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허브’ 런던과 홍콩이 텅 비어 간다…한국 금융사 선제적 대응 필요
입력 2021-06-16 06:22:06
수정 2021-06-16 06:22:06
브렉시트 이후 프랑크푸르트가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미·중 마찰로 홍콩 경제도 비상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세계인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는 사이 유럽연합(EU)에서 첫 탈퇴 회원국이 나왔다. 바로 영국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회원국이 난민과 테러, 경기 침체 등에 시달리고 있지만 해결책은 고사하고 대응조차 신속하게 못하는 ‘좀비 EU’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불과 5개월이 지난 현재, 영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브렉시트로 자국 경제가 2030년까지 6% 위축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가구당 연간 4300파운드(약 680만원)의 손실이 날 것이란 예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잔류했을 때와 비교해 2030년에는 5% 위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카고 공포’ 재현 위기 처한 런던
미국 뉴욕에 이어 제2의 국제 금융 시장의 중심지였던 런던의 위상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국제 금융 허브였던 시티 오브 런던에 ‘시카고 공포’가 우려될 정도다. 시카고 공포는 도시 발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었던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각종 범죄가 급증하면서 시카고가 유령 도시로 변한 현상을 의미한다.
런던 대신 주식 시장의 중심은 유럽에서는 프랑스 파리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으로 이동되고 있다. 채권 시장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가 부상하고 있다. 주식과 채권 모두 런던이 중심에서 멀어지면서 뉴욕의 위상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부상이다. 공식 명칭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인 프랑크푸르트는 라인강을 가장 쉽게 건널 수 있는 지역에 건설된 도시여서 과거부터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현재 수많은 유럽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과 유럽중앙은행(ECB),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등이 들어서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앞으로 국제 금융의 종합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는 세 가지 장점을 갖추고 있다. 독일 경제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거시 경제 여건을 갖췄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유럽 재정 위기에서 입증됐듯이 유럽 통합이 흔들릴 때마다 독일 경제가 최후의 보루 역할을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신인도 면에서는 오히려 미국보다 월등히 낫다. 미국은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위험 수위를 넘어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에는 국가 신용 등급이 한 단계 떨어지기도 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재정 지출 남발로 한 번 더 강등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독일은 재정 수지뿐만 아니라 경상 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는 증강현실(AR) 시대에 국제 금융 중심지로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인 클라우드·핀테크·블록체인 기업이 집중돼 있다. 자국 경제의 자랑이기도 한 막강한 제조업·컨설팅·미디어 기업도 뒷받침하고 있는 복합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무역 박람회인 메세 프랑크푸르트, 프랑크푸르트 오토쇼, 음악 박람회, 도시 박람회 등도 매년 열린다.
독일 분데스방크에 따르면 영국에서 활동해 온 비독일계 금융회사가 프랑크푸르트를 비롯한 독일 금융 시장으로 이전시킬 자산 규모는 8170억 달러(약 89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ECB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탈출할 것으로 추정한 자산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런던을 대신해 프랑크푸르트가 국제 금융의 중심지로 빠르게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 중 하나다.
싱가포르 쇼크 위기에 놓인 홍콩
홍콩도 난리다. 홍콩을 사이에 두고 미·중 마찰은 2019년 초 시진핑 정부의 범죄자 인도 협약, 즉 ‘송환법’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홍콩을 예속하기 위한 중국의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일종의 내정 간섭이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반환됐지만 서구화 물결이 뼛속까지 물든 체질에서 송환법은 구속이기 때문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중계 무역과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대변되는 홍콩 경제의 특성상 모든 것이 자유롭게 이동되지 못하면 ‘싱가포르 쇼크’에 빠진다. 싱가포르 쇼크는 상품과 돈이 자유롭게 이동되면 성장률이 잠재 수준 이상으로 뛰어올라 ‘인플레이션 갭’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에는 ‘디플레이션 갭’으로 전환된다. 전형적인 ‘천수답 부유 경제’가 나타날 공산이 크다.
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면 홍콩은 곧바로 자금 유출, 즉 ‘헥시트(Hexit=Hong Kong+exit)’ 문제에 봉착한다. 유입자금 대비 유출 자금 비율을 보면 2년 전부터 꾸준히 높아져 왔다. 다국적 기업과 금융사들도 싱가포르로 이전하면서 홍콩 상업 건물의 공실률도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83년부터 달러당 7.8홍콩달러(밴드 폭 7.75∼7.85)를 유지하는 달러 페그제가 언제 포기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달러 페그제 채택 후 1987년 블랙 먼데이, 2001년 9·11 테러,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숱한 충격에도 홍콩은 잘 견뎌 왔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빠르게 쇠락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에도 오히려 국제 금융 중심지로 한 단계 부상하는데 달러 페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유럽 통화 위기, 1997년 아시아 통화 위기 등에서 경험한 것처럼 달러 페그제가 위협당하면 홍콩 달러의 약세를 겨냥한 환투기 세력의 집중 공격이 나타날 수 있다.
대외적으로도 홍콩이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하면 점염 효과가 의외로 크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자금 이탈로 홍콩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마진콜(증거금 부족)’이 발생해 ‘디레버리지(기존 투자 회수)’ 과정에서 투자 원천국의 자산 시장과 경기에 연쇄 파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달러 페그제가 붕괴되면 홍콩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게 되고 홍콩 금융 시장에서 누리는 특혜를 포기해야 한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탈(脫)달러화 움직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정국의 달러 페그제 유지만을 위해 기축 통화인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군사적 충돌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홍콩 문제를 오래 끌면 달러 페그제 붕괴를 바라는 중국과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마찰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양국 간 마찰은 트럼프 정부 때보다 더 악화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견해가 나올 정도다.
한국은 홍콩에 대한 수출액이 중국·미국·베트남에 이어 넷째로 큰 국가다. 미·중 마찰이 날로 격화되는 상황에 전체 수출에서 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달한다. 홍콩 문제와 미·중 간 마찰이 장기간 지속되면 한국도 수출과 경기에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런던뿐만 아니라 홍콩에 진출한 금융사의 복귀 등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