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고지서 못 받았는데요”…고지서 못 받아 체납자 되면 누구 책임일까
입력 2021-05-22 07:01:01
수정 2021-05-22 07:01:01
해외 체류로 14년간 고지서 받지 못한 A 씨
과세 무효 주장하며 부당 이득 반환 청구 소송
헌법상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 그만큼 납세자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납세 고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거나 불가피한 경우 공시 송달 등을 통해 고지서를 적법하게 송달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신상의 이유로 납세자가 세금을 내라는 고지서를 받지 못해 체납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14년간 고지서를 받지 못해 세금을 내지 못했다면 이에 대한 책임이 과세 당국이 아닌 납세자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납세자가 고지서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해야만 과세 무효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2003년 구로세무서장은 서울시로부터 주민세 부과징수권을 위임받아 A 씨에게 ‘2000년 귀속 종합소득세할 주민세’로 1억여원을 부과했다. 종합소득세할 주민세는 매년 5월 종합소득세와 함께 납부하는 지방세로, 종합소득세액의 10%에 해당한다.
A 씨는 세금을 내지 않았고 서울시는 2004년 징수권을 구로구청장으로부터 환수해 직접 징수 업무에 나섰다. 서울시는 A 씨의 주소로 종합소득세 납세 고지서와 주민세를 부과한 처분서를 보냈다. 서울시는 2006년 A 씨의 보험금을, 2010년에는 예금을 압류했다가 해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A 씨는 처음부터 세금 고지서를 제대로 받지 못할 상황이었다. 2001년 해외로 출국했고 이미 무단 전출로 인해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였다. A 씨는 2015년 6월 다시 입국했다. 서울시는 다음 달 바로 A 씨의 세금 체납을 문제로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
A 씨는 이틀 후 체납액 중 5600여만원을 납부했다. 하지만 이후 A 씨는 “해외에 있는 동안 서울시가 주민세를 부과하면서 고지하거나 고지서를 보낸 적이 없다”며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위법한 과세로 무효”라고 부당 이득금 소송을 냈다.
엇갈린 1·2심, 쟁점은 ‘증명의 책임’
서울시는 A 씨에 대한 주민세와 관련한 고지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이미 보존 기간이 지나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종합소득세 납세 고지에 대한 공시 송달 전자 문서는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공시 송달은 당사자의 주거 불명 등을 사유로 고지서를 직접 교부하지는 않아도 전자 게시판이나 신문 등을 통해 고지서의 내용을 게시해 송달한 것과 똑같은 효력을 발생시키는 방법이다.
이에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렸다. 쟁점은 고지서가 적법 송달됐다는 사실을 누가 증명해야 하냐는 것이다. 1심은 “A 씨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납세 고지서가 적법하게 송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며 고지서 미송달의 입증 책임이 A 씨에게 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주민세 납세 고지서는 A 씨가 해외에 체류할 때 송달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A 씨가 직접 고지서를 교부받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인정했다. 하지만 “국세인 종합소득세의 부과 고지에 관해 공시 송달 관련 자료가 존재하는 점에 비춰 보면 보존돼 있지는 않지만 주민세 납세 고지서가 공시 송달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2심은 1심을 뒤집고 과세 처분이 무효라며 A 씨의 승소를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납세 고지서가 적법하게 송달됐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 책임은 과세 관청인 서울시에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송달 관련 서류가 보존 기간 경과로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납세고지서의 송달 증명을 갈음할 수 없다”며 “납세 고지서가 A 씨에게 송달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납세 고지서 송달은 교부·우편·공시 송달에 의하도록 돼 있는데 이 같은 송달 규정에 반해 납세 고지서가 송달되지 않았거나 그 송달이 부적법한 경우에는 과세 처분은 당연 무효라는 취지다.
대법 “증명의 책임은 납세자가 진다”
그러나 과세 처분 무효 소송은 대법원에서 다시 한번 뒤집혔다. 2021년 4월 29일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서울시가 A 씨로부터 받은 체납액을 돌려주라는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행정 처분에서 당연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이 무효인 사유에 대해 증명할 책임을 진다”고 판시했다.
납세 고지서를 받지 못했다는 증명의 책임이 서울시가 아닌 A 씨에게 있다는 말이다. 즉 서울시가 보관하고 있는 송달 관련 서류가 보존 기간 만료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도 A 씨가 납세 고지서를 적법하게 송달받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이는 적법한 송달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원심은 납세 고지서가 적법하게 송달됐다는 점에 대한 증명 책임이 서울시에 있다는 전제하에 납세 고지서가 A 씨에게 적법하게 송달됐다는 점에 대한 서울시의 증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A 씨가 납부한 세금 상당액을 부당 이득으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부당 이득에 대한 증명 책임, 행정 처분의 무효 사유에 대한 증명 책임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원심 법원에 주문했다.
[돋보기]
경비원이 받아준 고지서는 적법 송달일까
국세기본법과 지방세기본법은 고지서를 대신 받아 줄 사람으로 ‘서류를 송달받을 자의 사용인이나 종업원 또는 동거인으로서 사리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경비원이 대신 납부 고지서를 받으면 적법 송달이 아니냐는 소송이 종종 제기되곤 한다.
경비원이 납부 고지서를 수령하면 각각의 사례에 따라 ‘적법 송달’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먼저 일반적으로 아파트 주거인의 등기 우편물을 경비원이 대신 받아 주는 관계라면 송달 효력이 있다는 조세심판원의 판단이 있다.
청구인 B 씨는 아파트 관리인이 납세 고지서와 관련해 아무런 권한이 없어 적법한 송달이 아니라며 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조세심판원은 B 씨 거주지의 경비원과 안내 데스크 직원이 부가가치세의 납세 고지서를 수령한 사실이 있다며 “관례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이나 안내데스크 직원이 등기 우편물을 수령해 거주자에게 전달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적법한 송달이라고 판단했다.
심판원의 결정은 “우편물 기타 서류의 수령 권한을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위임한 경우에는 그 수임자가 해당 서류를 수령함으로써 그 송달받을 자 본인에게 해당 서류가 적법하게 송달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거주지 부재로 ‘반송’됐다면 송달 무효
반면 등기 및 특수 우편물의 수령 권한이 경비원에게 위임됐다고 보더라도 세금 부과 대상자가 집을 비운 상황이 인정된다면 송달은 무효가 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도 있다. C 씨는 2003년 1월 자신의 명의인 서울 강남의 한 건물을 회사 스튜디오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A사와 내부 개·보수 공사를 3억여원에 계약한 뒤 같은 해 1분기 부가가치세 3000만원을 공제받았다.
그러나 강남세무서는 A사를 재조사한 뒤 공사비 중 1억6000여만원을 자본적 지출에 속한다고 판단, A사에 2700여만원, C 씨에게 150여만원의 부가세를 등기 우편을 통해 2차례 고지했으나 반송됐다. 이에 세무 공무원을 통해 직접 세금 부과 기간인 5년 내 고지서를 송달하기 위해 2008년 7월 아파트를 찾아 경비원에게 교부했으나 이마저 반송됐다.
재판부는 “등기 등 특수 우편물은 아파트 입주자가 없을 경우 경비원이 수령, 입주자에게 전달해 왔다는 점을 보면 수령 권한이 경비원에게 위임됐다고 볼 수 있지만 경비원이 C 씨의 납세 고지서를 전달할 수 없어 수령을 거부, 지체없이 반송했다면 적법하게 송달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