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투자’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건물주 꿈’ 이룬다

이색 투자법으로 각광 받는 빌딩·음악 저작권 지분 거래

[비즈니스 포커스]

아트앤가이드는 지난 6월 9일 6000만원에 공동 구매한 일본의 유명 작가 야요이 구사마의 작품을 7월 1일 6800만원에 매각했다. 투자자들이 13.3%의 수익을 거뒀다.


값비싼 예술품 구매는 이른바 ‘슈퍼 리치’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대표적인 재테크 방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술품의 가치도 쑥쑥 올라가니 ‘이만한 고수익 투자처도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곤 했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있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세입자에게 월세를 받아 매달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다 시간이 지나 팔아도 큰 차익을 낼 수 있다. 연예인이 수년 전 투자한 빌딩을 되팔아 수십억원의 차익을 올렸다는 소식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고가의 예술품이나 건물은 다른 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여기에 투자할 만한 ‘종잣돈’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조각 투자’는 이런 대중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는 ‘이색 투자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개인 투자자가 홀로 구매하기 어려운 예술품이나 빌딩 같은 고가의 상품들을 여러 사람들이 십시일반 투자해 사들인 뒤 가치가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되팔거나 개인이 소유한 지분을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도록 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여느 투자가 그렇듯이 자칫하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수 있지만 조각 투자 방식은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투자법으로 인기몰이한화자산운용과 가상 자산 전문 기업 크로스앵글이 7월 12일 일반 성인 남녀 53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조각 투자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약 17%가 부동산이나 예술품 등을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조각 투자를 해 봤다고 응답했다. 10명 중 2명이 조각 투자를 이미 경험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입소문도 났지만 거액이 아닌 커피 한 잔 값 정도인 소액 투자가 가능한 것도 조각 투자의 인기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조각 투자는 대부분 플랫폼을 통해 이뤄진다. 급증하는 투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상품에 투자하는 플랫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조각 투자가 이뤄지는 분야는 단연 예술품을 꼽을 수 있다. 예술품은 감가상각이 없어 금과 함께 전통적인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고 있어 특히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플랫폼으로 아트앤가이드를 꼽을 수 있다. 아트앤가이드는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투자자들을 모아 공동 매입한 뒤 값이 더 오르길 기다렸다가 웃돈을 붙여 매각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분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투자할 수 있는 금액은 작품별로 차이가 있는데 대략 1만원부터 참여할 수 있다.

아트앤가이드가 지난 6월 9일 6000만원에 공동 구매한 일본의 유명 작가 야요이 구사마의 작품이 7월 1일 6800만원에 매각돼 투자자들이 13.3%의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매각 시점은 아트앤가이드의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검토해 결정한다.

‘테사(TESSA)’라는 이름의 플랫폼도 인기다. 앤디 워홀, 뱅크시 등 해외의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최소 1000원부터 소유할 수 있게 해 완판 행진을 기록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고액 자산가들만 가능했던 투자의 진입 장벽이 허물어진 모습이다.

최근에는 건물로 대표되는 부동산 투자도 인기를 끌고 있다. ‘불로소득’이 가능한 건물주가 되는 것은 아마 수많은 직장인들이 갖고 있는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금수저’가 아닌 이상 현실에서 건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역주행 돌풍에 저작권 지분 투자 관심 급증핀테크 기업 카사코리아가 운영하는 ‘카사’는 건물주가 되고 싶은 이런 직장인들의 꿈을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가깝게 실현해 주는 플랫폼이다.

건물의 지분을 주식처럼 구매하고 되팔 수 방식으로 투자자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해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카사의 첫 거래는 지난해 말 이뤄졌다. 서울 강남에 있는 ‘역삼 런던빌’이라는 이름의 건물의 지분을 주식(주당 5000원)처럼 나눠 일반인들에게 판매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첫 거래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지분이 완판됐다.

카사는 최근 강남에서 추가로 빌딩의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공모’를 한 번 더 진행했는데 불과 2시간여 만에 판매가 완료됐다.


건물 지분을 구입한 투자자들은 다른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이를 판매할 수 있다. 건물 값이 오를 수록 자연히 지분의 가치도 올라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지분을 팔지 않고 계속 갖고 있어도 3개월에 한 번씩 배당금을 지급해 수익을 낼 수 있다.

