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계약 7년째 갱신한 용역업체 직원
정당한 이유 없이 고용 승계 거절은 ‘부당 해고’
대법원이 용역 업체가 바뀌어도 ‘고용 승계’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부당 해고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고용 승계는 이전 사업주와 사이에 형성돼 있던 노동관계가 바뀐 사업주에게 그대로 이전되는 것을 말한다.
현행 노동법은 ‘사업 양도에 의한 고용 승계’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 대신 법원이 개별 사안마다 판단을 내려 왔고 보통은 사업을 양도할 때 원칙적으로 고용이 승계된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다.
고용 승계가 인정되는 관계에서는 다른 노동계약과 같은 법을 적용받는다. 그러므로 ‘정당한 사유’를 증명할 수 있어야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다시 한 번 이러한 기조를 확인해 줬다.
A 사 “B 씨 손가락 부상으로 작업 능력 떨어져”
1심 “해고의 ‘정당한 이유’라고 볼 수 없어”
A 사는 2018년 4월부터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와 선탄 관리 작업(석탄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 용역 계약을 한 업체다. A 사는 기존 용역 업체에서 일하던 11명의 선탄 작업 노동자들과 새롭게 노동계약서를 작성해 기존과 동일한 내용의 근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B 씨는 예외였다. B 씨는 2009년부터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의 선탄 관리 작업자로 근무해 오던 노동자였다. B 씨가 근로하는 7년 동안 용역 업체가 5번 정도 교체됐지만 ‘고용 승계’를 인정받으며 일해 왔다.
B 씨는 2017년 12월 작업 중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B 씨는 당시 소속 업체와 산업 재해 발생 신고를 하지 않는 대신 완치될 때까지 병원비와 임금을 지급받기로 한 후 출근하지 않던 상태였다. B 씨가 다시 출근한 것은 기존 소속 업체로부터 ‘앞으로 용역 업체가 변경될 예정이니 일단 출근하라’고 통보받은 이후였다.
A 사는 의사 소견서를 가지고 오라며 B 씨를 돌려보냈다. 이에 B 씨는 ‘작업에 무리가 없다’는 의사 소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A 사는 B 씨를 출근부 명단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노동자를 채용했다.
또한 “B 씨의 고용 계약을 승계할 의사가 없다”며 B 씨를 해고했다. B 씨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강원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다. 해당 신청이 인용되자 새 용역 업체 B 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다. 재심 신청도 기각되자 A 사는 이를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A 사는 “재계약을 하지 않아 노동계약이 기간 만료로 종료됐다”면서 “또한 B 씨가 이전 회사에서 입은 산재로 인해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A 사는 재판 과정에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B 씨가 다친 손가락으로 인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사실 확인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B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 씨가 여러 차례 회사가 바뀌는 과정에도 노동 기간의 단절 없이 고용 관계의 승계를 인정받아 계속 근무했다”며 고용 승계를 예외 없이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B 씨는 의사 소견서 및 각서 제출 요구에 응함으로써 계속적인 노동 의사를 밝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사는 B 씨를 대체할 노동자를 채용해 복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업무에 지장이 없다는 의사 소견서는 믿지 않고 노동자들의 사실 확인서 등 주관적 의심을 바탕으로 고용 승계를 거부해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부당 해고인 또 하나의 이유…
“고용 승계 기대 있다면 노동계약 맺었다고 봐야”
2심과 대법원의 판단도 1심과 같았다. 하지만 추가 의견을 내놓았다. A 사는 1심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아 노동계약이 만료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고용 승계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노동계약을 맺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2심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경우 단기의 노동계약이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 갱신됨으로써 정한 기간은 단지 형식에 불과했다”며 “계약서에 기간이 명시돼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B 씨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노동계약을 맺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역시 “새로운 용역 업체가 종전 용역 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고용을 승계해 새로운 노동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 관계가 형성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동자에게는 그에 따라 새로운 용역 업체로 고용이 승계되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또한 “B 사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 승계를 거절한 것은 부당 해고와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돋보기]
업무 능력 부족은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근로기준법 제23조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및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
대법원은 지난 2월 현대중공업이 저성과자를 해고한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해당 법을 근거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식돼 왔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법원이 ‘정당한 이유’를 엄격히 제한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저성과자 해고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내놓으며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
원고 A·B 씨는 현대중공업 과장급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2012~2014년 3년 동안 종합 인사 평가와 성과 평가에서 하위 2%에 해당하는 직무 역량을 보였다. 현대중공업은 2015년 하위 2% 해당 과장급 이상 직원 65명을 대상으로 직무 역량 향상 및 재배치를 위한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부서 이동 이후에도 두 사람은 2016년 상반기 성과 평가에서도 최저 등급인 D등급을 받아 해고됐다. 재판부는 “사측 취업 규칙 등에 해고에 관한 규정이 있고 이 규정이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위배된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회사가 2012년 실시한 인사 평가의 기준이나 항목들을 공개했던 점, 2014년 이후 성과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를 체계적으로 정비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인사 평가가 불공정하다거나 신빙성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저성과자 해고’ 기준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뤄진 인사 평가여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 평가는 △소속 노동자들에게 인사 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 절차를 만들어 놓았으며 △그 평가가 복수의 인사 평가권자에 의해 이뤄지는 절차를 뜻한다.
또한 엄격한 잣대로 노동자의 근무 능력이 낮음을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한 해의 인사 평가가 낮다고 해고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원이 수차례 직무 경고를 받아야 한다. 또한 직무 재배치 교육 후에도 평가가 나쁘거나 업무 향상 계획서 등 제출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노동자의 의지가 없는 경우도 근무 능력이 낮음을 증명하는 요인이 된다.
다만 노동자가 자신의 해고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사측이 제시한 해고 통지서에 사유가 기재돼 있지 않았다면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판단도 있다.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라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는 판결이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