 도로교통법과 녹지공원법상 배달 로봇은 차도는 물론 보도·횡단보도에서도 운행할 수 없다. 공원 또한 중량 30kg 이상의 로봇은 출입이 불가능하다.
혁신 기업들은 ICT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승인을 통해 우선적으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섰다. 실내외 지상을 누빈 우아한형제들의 딜리도 올해 안에 실외의 식당에서 아파트 단지로 이동하는 것을 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문 앞까지 음식을 배달할 수 있다. 김요섭 실장은 "실내외 배달 로봇 서비스는 라이더가 배달하기 어렵거나 꺼리는 근거리 배달 수요를 담당하며 고객 편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점주들의 추가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이번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통해 신규 기술 활용 및 배달 로봇 운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어 향후 배달 로봇 서비스 고도화와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