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하트’는 어떻게 MZ세대 지갑을 열었나

메종키츠네·아미·메종마르지엘라 등 ‘신명품’ 인기…캐주얼한 디자인과 합리적 가격 내세워

[스페셜 리포트]



주춤했던 소비가 다시 폭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명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샤넬의 클래식 백은 ‘오픈런’을 해도 구하기 어렵고 롤렉스 매장에서는 ‘공기만 판다’는 말이 나온다.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패션업계에서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는 ‘여우’와 ‘하트’에 푹 빠졌다. 요즘 MZ세대는 명품 매장 앞에서 줄을 서는 것 대신 온라인으로 디자이너들의 브랜드를 구입한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메종 키츠네, 아미, 메종 마르지엘라, 르메르 등이다. 이들은 기존 명품보다 저렴한 가격과 캐주얼한 디자인으로 MZ세대를 사로잡았다.

MZ세대 필수품된 크루아상백과 독일군몇 년 전만해도 생소했지만 최근 MZ세대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이제 스트리트 패션에서 익숙한 브랜드들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심플한 디자인과 특유의 감성 등을 내세우고 있다.

프랑스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메종 키츠네(Maison Kitsuné)’는 여우 심벌이 특징적인 브랜드다. 메종 키츠네는 프랑스어로 ‘집’을 뜻하는 ‘메종’과 일본어로 ‘여우’를 뜻하는 ‘키츠네’를 합친 말이다.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매니저였던 길다 로에크와 일본인 건축가 마사야 구로키가 2002년 음반 레이블로 공동 창업했다. 패션 브랜드, 음악 레이블(Kitsuné Musique), 카페(Café Kitsuné)를 혼합한 유니크한 문화 공간을 제공한다. 파리·뉴욕·도쿄·홍콩·호놀룰루 전역의 17개 지점에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고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400여 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인기를 등에 업고 매출액도 급상승 중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에 따르면 메종 키츠네의 올해 누계 매출액(1월 1일~5월 9일)은 전년 동기 대비 96% 증가했다.

프랑스 하트의 상징 ‘아미(AMI)’도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창립자인 알렉상드로 마티우시가 하트와 A를 조합해 만든 본인의 서명에 영감을 받은 로고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따르면 아미는 올해 누적 매출액(1월 1일~5월 9일)이 전년 동기 대비 358% 신장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시국에도 매월 두 자릿수 이상 매출이 증가하며 워너비 브랜드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르메르의 인기도 뜨겁다. 올해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66% 늘었다. ‘일상을 위한 옷을 만든다’는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절제되고 은은한 디자인이지만 동서양의 문화가 조화된 독특한 감성, 뛰어난 소재, 오묘한 컬러 등을 사용한다. ‘크루아상백’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르메르 범백은 최근 1020 여성들이 가장 들고 싶어하는 가방으로 떠올랐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남녀를 막론하고 가장 인기있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벨기에 출신의 마틴 마르지엘라가 1988년 론칭한 브랜드로 2014년 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가 컬렉션을 전두지휘하며 인기가 더욱 거세졌다. 사선으로 이뤄진 네 개의 스티치(바늘땀) 디자인과 0부터 23까지 숫자가 적혀 있는 흰색 넘버링 태그는 로고 없이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테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를 한국에 공식 수입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따르면 메종 마르지엘라의 올해 1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2.4% 늘어났다.

이탈리아 하이엔드 스포츠웨어 브랜드 스톤아일랜드는 왼쪽 팔뚝에 계급장을 연상시키는 나침판 모양의 패치로 잘 알려져 있다. 실용적이면서 밀리터리 감성이 느껴지는 디자인으로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지난해 12월에는 럭셔리 아웃도어 브랜드 몽클레르에 인수됐다.

아워레가시는 스웨덴을 기반으로 1990년대 록 문화에서 영감을 브랜드다. 아크네스튜디오나 코스를 좋아하던 패션 피플들이 사랑하는 브랜드 중 하나다. 2019년부터 여성 컬렉션도 론칭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패션 기업 매출액 이끈 신명품해외 브랜드뿐만 아니라 한국 디자이너들의 브랜드도 인기다. 한국인 디자이너 우영미가 자신의 이름을 따 론칭한 력셔리 브랜드 ‘우영미(WOOYOUNGMI)’는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토대로 신명품으로 급부상한 케이스다. 지난해 쟁쟁한 브랜드들을 제치고 프랑스 봉마르셰 백화점 남성관 매출 1위를 차지하며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컨템퍼러리 남성복으로 자리잡았다.

아더에러는 서울을 베이스로 시작한 디자이너 브랜드다.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쉽게 놓칠 수 있는 것’을 재해석한 미니멀리즘 룩을 선보인다. 지난 4월 신사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 패션 피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명품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이들 ‘신명품’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명품 거래 앱 ‘트렌비’를 통해 판매된 신명품들의 4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금액 증가율을 살펴보면 메종 마르지엘라 430%, 메종 키츠네 1830%, 아미 1670%, 오프화이트가 800% 증가했다. 트렌비 이상욱 마케팅 총괄은 “최근 주 소비층으로 급부상한 MZ세대 사이 메종 키츠네, 아미 등 ‘신명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라며 “소비하는 브랜드를 통해 각자의 취향을 뽐낼 수 있는 점을 바탕으로 개성 있는 로고플레이, 심플하면서도 실용적인 디자인, 기존 명품 대비 합리적인 가격 등의 이유가 주요 요인이다”고 분석했다.

