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사업 매각한 이랜드리테일, 흑역사 딛고 신용 등급 ‘A’로 올라설까

대내외적 악재에 ‘BBB급’에 갇힌 신용 등급
‘선택과 집중’으로 실적 회복… 등급 상향 기대감

[마켓 인사이트]

이랜드리테일 뉴코아 강남점


이랜드리테일이 신용 등급 상향이라는 오랜 숙원 사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에 신용 등급은 단순히 금융비용의 수준을 결정하는 잣대만이 아니다.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의 결과물이자 이랜드리테일을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 지표이기도 하다.

이랜드리테일의 신용 등급은 이랜드그룹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사업과 재무 구조를 개편한 후 ‘BBB급(BBB-~BBB+)’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면 어김없이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찾아왔다. 때로는 이랜드그룹 내부에서, 혹은 외부에서 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그랬고 그룹의 유동성 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표적이다.

구조 조정의 결실이 각종 재무 지표로 나타나려는 찰나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는 이랜드리테일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랜드리테일에 ‘A급(A-~A+)’ 신용 등급은 넘지 못할 큰 산으로 여겨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랜드리테일이 ‘A급’ 기업으로 올라서는 데 올해가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수차례 위기를 거치며 자산 효율성을 높였고 수익·생산성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한 만큼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소비 패턴에 빠르게 적응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랜드리테일도 분주하게 온라인 위주로 소비 채널을 재구축하면서 중·장기적인 신용도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벗어나기 어려운 ‘BBB급’의 둘레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이랜드리테일의 신용 등급을 ‘BBB+’로 평가했다. 지난해와 같다. 나이스신용평가가 ‘부정적’ 등급 전망을 달긴 했지만 시장에선 코로나19의 부정적 영향이 가장 큰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데도 신용 등급이 유지된 것만으로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이랜드그룹의 지주사 격인 이랜드월드의 자회사이자 주력 계열사다. 이랜드그룹에서 사업 중요도가 높은 편이고 계열사와의 전략적 연계도 크다. 현재 아울렛 45곳과 킴스클럽 39곳을 운영 중이다. 지분 구조는 이랜드월드가 97.2%를 가지고 있다.

이랜드리테일은 대규모 점포망을 기반으로 아울렛 시장에서 탄탄한 시장 지위를 가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높은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앞세워 패션·유통업계에서 집객 능력이 뛰어나다는 인정을 받는다. 현재 취급 PB는 30여 품목에 달한다. 패션 부문을 맡고 있는 이랜드월드와 외식 부문을 맡고 있는 이랜드이츠와의 시너지 효과도 충분하다.

하지만 아울렛과 마트에 집중된 사업 구조는 약점이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분산돼 있지 않아 채널 다각화 수준이 낮고 외부 충격에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은 이랜드리테일의 약한 고리를 더욱 자극했다. 비대면 채널의 선호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야외 활동이 위축되면서 패션 상품 소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대비 20.9% 줄어든 3조2000억원에 그쳤다. 매출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 확대와 할인 행사 증가로 영업이익률도 급락했다. 2019년까지 10%를 웃돌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0%대로 떨어졌다.

단, 올해 들어 빠른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1분기 매출은 7772억원으로 전년 대비 10.7%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47억원을 달성해 흑자 전환했다.

물론 고대하던 ‘A급’ 기업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점포 구조 조정 등으로 영업 효율성을 높이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랜드리테일이 신용 등급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랜드그룹은 과거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다. 패션 사업에서 출발해 백화점과 마트를 연이어 인수하며 유통 사업에 진출했다. 또 레저·호텔 부문으로도 보폭을 넓히며 공격적인 사업 행보를 보였다. 중국 사업도 크게 확장했다.

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외부 자금 조달이 늘었고 차입금과 부채 비율이 치솟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는 앞다퉈 이랜드그룹 계열사의 신용 등급을 낮췄다. 신용도가 낮아지자 투자자의 차입금 조기 상환 압박이 거세졌고 유동성 위기가 커졌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이랜드그룹은 단순히 조달 비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시장 신뢰와 투자자의 네트워크를 위해서라도 신용 등급을 개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강도 높은 체질 개선, 빛 볼까

이랜드그룹은 강도 높은 체질 개선을 위해 구조 조정을 실시했다. 매각 결정이 쉽지 않은 알짜배기를 팔기 시작했다. 캐시카우는 또 발굴하면 된다는 판단에 재무 구조 개선에 집중했다. 캐주얼 브랜드 티니위니를 시작으로 홈 앤드 리빙 사업 모던하우스, 스포츠 브랜드 케이스위스 등을 매각했다. 브랜드와 각종 사업을 과감히 처분해 2조원을 웃도는 자금을 마련했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데 투입했다.

구조 조정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낮은 수익성을 보이는 브랜드와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은 사업을 처분하는 동시에 고수익 브랜드와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꿨다. 시장에서 이랜드그룹을 ‘구조 조정의 모범생’이라고 부르게 된 배경이다.

업계에선 이랜드의 체질 개선 효과가 올해부터 나타날 것으로 관측한다. 그룹 전체로 보면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5% 늘어난 1조200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약 400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NC·뉴코아 등 도심형 아울렛을 운영하는 이랜드리테일이 그룹 전반의 실적을 견인했다. 이랜드월드가 운영하는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도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이랜드그룹은 “주요 사업 대부분이 1분기를 기점으로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며 “비효율적인 비용 구조를 바꾸면서 영업이익 측면에서 상승세가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온라인·디지털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팀을 신설해 소비자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리뷰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제품을 수정하고 브랜드 콘셉트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의 협업도 강화했다. 구매 주기와 패턴을 분석해 적절한 제품을 추천하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반의 온라인 상거래 서비스에도 집중하고 있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일대일 대화를 통해 실시간 판매·결제까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신규 사업 모델을 만들었다.

최한승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유지 보수 중심의 투자 계획과 비효율 점포 철수 상황을 감안할 때 차입금 감축은 점진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도 오프라인 매장 내실화와 온라인 채널 강화에 집중해 실적 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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