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개발 선언했지만 품질·시장성 등 난제…배터리 업체와 합작, M&A가 현실적 대안
[테크 트렌드]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간 전기차 배터리 주도권 싸움이 거세다.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 자체 개발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포드는 4월 27일 전기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배터리 내재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배터리 자체 생산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1억8500만 달러(약 2060억원)를 들여 배터리 연구·개발센터인 ‘포드 이온 파크’를 설립하고 이곳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를 자체 개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테슬라와 폭스바겐은 10년 내에 전기차 배터리 상당 부분을 직접 조달하겠다고 선언했고 제너럴모터스(GM)·BMW·포르쉐·도요타·현대차도 직접 개발을 선언했다. 왜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릴까.
먼저 배터리 내재화 바람이 거센 배경에는 전기차 배터리가 차지하는 높은 원가가 자리한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비율은 30~40%에 달한다. 배터리 가격 최소화가 곧 영업수익과 직결된다. 내연 기관 차에서는 부품 하나가 이 정도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전기차 전쟁에선 배터리 주도권을 잡아야 이긴다.
정부 지원금 등에 업은 자동차 기업
정부 지원금 활용에도 목적이 있다. 세계 1위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은 최근 2030년까지 유럽 내 배터리 공장 6곳을 증설해 연간 240GWh 배터리 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유럽이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지원금을 쏟아내고 있기에 가능한 계획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의 전기차 배터리 관련 지원금은 1년 사이 10배 증가한 61억 유로(약 8조900억원)에 이른다. 국제 신용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세계 배터리 생산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0년 6%에서 2025년 25%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배터리 업체를 압박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배터리 가격을 떨어뜨리고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 완성차 업체의 화두다. 이에 따라 현재 경쟁적으로 배터리를 수주하고 있는 배터리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향후 협력을 얻어 내거나 가격 다운을 협상하는 것이 완성차 업체의 목적이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자체 개발하다 보면 다양한 배터리 개발 원가 정보와 이슈를 알게 되므로 가격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완성차 업체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배터리가 필요하다. 배터리는 내연 기관 차에서 엔진이 하던 역할을 넘겨받았다. 이 부품을 계속 외부에서 사 오는 상황을 방치하면 완성차 업체는 부품을 사와 단순 조립만 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전기차 시대에 자체 배터리 개발, 생산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 것은 완성차 업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를 직접 개발, 생산할 수 있을까. 만약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직접 개발, 생산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어떻게 선택과 집중으로 공략해야 할까.
기술적으로 배터리 선도 업체가 수십 년 시행착오를 거쳐 천문학적 투자를 바탕으로 이룩한 지금의 성과를 완성차 업체가 단기간에 좁히기는 어렵다. 톱 티어 배터리 업체들이 20년 이상 연구하고 10년 정도 대량 생산 경험을 쌓아 온 것이 이를 말해 준다. 배터리 선도 업체의 특허 기술을 우회해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기술적으로 잘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다. 대량 생산해 내는 것도 역시 어렵다. 톱 티어 배터리 업체가 기술 개발 후 실제 대량 생산에 성공하기까지 최소 수년이 걸렸다. 대량 생산 역량을 갖추는 것은 기술 개발과는 별도의 또 다른 숙제다.
완성차 업체가 이제 막 시작한 배터리 연구로 상용화된다고 하더라도 저품질의 기초 단계 제품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에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 : 한 제품의 제품 개발 콘셉트의 개발에서부터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에 한참 뒤진다. 고품질 배터리는 내구성·안정성 등 민감한 이슈가 많기 때문에 개발과 양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선행 기술 개발도 아니고 지금 당장 글로벌 시장 배터리 수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연구에 매진할 여유가 없다.
자체 개발 시, 자사외 수요처 확보 어려워
비용 측면은 어떨까. 완성차 업체는 자사가 생산한 배터리를 자사 자동차에 탑재할 것이다. 예를 들어 폭스바겐이 생산한 전기차 배터리가 폭스바겐에 탑재되지 GM이나 BMW에 탑재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수익성 문제를 볼 때 이것은 남는 장사가 아니다.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업체처럼 이미 설립된 생산 라인과 생산 기술을 접목할 여러 완성차 고객사를 유치할 수 없다. 원 소스 멀티유스가 불가능하다.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차보다 배터리를 더 팔아야 하는데 이것이 어렵다.
GM은 2020년 5월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작 법인인 ‘얼티엄셀즈’를 설립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에 연 30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향후 23억 달러(약 2조5400억원)를 추가로 들여 테네시 주에도 둘째 공장을 짓기로 했다. 테슬라는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배터리 업체 LG에너지솔루션·파나소닉과 협력 중이다. 폭스바겐은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와 손잡았다. 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완벽한 자체 개발이 아닌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래 자동차 산업은 정보기술(IT)·통신·서비스 등 다른 업종과의 유기적 협업이 강조된다. 수평적 통합이 중요해졌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의 최고끼리 협업하면 시간과 비용 모두를 절감할 수 있다.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업체 간 합작 법인, 인수·합병(M&A) 방식이 완성차 업체 자체 개발보다 훨씬 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충전기 수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블루오션이다. 전기차 고객의 요구 사항 1위는 언제나 빠른 충전이다.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전기차 충전 서비스 업체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고 1만7000개의 급속 충전소 인프라를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 차량을 픽업해 최대 80% 충전 후 고객에게 다시 차량을 인도해 주는 ‘픽업앤충전 서비스’도 선보인다.
생활 공간 곳곳에서 충전 접근성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옛 공중 전화 부스가 최근 전기차 충전 스테이션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유소와 편의점도 전기차 충전 서비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규모 충전 인프라 시설만 답이 아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일상 접근성이 좋은 ‘틈새 공간 충전소’와 컬래버레이션도 좋은 시장이 될 수 있다.
사실 충전 수익도 수익이긴 하지만 그보다 사용자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얼만큼 무슨 문제로 전기차를 충전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는 충전 빅데이터를 잘 모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여기에서 축적되는 충전 빅데이터가 양과 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충전 인프라 서비스 자체에 대한 소비자 반응, 특정 지역의 전기 저장 상태, 지금 바로 사용 가능한 충전기가 있는 충전소 정보, 전기차 이용 형태, 배터리 수명, 충전 시간 등 고객과 직접 살을 맞댄 서비스 카테고리부터 배터리 기술 엔지니어링 카테고리까지 다양한 빅데이터가 수집된다. 이 빅데이터를 가지고 현재 먹거리를 개선할 수 있고 다음 먹거리를 발굴해 낼 수 있다. 이 사업을 ‘충전 인프라 사업’이 아니라 ‘스마트 에너지 매니지먼트 사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완성차 업체들의 선전 포고에 배터리 업체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다음 호에서는 배터리 업체의 성공 전략을 살펴본다.
정순인 LG전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