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일하고 매니저도 필요 없다’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가상 모델들
입력 2021-07-09 06:41:08
수정 2021-07-16 13:34:21
MZ세대 소구력·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커스터마이징 가능
샤넬·프라다 등 글로벌 브랜드도 러브콜
릴 미켈라는 열아홉 살의 브라질계 미국인으로 로스앤젤레스(LA)에 거주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303만 명을 보유하고 있고 발매한 음원은 스포티파이에서 8위까지 차지했다.
샤넬·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의 모델과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최근엔 팝스타 레이디 가가, 비욘세,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소속된 할리우드 3대 에이전시 CAA(Creative Artists Agency)와 계약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가상 인플루언서로 활약하면서 2020년 한 해 벌어들인 수익만 130억원에 이른다. 릴 미켈라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단가는 8500달러(약 962만원)다.
이는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 얘기다. 릴 미켈라는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가 만든 디지털 휴먼이다. 디지털 휴먼은 인간의 모습, 행동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3D 가상 인간을 말한다. 고수준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을 활용해 실제 인간의 얼굴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의 극사실적인 형태를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휴먼은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석 기술·클라우드·고성능 컴퓨터 등 첨단 기술이 융합돼 사람과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디지털 휴먼은 단순한 디지털 이미지가 아니다. 가상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인스타그램 등 SNS 플랫폼을 활용해 실제 사람처럼 일상 사진을 올리고 팔로워들과 채팅을 통해 교감한다.
디지털 휴먼은 메타버스의 핵심 콘텐츠로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확장이 용이해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휴먼의 활용 분야는 엔터테인먼트·유통·교육·금융·방송 등 전 산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시장 조사 업체 스태티스타는 가상현실(VR) 산업의 시장 규모가 2023년 51억 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타버스 확산도 디지털 휴먼 인기에 한몫
디지털 휴먼의 등장으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인스타그램·유튜브·틱톡 등 SNS 플랫폼을 통해 마케팅하는 인플루언서 산업이다. 디지털 휴먼은 인지도가 올라가 실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홍보하는 모델(가상 인플루언서)로 기용되기도 하고 가수와 배우 등으로도 활동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디지털 휴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인간 인플루언서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디지털 휴먼은 활동의 시공간적 제약이 없고 기업 홍보에 필요한 이미지로 최적화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브랜드 이미지에 맞춰 모델·배우·가수 등으로 활동 범위를 자유롭게 확장할 수 있고 브랜드가 요구하는 재능(연기, 노래·춤, 댓글 소통 능력 등)도 만들 수 있다. 커스터마이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인간 인플루언서와 비교해 가상 인플루언서들은 비용이나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365일 24시간 내내 근무할 수 있고 매니저도 필요 없으며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릴 가능성도 제로(0)에 가깝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휴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CES) 2020’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인공 인간 ‘네온(NEON)’ 이후 LG전자가 올해 1월 ‘CES 2021’에서 디지털 휴먼 ‘김래아’를 선보였다.
자이언트스텝은 디지털 휴먼 ‘빈센트’를 개발하고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에스파의 아바타인 ‘아이에스파’를 만들어 냈다. 삼성전자는 릴 미켈라를 삼성 갤럭시 앰버서더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LG전자도 김래아를 활용해 신제품 홍보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뜨면서 디지털 휴먼의 활용도는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서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호소할 수 있는 디지털 휴먼을 활용한 광고와 디지털 마케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브랜드들의 디지털 휴먼 관련 마케팅 비용이 2019년 약 8조8400억원에서 2022년 약 16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주요 소비층이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Z세대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인간 인플루언서나 광고 모델 대신 디지털 휴먼을 광고 모델로 활용하는 기업들은 더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인터뷰] 김형일 온마인드 대표
“인간보다 주목도·표현력에서 강점…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
디지털 휴먼이 샴푸 광고에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디지털 휴먼 ‘수아’의 개발사 온마인드는 최근 미국 AMD와 3D 캐릭터의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AMD 트레스FX’ 기술 개발 협업에 나섰다. 수아에 AMD 헤어 시뮬레이션 기술을 적용하면 더 사실적인 머리카락을 표현할 수 있다.
온마인드는 수아의 쇼트 폼 동영상 콘텐츠를 틱톡에 업로드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는 수아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등 비주얼적인 측면을 부각하며 세계관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김형일 온마인드 대표는 “디지털 휴먼은 사람 모델과 다른 인상적인 방식의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며 “수아는 먼저 엔터테이너 활동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디지털 휴먼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휴먼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층의 구매력이 높아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존과 다른 마케팅이 늘고 있는 것 같다. 디지털 휴먼은 전통적인 미디어 채널이 아니라 다양한 소셜 플랫폼과 온라인 채널들을 통한 브랜딩에 집중하고 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고도화되고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트렌드나 기술력을 중시하는 기업들과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휴먼의 활용 분야는 어디인가.
“방송·엔터테인먼트·커머스·모델·스마트 비서 등 앞으로 많은 부문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역할들을 수행하기에 앞서 대중에게 디지털 휴먼에 대한 존재를 알리고 인지도를 높여야만 실제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수아’는 1차적으로 대중과 가장 활발히 소통할 수 있는 엔터테이너로서의 활동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이를 통해 디지털 휴먼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능성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계획이다.”
-인간 인플루언서와 비교해 최대 장점은 무엇인가.
“비주얼 구현의 자유도, 매니징의 용이성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델의 역할로만 봤을 때 가장 현실적인 두 가지 장점은 ‘주목도’와 ‘표현력’이다. 광고의 특성상 시청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면 메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휴먼이 가진 새로움과 신기함을 잘 활용한다면 1차 목표인 주목도 제고의 측면에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비주얼적인 부분에서의 표현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디지털 휴먼인 만큼 사람 모델을 활용해 제작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화적·만화적 표현을 통해 기존과는 결이 다른 인상적인 방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다만 사람 모델은 분명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한다는 접근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광고의 방식과 표현의 범주를 확장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디지털 휴먼이 인간 모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나.
“사실 모델뿐만 아니라 스크린 내에서 사람이 수행하고 있는 많은 역할을 디지털 휴먼 또한 수행할 수 있고 앞으로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휴먼이 사람이 해 오던 다양한 역할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달력·호소력·몰입감 등 디지털 휴먼보다 사람이 가지는 비교 우위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휴먼만이 가지는 효과와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추가적인 장르가 되도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
“‘수아’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강점을 활용해 엔터테이너로서 대중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디지털 휴먼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 갈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차기 디지털 휴먼들을 공개할 예정이고 대중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버추얼 월드도 구축할 계획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완전한 디지털 휴먼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국내외 파트너들과 협업하고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