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사 아닌 제3 공간에서 일한다’…주목 받는 거점 오피스

코로나19 끝나도 하이브리드형 근무 지속
SK텔레콤 이어 현대차도 뛰어들어

[비즈니스 포커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형(혼합) 근무’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리드형 근무는 직원이 업무 공간을 유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말한다. 업무 시간의 전부를 집이나 사무실 등 정해진 공간에서 일하는 기존의 원격근무제나 유연근무제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근무 방식이다.

하이브리드형 근무가 각광 받는 이유는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단행하면서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재택근무로 대체해도 큰 차질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이나 생산성 측면에서 사무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글로벌 사무 가구 업체 스틸케이스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업무 환경에 대한 달라진 기대치와 미래의 모습’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72% 정도의 기업들이 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 혹은 제3 장소에서의 근무를 혼합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직원들이 통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재택근무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는 사실을 감안해 거점 오피스 등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그래픽=윤석표 기자

생산성 있는 곳이 곧 사무실

글로벌 기업들은 사실상 물리적 개념의 사무 공간에 집착하지 않고 ‘생산성이 있는 곳이 곧 사무실’이라는 개념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 증가와 맞물려 이미 하이브리드형 근무가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3월 미 워싱턴 주 본사 직원의 출근을 재개했지만 재택과 사무실 근무 중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하이브리드 근무는 우리 세대 근무 형태의 가장 큰 전환을 대표한다”며 “이는 사람·장소·과정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작업 모델을 요구한다”고 새로운 근무 지침을 설명했다.

구글도 전체 직원의 20%는 재택근무, 20%는 자신의 부서가 아닌 다른 지역 사무실로 출근해 원격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스포티파이도 ‘워크 프롬 애니웨어(work-from-anywhere)’ 모델을 도입해 직원들이 재택과 사무실 근무 중 원하는 근무 방식을 고를 수 있게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나 사무실 근무보다 집 근처 거점 오피스나 공유 오피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거점 오피스는 통근 시간이 절감되면서 생산성 향상과 삶의 질 개선, 환경 오염 축소 등에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종합 부동산 서비스 회사인 JLL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하이브리드형 근무를 원하는 비율이 코로나19 전 39%에서 코로나19 이후 66%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에도 통신사 등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형 근무 방식이 확산되면서 거점 오피스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거점 오피스, 프로젝트 오피스, 태스크포스(TF) 오피스 등 공간 수요가 늘면서 커스텀 오피스 등 다양한 형태의 사무실이 나타나고 있다. 김지연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위성 오피스, 태스크포스팀을 위한 프로젝트 오피스, 분산 오피스 등 다양한 종류의 유연 근무 공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윤석표 기자

현대차도 서울·수도권에 7곳…재택근무 단점 보완

현대차는 6월부터 본사와 남양연구소로 출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무실 대신 집 주변으로 출근할 수 있는 거점 오피스를 도입했다.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용산구 원효로사옥·동작구 대방사옥·강동구 성내사옥과 인천 부평구 삼산사옥, 경기 안양사옥, 의왕연구소까지 총 7곳에 400여 석 규모의 거점 오피스 ‘에이치-워크스테이션(H-Work Station)’을 열었다.

오피스 근무의 장점을 살리면서 재택근무의 단점을 보완하고 출퇴근 시간을 단축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앞서 3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온라인 타운홀 미팅에서 직원들이 장거리 출퇴근의 개선 방안을 묻자 “(집과) 가까운 곳에 위성 오피스를 만들어 거기에 출근해 일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며 “출퇴근 시간이 단축돼 더 효율적으로 되면 좋겠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은 2020년 4월부터 거점 오피스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직원들이 본사까지 출근하지 않고 수도권 각지에 마련된 거점 오피스에 출근하도록 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워크 애니웨어(work anywhere)’를 구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거점 오피스는 서울 을지로·서대문·종로와 경기도 판교·분당 등 5곳에 마련돼 있다. 직원들이 자신의 자택 근처에 있는 거점 오피스로 출근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10~20분대로 줄어들었고 업무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2020년 11월 타운홀 미팅에서 “당장 코로나19가 없어지더라도 비대면 기술을 바탕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워크 애니웨어’를 추진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KT도 올해 5월부터 거점 오피스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공유 오피스 플랫폼 기업인 패스트파이브와 알리콘 2개 업체와 제휴하고 패스트파이브가 운영하는 강남2호점·서울숲점·여의도점· 영등포점과 알리콘이 운영하는 브랜드인 ‘집무실’의 정동점·석촌점·서울대점·일산점 등 서울과 경기에서 총 8곳을 7월까지 시범 운영한다.

LG유플러스는 2020년 11월부터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 마곡 사옥과 경기 과천국사에 거점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통신사들은 하이브리드형 근무 확산에 따른 공유 오피스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7년 600억원 규모에 불과했던 국내 공유 오피스 시장은 2022년 77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사들의 공유 오피스 사업은 업무 효율성 제고는 물론 신사업과 특히 연관이 있다. 통신사들은 B2C 시장 포화에 따라 기업용 서비스(B2B)에서 새 먹거리를 찾고 있다. 공유 오피스는 통신사가 보유한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과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가상현실(VR)·증강현실(AR)·보안 솔루션 등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을 구현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거점 오피스 확대를 추진 중인 SK텔레콤은 최근 공유 오피스업계 2위인 스파크플러스 지분을 일부 인수했다. 5G 관련 비즈니스 모델로 스마트 오피스를 구축하고 거점 오피스를 통한 효용성을 검증해 왔던 만큼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는 기업에 사무 공간과 함께 업무·협업에 필요한 ICT 솔루션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어 B2B 시장 확대를 노릴 수 있다.

KT는 부동산 분야 계열사 KT에스테이트를 통해 공유 오피스 플랫폼 기업 알리콘과 전략적 제휴하고 분산 오피스 사업에 진출했다. KT에스테이트가 관리하는 KT고양타워를 시작으로 이번 제휴를 통해 KT에스테이트는 전국의 관리 자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부동산 운영을 넘어 공간 플랫폼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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