중고 거래도 활발하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올해 4월 신명품의 거래액은 스톤아일랜드 26.3%, 아미 200.2%, 메종 키츠네 135.1%, 아더에러 27.7%, 아워레가시 253.6%, 우영미가 205.3% 증가했다. 검색 순위도 높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올해 1~3월 동안 25세 미만+25~34세 이용자들의 패션 브랜드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면 스톤아일랜드·아더에러·아워레가시·앤더슨벨·우영미가 올랐다. 또 르메르와 마틴로즈는 전년 동기 대비 검색량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메종키츠네·아미·르메르·톰브라운을 수입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메종 마르지엘라·아크네 스튜디오·폴스미스의 수입을 도맡고 있다. 이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한국 패션 기업들의 실적도 상승세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1분기 매출액은 41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9%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분기 21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올 1분기 전체 해외 패션 부문 매출 증가율은 21.4%를 기록했다. 명품 대체보다 취향 나타내는 패션 소품으로 MZ세대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로고’를 통해 브랜드 특유의 이미지를 각인했다는 점이다. 메종 키츠네는 여우 로고로 인지도를 높였고, 로고의 인기를 바탕으로 대표 심벌인 여우에 변주를 둔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 ‘아미’의 하트 로고도 브랜드 이미지를 잘 각인시킨 사례다. 하트 로고의 대명사인 아미는 기존 레드·블랙 컬러의 하트 패치 외에 선으로 연결된 하트 자수 로고를 출시했다. 로고를 부착한 상품의 인기도 높다. 하트 라인의 모든 상품의 판매율은 90%를 웃돌았고 반소매 셔츠, 스웨크 셔츠, 긴소매 티셔츠, 모자, 양말 등은 완판에 가까운 판매를 기록했다.

하나의 아이템이 사랑받으면서 브랜드 전체가 주목받은 사례도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의 스니커즈 레플리카는 ‘독일군’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남녀 모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1998년 처음 소개된 후 메종 마르지엘라의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자리잡은 이 스니커즈는 1970년 독일 연방군에게 보급됐던 ‘독일군 스니커즈’에서 영감을 얻은 제품이다. 기존의 명품이 여성 가방을 위주로 인기를 누렸다면 메종 마르지엘라는 패션에 관심 있는 남성들 사이에서 하나쯤 갖춰야 할 기본 아이템인 운동화를 내세워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반적인 소비 시장이 주춤했지만 명품만은 예외였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매출은 2019년 대비 37%, 올해 1~4월은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여가 활동에 제약이 생기자 명품 쇼핑을 통해 욕구를 해소하려는 이른바 ‘보상 소비’가 증가했다. 또 해외여행길이 막히면서 여윳돈이 명품 구매에 몰렸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MZ세대는 신명품 소비를 통해 명품 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MZ세대에게 패션 아이템은 곧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은 남들이 착용하지 않은 브랜드를 발굴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 시장은 차별화와 동조화로 성장하는데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는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한 명품”이라며 “명품 착용을 통해 안목을 과시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는 신명품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동시에 만약 이러한 명품이 흔해진다면 또 새로운 명품을 찾아가는 차별화와 동조화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MZ세대는 해외 직구와 편집숍 등을 통해 해외 브랜드에 익숙하다. 패션업계가 수입한 브랜드를 수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탐색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2030은 해외 직구를 통해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들도 잘 알고 있다”며 “이미 마니아 층을 형성한 해외 브랜드들도 많기 때문에 이 브랜드들을 수입하면 매마아 층을 붙잡아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명품에 비해 저렴한 가격대도 신명품의 저변을 넓히는 원동력이 됐다. 신명품은 기존 명품들보다 가격대가 낮은 편이다. 브랜드마다 차이는 있지만 반소매 티셔츠는 15만~20만원, 겨울 니트는 30만~4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일반 브랜드들보다 가격이 비싸면서 전통 명품 브랜드들보다 저렴하다는 것이 MZ세대의 주머니를 열게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변한 패션업계의 트렌드도 신명품을 띄우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면서 집 근처 1마일(1.6km) 반경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원 마일 웨어’가 패션업계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에·루·샤처럼 차려입은 복장에 잘 어울리는 명품들보다 편한 캐주얼에 어울리는 아이템이 많은 신명품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다. 또 성별의 경계가 없는 ‘젠더리스 룩’에도 부합하는 디자인이 많다는 것도 인기 요소다.

하지만 정작 MZ세대는 이러한 분석에 고개를 젓는다. 20대 직장인 A 씨는 “신명품들을 명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요새 많이 입는 힙한 디자이너 브랜드들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인플루언서들의 착용으로 이들을 알게 됐다는 의견도 많았다. 명품으로 여겨지기보다 현대화된 ‘컨템퍼러리 브랜드’가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기존 명품의 대체품이라기보다 또 다른 선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르메르의 범백을 구매했지만 샤넬의 캐비어를 마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고가 명품 브랜드들보다 중가의 가격대를 지닌 백화점 브랜드에 더 타격을 입힐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