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 열등생→구조 조정 모범생’…현대로템, 공모채 시장 복귀 성공

적극적 자구안 이행으로 재무 상태 빠르게 개선

[마켓 인사이트]



현대로템이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핵심 사업인 철도 부문이 위축되고 해외 플랜트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손실이 나면서 현대차그룹의 ‘재무 열등생’으로 낙인이 찍혔었지만 최근 강도 높은 구조 조정과 적극적 자구안 이행으로 재무 상태를 빠르게 개선하면서 ‘구조 조정 모범생’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큰 폭의 실적 반등을 이끌어 내면서 하락한 신용 등급도 조만간 제자리를 찾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단, 한국 시장의 수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사업의 불확실성이 여전해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BBB급임에도 인기 남다른 ‘대장주’

올해 6월 공모 회사채 시장에 얼굴을 내민 현대로템을 두고 시장 안팎에서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금리 인상이 예고된 데다 신용도가 낮아 기관투자가를 유인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많다. 반면 사업·재무 전망과 투자 매력도를 봤을 때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것이란 예상도 있다.

1999년 설립된 현대로템은 철도 차량 제작을 주력으로 한다. 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 등 3개사의 철도 사업부문이 통합돼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2001년 현대차 계열로 편입돼 올해 3월 기준으로 현대차가 지분 33.8%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주력 사업은 전동차와 객차 등을 생산하는 철도 부문이지만 전차와 장갑차 등 지상 무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 자동차 생산·제철 설비 등을 제작하는 플랜트 사업까지 하고 있다.

대기업그룹 계열사가 공모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조금 다르다. 공모 회사채 시장에 등장한 것은 2019년 이후 2년 만이다.

2년 전 마지막 회사채 발행 당시 현대로템의 신용 등급은 A-였다. A급의 가장 하단에 자리했지만 철도 부문의 준독점적 시장 지위와 대규모 수주 잔량에 따른 매출 안정성 등으로 기관투자가의 수요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분위기가 달라졌다. 주력 사업인 철도 부문이 국내외 다수 프로젝트 설계 변경에 따른 추가 원가 발생과 저가 수주 프로젝트의 매출 인식, 공정 지연 등이 맞물려 2019년 2595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했다. 수주 사업 특성상 프로젝트 진행에 따른 운전 자금 부담으로 재무 안정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2019년 말 부채 비율이 362.6%까지 치솟아 재무 안정성이 흔들렸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어쩔 수 없이 현대로템의 신용 등급을 BBB+로 하향 조정했다. A-와 BBB+는 한 단계 차이지만 채권 시장에서 인식하는 신용 위험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따라 A-에서 BBB+로 신용 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단기간에 회사채 발행 금리가 크게 뛰어 확대된 금융비융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한 현대로템은 지난 2년간 회사채 시장에 등장하지 않았다. 기관투자가의 투자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거나 수요 예측 경쟁률이 현저하게 낮으면 평판 실추는 물론이고 재무 전략을 이행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의 회사채 시장 복귀를 두고 시장 안팎에서 우려가 컸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500억원 회사채 발행 수요 예측에 2580억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현대로템 회사채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기관투자가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로, 역대 최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 수요가 많은 만큼 회사채 발행 규모도 당초 예상보다 680억원을 늘렸다.

물론 최근 활황세를 탄 공모주 시장 덕도 크다. 기업공개(IPO)를 하는 회사의 공모주를 더 많이 받기 위해 하이일드 펀드들이 앞다퉈 BBB급 회사채를 담고 있어서다.

하지만 현대로템의 높은 투자 매력도가 기관투자가를 유인했다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빠르게 재무 상태가 개선됐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한국의 신용 평가사들은 현대로템의 신용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향후 신용 등급 상향에 따른 투자 이익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호적인 시장 반응에 현대로템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번 회사채 발행은 현대로템에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자금 조달이라는 1차원적 목표 외에도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한 현대로템에 대한 시장의 인식과 신뢰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달라진 수주의 질…추가 개선은 ‘글쎄’

시장 참여자들은 이르면 올해 안에 현대로템이 다시 A급 신용 등급을 회복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2015년 이후 철도 부문의 수주 급감과 플랜트 부문의 수주 둔화로 지속적으로 매출이 줄었지만 신규 수주가 되살아나 2019년 이후부터 실적 성장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액은 약 9조원이다. 연도별로 편차는 있지만 평균을 보면 매출 규모에 맞먹는 3조원 수준의 신규 수주를 매년 따내고 있다.

수주 잔액의 질도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재호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사업 위험이 낮은 철도 부문이 수주 잔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14년 58%에서 2018년 이후 80% 수준으로 높아졌다”며 “채산성이 높고 사업 위험이 낮은 방산 부문의 수주 비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업 위험도가 높아 대규모 영업 손실을 낸 플랜트 부문은 계열 물량이나 사업 경험이 많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선별적 수주가 이뤄지며 수주 잔액의 비율이 2014년 21.2%에서 지난해 4% 미만으로 낮아졌다. 철도와 방산 부문의 납품이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이어서 매출 성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영업 수익성도 증가 추세다. 현대로템은 2018~2019년 매출 둔화로 고정비 부담이 커졌고 철도·플랜트 부문의 우발 손실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현대로템의 2018년 매출 대비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은 마이너스 8.1%였다. 2019년에는 마이너스 11.4%를 기록했다.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현대로템은 고강도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해 임원을 줄이고 조직 통폐합으로 비용을 줄였다. 경기 의왕 부지 중 일부를 현대모비스에 매각하고 산업용 가스 공급 업체인 자회사 ‘그린에어’ 지분도 현대제철에 팔았다. 이러한 자구 노력으로 매출 대비 EBIT는 올해 1분기 기준 3.9%로 높아졌다.

재무 안정성 역시 점차 나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올해 3월 기준 현대로템의 부채 비율은 218.3%, 순차입금 의존도는 14.6%다. 2019년 362.6%까지 높아졌던 부채 비율을 상당 폭 낮췄다. 2016년 1조8000억원을 웃돌던 총차입금도 자구 계획 이행으로 올해 3월 1조1890억원으로 줄였다.

단, 해결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일각에서는 현대로템이 안정적으로 이익 창출 능력을 확대하고 영업 수익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분석한다. 산업 자체가 성숙기에 진입했고 경쟁 심화로 수주 여건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은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신규 설계에 대한 부담과 국내와 다른 품질 기준 선호도, 현지 사정 등 위험 요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광훈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멘스와 알스톰 등 글로벌 선두권 기업들과 기술·평판 경쟁을 해야 하고 중국 기업과도 가격 경쟁이 불가피하다”며 “해외 진출과 관련해 열악한 현지 공사 환경에 따른 사업 지연, 해당 국가 통화의 환율 추이에 따라 구조적인 위험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업의 잠재적 위험과 철도 부문의 수익성 등락이 2~3년 단위로 반복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실적 개선 여부는 시간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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