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택 피치스 대표 “우리 목표는 수프림 아닌 나이키”

자동차에 미쳐 파산 위기까지 가 본 사람들이 만든 브랜드

[인터뷰]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 약력: 1989년생. 미시간대 문화심리학과 졸업. 서울대 사회심리학 석사. 2013년 ‘군대 심리학’ 저. 2018년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현). /김기남 기자




피치스는 자동차에 미쳐 한 번쯤은 파산 위기까지 가 본 디자이너, 뮤직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의기투합해 2018년 시작된 브랜드다. 현재 피치스그룹코리아 수장인 여인택 대표를 필두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의 자동차 광고가 멋있지 않다는 불만을 공유하다가 ‘우리가 직접 멋있게 해보자’며 뭉치게 됐다.

피치스는 해외 젊은이들의 문화가 스케이트보드에서 이제는 자신의 자동차를 꾸며 타는 문화로 이동하는 것에 주목했다. 피치스는 패션·음악·자동차 등이 어우러진 감각적인 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자동차 문화의 성지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팬덤을 빠르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여 대표는 차 문화에 기반을 둔 가장 힙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이끌며 글로벌 브랜드들의 러브콜을 받는 자리에 서 있다. 피치스는 현재 투자 라운드를 진행 중인 스타트업이다. 높은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누적 투자금 40억원을 유치해 현재 시리즈 A 단계가 끝났고 연말에 시리즈 B 라운드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피치스는 2021년 서울 성수동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 도원(D8NE) 오픈을 계기로 사업 확장에도 본격 시동을 걸었다. 여 대표는 “오프라인 공간인 도원이 시리즈 B로 가기 위한 중요한 마일스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에 주력하다가 도원을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도원을 만든 이유는 피치스가 온라인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래서 도대체 피치스가 뭐 하는 친구들이야’라는 피드백이 많았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인지, 패션·의류를 만드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자동차 튜닝 회사인지 묻는 것이다. 사람들이 각자 해석하는 대로 피치스를 느꼈으면 좋겠고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브랜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도원이라는 공간을 통해서는 피치스가 생각하는 비전이나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사람들이 힌트를 얻고 희열을 느낄 수도 있고 때로는 동질감을 얻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러한 것들을 도원을 통해 표현하고 문화의 실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성수동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피치스 본사를 성수동으로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성수동에는 자동차 공업사가 굉장히 많고 예전부터 자동차를 수리하는 문화가 있었던 곳이다. 수제화 거리가 있어 패션 쪽에도 뿌리가 깊다. 이 때문에 성수동에 무신사와 아더에러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계속 유입되고 있고 심지어 벤처캐피털 DSC인베스트먼트도 있다. 엔터테인먼트사들도 성수동으로 본거지로 옮기고 있기 때문에 이곳이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시작한 브랜드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은 없었나.

“미국에 있을 때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쉘(Shell)과 협업할 기회가 생겼다. 쉘 주유소를 리노베이션해 피치스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는 플래그숍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가 코로나19 바로 직전인 2019년 12월이었다. 결국 주유소 프로젝트가 보류됐다. 2021년은 한국 시장에 집중하는 시기가 될 것 같다. 제일 큰 과제는 오프라인의 확장이다. 오프라인 도원을 필두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미국에서 쉘과 하지 못한 주유소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성수동에서 하는 것이다.”


여인택 피치스그룹코리아 대표가 피치스 도원에서 한경비즈니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글로벌 브랜드들이 피치스와 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는 뭔가.

“피치스의 커뮤니티라고 본다. 피치스가 아우르고 있는 팬덤이나 커뮤니티를 통해 자사의 네임 밸류를 확산시키거나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을 얻고 싶을 때 피치스와 협업 포인트를 찾는 것 같다. 현대차에서 영(young) 타깃의 고성능 브랜드 벨로스터 N이 나왔을 때 초기 프로젝트를 피치스가 맡았다. 젊은 층에 영향력이 있는 자동차 문화 브랜드를 찾다가 피치스를 찾은 것이다. 벨로스터 N 영상은 현대차 광고지만 피치스 로고로 시작해 피치스 로고로 끝난다.”

-영상 제작, 패션 의류, 자동차 용품 사업 등 다양한 사업 중 핵심 비즈니스 모델은 뭔가.

“기존 메인 비즈니스는 의류였는데 오프라인 도원을 오픈하면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금이 들어오고 있다. 의류는 디자인을 적게 만드는 것 치고는 늘 온라인에 풀린 지 4~5시간 만에 95% 정도 소진되기 때문에 수익이 좋은 편이다. 도원에서 공연이나 전시 공간으로 대관 사업도 하고 다양한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피치스그룹코리아에 지분 투자도 하고 있다.

“자동차 문화를 넓힐 수 있는 든든한 파트너로 타이어 회사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타이어는 아무 차에나 끼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가 ‘한국’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어 더 멋있다고 느꼈다. 한국타이어와 협업하면 한국에 대한 것도 해외에 많이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세계적인 전기차 레이싱 대회인 ‘포뮬러 E’의 공식 타이틀 스폰서를 한국타이어가 맡고 있는데 포뮬러 E는 포뮬러 원(F1)의 전기차 버전이다. 전기차 브랜드들도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고 있어 한국타이어에 중요한 것은 전기차 타이어 개발이다. 전기차 시장으로 전환되는 흐름에서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프로젝트다.

피치스가 길거리 자동차 문화를 대변해왔기 때문에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면 바로 모터스포츠 분야다. 그래서 한국타이어의 아트라스비엑스 모터스포츠팀에 피치스가 스폰서로 들어가 있다. 아트라스비엑스 모터스포츠팀을 이끄는 조항우 감독의 차 디자인을 피치스가 맡고 있다. 디자인 콘셉트가 일반 레이싱차와 달리 피치스의 ‘바또(Batto)’ 캐릭터가 들어가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모터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작업하고 있다.”

-피치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누구인가.

“우리가 되고 싶은 브랜드는 나이키다. 나이키가 여러 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지만 결국은 스포츠 문화를 대중에게 잘 설명해 주고 NBA 선수들의 유니폼을 만들고 다양한 신발을 만들어 내고 커머셜 광고까지 만들면서 ‘농구 문화는 멋진 것이고 나이키가 그 분야에서 선두 주자’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피치스가 수프림과 같은 스트리트 브랜드보다 자동차 문화를 키우고 끌어나갈 수 있고 광고 회사처럼 대중에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려면 나이키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계획과 중·장기적인 비전은 세웠나.

“2021년은 오프라인에서 문화의 실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데 그중 하나가 도원이고 또 다른 하나가 주유소 프로젝트다. 회사를 함께 설립한 멤버들이 언젠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떠나게 될 텐데 그때 회사가 시드머니를 지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피치스라는 브랜드가 뜨게 되면 지는 날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브랜드가 지고 있을 때 우리가 뿌려 놓은 씨앗들을 통해 새로운 회사들이 시작될 때 그 새로운 회사들의 시작점이 피치스그룹코리아였다고 했으면 좋겠다. ‘페이팔 마피아’처럼 ‘피치스 마피아’들이 생겨나 자신의 꿈을 펼치면서 세상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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