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넘는 ‘니치 향수’, 일반 향수 밀어내고 대세 떠올라

MZ세대 사이에서 필수품 등극…시장 규모 5000억원 넘어

[비즈니스 포커스]

니치 향수를 찾는 소비자들이 급증하는 추세를 반영해 롯데백화점은 최근 잠실점 애비뉴엘 지하 1층에 여러 브랜드들을 추가로 입점시켜 고객 사로잡기에 나섰다.


‘마르코 부피니’, ‘라몬 모네갈’, ‘니셰인’….
6월 27일 찾은 롯데백화점 잠실점 애비뉴엘 지하 1층에 자리한 향수 코너에는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의 제품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다. 작은 병에 담긴 향수 하나가 20만원이 넘었다. 도대체 어떤 향이기에 이렇게 가격이 비싼지 궁금해 안내 직원에게 시향을 요청했다.

시향지에 뿌린 향수 냄새를 맡아 봤더니 기존에 사용해 왔던 일반적인 향수의 향기와는 분명 큰 차이가 있었다. 더 깊고 고급스러운 향이 코끝에 전해졌다. 왠지 이 향수를 뿌리면 더 세련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며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10만원 이하에 살 수 있는 일반 향수의 가격보다 2~3배 정도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매장에는 향수를 구경하러 온 방문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최근 뷰티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이 같은 고가의 ‘니치(niche : 틈새) 향수’ 구매 붐이다. 니치 향수는 조향사가 최상의 원료로 만든 향수를 의미한다.

패션 브랜드 등에서 대량 생산하는 일반 향수에서는 맡을 수 없는 독특한 향을 선사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며 향수 시장의 비주류에서 주류 상품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다.

니치 향수의 인기는 수치로도 엿볼 수 있다. 시장 조사 기관인 유러모니터는 한국의 프리미엄 향수 시장이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5000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MZ세대가 소비의 중심
한국 니치 향수의 역사가 10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에서 니치 향수 시장이 본격적으로 꽃피우게 된 것은 대략 2012년부터다. 현재 니치 향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조 말론 런던’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백화점 등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버버리·겐조와 같은 명품 브랜드에서 선보인 대중적인 향수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향을 지닌 조 말론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이때부터 니치 향수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또 조 말론 등장 이후부터 해외의 다양한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하루가 멀다고 한국 시장에 소개됐다. 니치 향수의 잠재력에 주목한 패션·유통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해외 니치 향수 브랜드들을 한국에 들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불과 10년 만에 니치 향수 시장은 5000억원 규모의 거대 시장을 형성했다.

니치 향수는 특히 ‘나를 위한 소비’에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요 소비층인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자사의 판매 동향을 분석해 보면 20~30대 젊은 소비층의 니치 향수 구매 비율이 도드라진다”고 설명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딥디크·바이레도·메모 등 한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해외 니치 향수 브랜드의 한국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 대해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니치 향수가 상류 사회 고객층 또는 소수의 선택을 받은 고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구매 시 더욱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며 “이 같은 특성이 명품 구매에 돈을 아끼지 않는 MZ세대의 소비 성향과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패션·유통업계 급증하는 수요 사로잡기 나서지난해 불거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도 니치 향수가 대중화되는 데 한몫했다.

마스크 장기 착용으로 색조 화장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대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독특한 향을 즐기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또 여행 자제 등에 따른 보상 소비에 따라 고가의 니치 향수를 사는 소비자들이 늘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올해 들어서는 니치 향수의 인기가 전년보다 한층 더 높아진 분위기다. 니치 향수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나 인지도가 지난해 급격히 상승하면서 고가로 느껴지던 니치 향수 가격에 대한 저항이 많이 줄어든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1~6월 니치 향수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무려 56.5% 늘었다.

한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일반 향수 시장의 판매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니치 향수를 찾는 이들이 최근 크게 늘어나는 추세”라며 “과거 소수의 고객만 찾던 니치 향수가 어느덧 향수 시장의 주류로 떠올랐다”며 최근의 분위기를 전했다.

수요를 잡기 위한 기업들의 발걸음도 더욱 빨라졌다. 기자가 6월 27일 방문한 롯데백화점 잠실점 애비뉴엘 지하 1층도 롯데백화점이 급증하는 니치 향수의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최근 재정비한 공간이다. 지난 5월 기존보다 니치 향수를 판매하던 매장 면적을 2배 정도 늘리고 7개의 신규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이며 고객 사로잡기에 나섰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니치 향수 판권을 갖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조 러브스’ 등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계속 추가로 들여오며 잰걸음 행보를 펼치고 있다.

홈쇼핑업계도 니치 향수 판매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CJ온스타일은 6월 23일 가격이 무려 100만원에 달하는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우비강’을 방송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다.

후각적 체험이 중요한 고가 향수의 TV 홈쇼핑 판매 방송 편성은 이례적이다. 니치 향수가 얼마나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니치 향수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신규 브랜드가 무조건 비싼 가격이나 고급 디자인을 앞세워 시중에 판매 중인 사례도 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혜연 신세계인터내셔날 바이어(딥디크 담당)는 “진정한 고급 니치 향수는 최상의 원료를 아름답게 디자인하는 테크닉뿐만 아니라 브랜드만의 뚜렷한 헤리티지와 철학을 갖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점차 믿을 만한 대기업을 통해 유통되는 니치 향수들의 신뢰도나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수연 롯데백화점 화장품팀 선임 상품기획자
“특징 없는 일반 향수, 판매 계속 하락세”


“특징이 없고 대중적인 일반 향수의 판매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정수연 롯데백화점 화장품팀 선임 상품기획자는 최근 향수 시장의 흐름을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런 추세에 맞춰 기존에 일반 향수만 생산해 오던 패션 브랜드들도 니치 향수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니치 향수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니치 향수와 일반 향수 브랜드를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가장 큰 구분 방법은 향기의 차이다. 니치 향수는 합성 향료를 기반으로 대량 생산되는 일반 향수에 맞서 탄생했다. 쉽게 설명하면 일반 향수의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 진저나 너트맥 등을 활용해 향의 본질인 ‘천연 향’을 내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희소성이 강한 향이 나타난다. 특히 고가의 니치 향수 브랜드들은 핸드 메이드 방식으로 생산해 더욱 차별화된 향을 느끼게 한다. 일반 향수와 달리 향수를 만든 조향사의 철학이나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녹아 있는 것도 니치 향수만의 특징이다.”

-MZ세대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니치 향수의 ‘소수만을 위한 향’이라는 콘셉트는 개인화와 차별화를 추구하는 MZ세대의 소비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명품처럼 희소성이 높은데 20만~40만원대라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일반 향수 시장의 동향은 어떤가.
“니치 향수가 현 향수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향수 시장은 상대적으로 하락세다. 향의 특징보다 대중적이고 대량화에 치우쳐 있는 일반 향수의 매력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일반 향수 매출도 연평균 25% 정도 감소하는 추세다.”

-니치 향수가 일시적인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은 없나.
“코로나19로 인해 메이크업의 비율이 낮아지고 특별한 향기로 본인의 개성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뷰티 트렌드가 완전히 변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뷰티업계 동향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니치 향수 분야를 더욱 강화하고 나섰다. 샤넬·디올·에스티로더 등은 기존 자사 향수를 더욱 고급화한 니치 향수의 비율을 계속 높이고 있다. 또한 로레알같은 글로벌 뷰티 브랜드도 해외 고가 향수 브랜드들을 인수·합병(M&A)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형 패션 그룹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과 삼성물산 등도 지속적으로 니치 향수의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니치 향수 시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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