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톡·강남언니 vs ‘사’자 직업 맞붙었다…확산되는 플랫폼 갈등
입력 2021-06-15 06:16:02
수정 2021-06-15 13:57:53
“불법” “신산업 싹 죽인다” 공방전
혁신 스타트업, 기득권 벽 갖힌 ‘레몬 마켓’ 바꿀까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 분야에서 기존 직역 단체와 플랫폼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법률 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와 각각 충돌하고 있다.
법률·의료 서비스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 마켓(정보 비대칭으로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이 어려운 시장)으로 꼽힌다.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직들의 영역에 플랫폼이 침투하면서 기존 산업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헌법 소원까지 간 로톡 갈등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최근 법률 플랫폼에 가입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하겠다고 내부 규정을 개정했다. 변협은 5월 3일 로톡 등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는 변호사를 징계하겠다는 내용의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 데 이어 5월 31일 임시 총회에서 변호사윤리장전 조항을 신설했다.
신설된 조항은 ‘건전한 수임 질서를 교란하는 과다 염가 경쟁을 지양함으로써 법률 사무의 신뢰와 법률 시장의 건강을 유지한다’, ‘변호사 또는 법률 사무 소개를 내용으로 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등 전자적 매체 기반의 영업에 참여하거나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협조하지 않는다’ 등 두 가지다. 사실상 로톡 등 법률 플랫폼들을 겨냥한 것이다.
변협은 보도 자료를 통해 “2019년을 기준으로 이미 등록 변호사 수가 3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변호사 수의 급증은 법조 시장의 수임 경쟁 심화로 이어졌고 인터넷 등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법률 플랫폼 사업자들은 ‘비변호사’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변호사법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난 채 다수의 변호사로부터 광고료 등 명목으로 막대한 재산상 이익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법률 플랫폼 사업자들은 법률 소비자들에게 변호사를 소개·알선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무장 로펌으로 진화하면서 무료, 부당한 염가를 표방하는 덤핑 광고가 범람하는 상황까지 초래됐다”고 말했다.
법률 플랫폼업계 1위인 로톡은 헌법 소원으로 맞불을 놓았다.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5월 31일 변협의 광고 금지 규정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변호사 60명과 함께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는 “이번 대한변호사협회의 광고 규정은 당초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도입했던 정보 비대칭성 해소를 통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국민의 권리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며 “헌법 소원을 통해 개정된 변호사 광고 규정의 위헌성을 확인받고 로톡 이용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헌법 소원 청구서 작성을 주도한 남기정 법무법인 강한 변호사(사법연수원 26기)는 “왜 온라인 광고 플랫폼이 공정한 수임 질서를 해친다고 보는지 알 수 없다”며 “누가 봐도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말했다.
또 “온라인 광고 플랫폼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고객과 대화하려는 젊은 변호사들의 노력을 ‘법률 시장 교란’, ‘불공정 수임 행위’로 몰아가는 것은 직역 단체에 걸맞은 태도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변협의 광고 규정 개정과 관련해 로앤컴퍼니는 변호사 회원 보호와 사업권 보장을 위해 변협을 공정거래법 및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10명 중 8명, 법률 서비스 IT 도입 원해
여론은 플랫폼 측으로 기울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리걸테크 산업에 대한 인식 설문 조사에서 국민의 76.4%는 ‘법률 시장에도 IT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필요 이유는 ‘법률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27.9%)’, ‘법률 서비스가 투명하게 공개돼 신뢰성이 높아질 것 같다(25.3%)’,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것 같다(21.6%)’ 등의 순이었다.
향후 법률 문제 발생 시 원하는 해결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32.9%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보겠다(29.9%)’는 의견이 높게 나왔다. 지인 또는 주변 변호사를 통해 문의하겠다고 답변한 응답자의 비율은 29.3%로, 지인보다는 정보 검색 채널을 활용하겠다는 의견이 근소한 차이로 높았다.
로톡은 연세대 법대 출신 김본환 대표가 2012년 세운 리걸테크 스타트업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법률 플랫폼이다. 로톡은 자사 플랫폼에 등록된 변호사의 주요 경력, 상담 사례, 수임료 등을 공개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한 것이 특징이다.
온라인 상담, 15분 전화 상담, 30분 방문 상담 등으로 간편하게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수익 모델은 변호사 주력 분야, 활동 지역 등에 대해 특정 기간 동안 노출되는 정액제 광고 상품 판매다.
2020년 3월 인공지능(AI) 기술 회사 텍스트팩토리를 인수해 그해 11월부터 약 40만 건의 1심 형사 판결문을 AI 기술로 분석해 통계 정보를 보여주는 ‘형량 예측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로톡과 유사한 모델로 일본의 ‘벤고시(변호사)닷컴’이 있다. 벤고시닷컴은 일본 변호사의 절반 정도가 가입돼 있는 일본 최대 변호사 중개 플랫폼이다. 2014년 12월 일본 증권 시장에 상장했고 시가 총액은 2조원이 넘는다.
미용·의료 서비스 시장에서도 기존 직역 단체와 신산업 스타트업 간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한의사협회가 ‘강남언니’, ‘바비톡’ 등 미용·의료 플랫폼도 의료 광고 사전 심의 대상에 포함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의료법에 따라 의료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한의사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 등으로 구성된 자율 심의 기구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지만 플랫폼인 강남언니는 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의사 단체들은 “불법 광고의 온상이 된 미용·의료 플랫폼도 의료 광고 사전 심의 대상에 포함해 규제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강남언니는 힐링페이퍼가 2015년 출시한 미용·의료 정보 플랫폼으로, 한국의 성형·시술에 대한 가격 비교, 시술 전후 사진 등 후기 정보를 제공해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2020년 말 기준 누적 가입자 250만 명을 돌파했고 등록 의사 수는 약 1000명에 달한다.
변호사·의사뿐만 아니라 이른바 ‘사자’ 직업으로 불리는 전문직들과 플랫폼 간 충돌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무 회계 플랫폼 스타트업 자비스앤빌런즈는 한국세무사고시회로부터 세무사법 위반 혐의로 고소당했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직방은 신규 사업을 위해 공인중개사 채용 공고를 냈다가 공인중개사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