카사는 최근 추가로 강남 빌딩의 지분을 투자자들에게 판매하는 ‘공모’를 한 번 더 진행했다. 불과 2시간여 만에 판매가 완료되면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는 음악 저작권 공유 플랫폼 ‘뮤직카우’를 통한 조각 투자가 인기다. 뮤직카우는 음악을 만든 제작자들에게 음원 지분을 매입한 뒤 이를 쪼개 투자자들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플랫폼이다.

현재 약 1만여 곡의 음원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매주 5개 정도의 곡의 지분을 일반인들이 살 수 있도록 새롭게 공개하고 있다. 한 번 지분 거래가 진행된 음원은 주식처럼 계속 사고팔 수 있다. 지분을 계속 보유하면 지분에 따른 저작권료를 정산해 줘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특히 뮤직카우는 최근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이라는 곡이 역주행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해 말 뮤직카우에서 거래가 시작된 ‘롤린’의 지분 1개당 가격은 약 2만원 정도였다.

올해 초 역주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현재 ‘롤린’ 음원의 지분 1개 가격은 약 70만원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브레이브걸스를 계기로 음원 역주행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만큼 운이 좋으면 음원 저작권 거래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며 신규 투자자들이 계속 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뮤직카우 관계자는 “기존에는 MZ세대 회원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음원 저작권 거래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장년층 신규 고객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인터뷰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
“‘부익부 빈익빈’ 심화가 조각 투자 열풍 원인”


‘조각 투자’의 방식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없어서 못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롤렉스도 급기야 투자 상품으로 등장했다. 조각 투자 플랫폼 ‘피스(PIECE)’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바이셀스탠다드를 통해서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롤렉스 시계 여러 점을 묶어 투자 상품으로 공개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두 번 모두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순식간에 마감됐다. 신범준 바이셀스탠다드 대표에게 이 같은 투자 상품을 출시한 이유와 조각 투자 열풍이 일어나는 배경에 대해 들어봤다.

어떤 계기로 피스라는 플랫폼을 만들게 됐나.
“오래전부터 미술품, 명품 시계, 와인, 아트토이 등 당시엔 투자 상품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현물 자산을 관심 있게 살펴보고 꾸준히 수집해 왔다. 자연스럽게 가치 있는 현물의 상승세를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몇 년간 성장해 온 리셀 시장의 확산을 지켜보면서 이를 사업화해 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됐다. 우수한 현물 자산을 모아 금융 상품으로 개발하면 소액으로도 의미 있는 수익을 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 생각이 피스 개발의 단초가 됐다.”

조각 투자 상품으로 잇따라 롤렉스를 내놓았다.
“롤렉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구축한 럭셔리 브랜드다. 다양한 모델이 있는데 최근 돈이 있어도 구매하기 어려울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자연히 많은 모델들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고 많은 ‘웃돈(프리미엄)’이 형성돼 거래가 이뤄진다. 그래서 롤렉스를 활용한 투자 상품을 선보이게 됐다. 한 개의 상품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짧은 기간 높은 수익률을 내기 바라는 소액 투자자들의 니즈에 부합하기 위해 여러 개의 상품을 묶어 선보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4월 서비스 론칭과 동시에 공개한 1억1800만원 상당의 ‘피스 롤렉스 집합 1호’를 공개했고 6월에는 1억2200만원 상당의 ‘집합 2호’를 내놓았는데 모두 조기에 완판됐다. 대체 투자에 대한 열띤 관심을 체감할 수 있었다.”

왜 조각 투자가 각광받는다고 생각하나.
“최근 2030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투자 열풍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함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며 경제적 격차에 따른 정서적 소외감이 사회에 만연하게 됐다. 2030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하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투자에 손을 뻗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상품들을 선보일 예정인가.
“1억~1억5000만원 상당의 롤렉스 관련 상품들을 추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파텍필립·까르띠에 등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는 시계 집합, 에르메스·샤넬 등 하이엔드 브랜드의 명품 백 집합, 미술품 중에서 단기간 내 수익이 발생하는 작가의 그림, 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거나 브랜드 스토리가 있어 단가가 높은 명품 스니커즈, 출고 즉시 프리미엄이 형성되는 자동차 등 다양한 종류의 현물 포트폴리오를 발굴하고 기획해 투자 상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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