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찾아온 건설사 ‘꽃길’…25차례 정책도 잡지 못한 주택 시장 호황
입력 2021-07-22 06:15:02
수정 2021-07-22 08:53:04
정부 의도와 반대로 가는 부동산 시장, 건설사 ‘미소’ 실수요자 ‘한숨’
[스페셜 리포트]한국의 건설 회사들은 2000년대 중반 꽃길을 걸었다. 2003~2007년 원자재 슈퍼 사이클(장기 상승세)이 나타난 시기에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플랜트 프로젝트 발주가 이어지면서 호황을 누렸다. 당시 한국의 주택 시장이 성장 정체를 겪고 있었지만 다수의 해외 플랜트를 수주해 ‘큰돈’을 벌었다.
현대건설·DL이앤씨(구 대림산업)·GS건설·대우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 한국의 주요 건설 5개사의 2007년 시가 총액은 35조7600억원에 달했다. 단, 역대급 시가 총액과 비교해 해외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한 저가 출혈 수주 경쟁으로 영업이익은 높지 않았다. 당시 5개사의 영업이익은 1조9290억원에 머물렀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건설사의 ‘피크’는 2011년이다. 5개사는 해외 프로젝트와 동시에 수익이 큰 한국 주택 시장에 다시 집중하며 영업이익 2조5280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찾아온 불황에 건설업계는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건설업계에 ‘피크 사이클’이 재도래한 시점은 지난해부터다. 문재인 정부가 수많은 정책 발표와 각종 규제를 쏟아내며 부동산 시장 잡기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서 집값 급등세가 이어졌다.
집값이 오르면 실수요자인 국민의 부담은 커지지만 건설업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이슈다. 분양 물량이 늘어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한국의 5개사는 지난해 영업이익 3조424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으로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건설사에 ‘피크 사이클’이 찾아왔다.
가지 않는 겨울 없고 오지 않는 봄 없다
건설사 관계자를 만나 가장 힘들었던 한 해를 물어보면 입을 모아 ‘2013년’을 꼽는다. 해외 플랜트와 한국의 미분양 물량에 따른 손실로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1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지 않는 겨울 없고 오지 않는 봄은 없다. 경기에 민감한 업종인 만큼 5~6년을 주기로 상승·하강 사이클이 나타난다. 2018년 기준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호황 국면에 돌입한 건설업은 현재까지 순항하고 있다.
올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에는 분양 시장 호황에 따른 주택 사업 호조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분양 시장 호황이 시장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청약 열기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올해 분양 목표를 지난해보다 높게 설정했다. 또 지난해 계획했지만 인허가 등의 문제로 올해로 순연된 물량도 다수 있어 실적 상승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은 초·중기에는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급 확대로 방침을 바꿨다. 3기 신도시처럼 수도권 공급 확대 방안을 수차례 발표했고 기존에 지연되던 주택 사업 인허가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기업별로 속도에 차이는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양 물량을 늘려 왔다. 올해 분양 성과에 따라 이번 연도와 내년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배경이다.
대형 건설사 중 지난해와 비교해 가장 많은 분양을 진행 중인 곳은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별도 기준으로 1만9825가구, 현대엔지니어링 7942가구 등 2만7767가구를 분양했다. 올해는 현대건설 3만1938가구, 현대엔지니어링 2만51가구 등 지난해보다 87% 많은 5만1989가구를 분양한다.
분양가와 분양 물량을 고려하면 신규 주택 공급에 따른 올해 수익은 1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최대치였던 2015년 102조원과 지난해 101조원보다 15~16% 늘어나는 셈이다.
해외 물량도 201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많이 줄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이다. 지난해 해외 수주는 351억 달러(약 40조1400억원)로 2019년 223억 달러(약 25조5050억원) 대비 57.4% 늘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기존 석유·화학 플랜트 등 대형 프로젝트의 발주가 지연됨에도 불구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신시장과 인프라 등의 수주가 증가한 덕분이다.
국내외 실적을 종합하면 지난해 신규 수주는 역대 최초로 200조원을 돌파한 213조원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올해 경신될 가능성이 높다. 공공 주택과 도시 교통 확충 계획, 민간 분양 물량 증가 등이 국내외 수주와 건설사 매출 등 외형 성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건설사에는 확실한 ‘봄’이 찾아왔다. 이 시기는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수주 증가와 함께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 수요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신규 수주 고점 돌파와 분양 물량 증가로 한국 건설업계의 향후 2~3년 매출 증가는 확정적”이라며 “특히 주택 사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만큼 매출액 증가 수준으로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정책에 내성 강해진 부동산 시장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25회에 달하는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중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정책은 단 2회에 불과하다. 2017년 8·2 대책과 2018년 9·13 대책 당시에는 정책 발표 후 일정 기간 가격 상승률이 둔화된 바 있다.
하지만 2018년 말 미국이 기준 금리를 인하했고 한국 역시 금리 인하 국면에 접어들면서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이 더욱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잦은 핀셋 규제는 점차 힘을 잃었고 부동산 시장은 정책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
정부가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지정·관리하고 있지만 이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전국의 절반이 규제 지역에 포함돼 변별력이 없다. 규제지구의 인근 지역까지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등 오히려 집값을 폭등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17 대책으로 경기도 전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도 투기과열지구 49곳과 조정대상지역 111곳을 추가했다. 전국 시군구 236곳 중 절반 정도가 규제 대상에 속한 셈이다. 특히 수도권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서울 전 지역은 투기과열지구, 경기권 역시 대부분이 조정대상지역이다. 조정대상지역에 지정되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조정대상지역 내 2주택 이상 보유자 종부세 추가 과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9억원 이하 50%, 9억원 초과분 30% 적용 등의 금융 규제가 가해진다. 또 주택 구입 시 실거주 목적 외 주택 담보 대출 원칙 금지 등의 청약 규제 강화까지 적용된다.
투기과열지구는 옥죄기의 강도가 더욱 세다. 조정대상지역에 적용되는 규제에 더해져 조합원 지위 양도 및 분양권 전매 제한 등 정비 사업 규제 강화와 LTV(9억원 이하 40%, 초과 20% 등) 강화 등이 추가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에도 집값은 연일 고공 행진 중이다. 올해 상반기만 놓고 봐도 서울 아파트 값은 평균 1억원씩 올랐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한 편에 속하는 외곽 지역의 상승세가 뚜렷했고 고가 아파트가 밀집된 강남권도 상승률은 낮았지만 상승액으로 보면 크게 올랐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월간 KB주택시장 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4283만원이다. 지난해 12월 10억4299만원보다 1억원 정도(9984만원) 올랐다. 상승률만 보면 9.7% 상승한 셈이다.
반기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값이 1억원 수준으로 오른 것은 KB국민은행이 해당 통계를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지난해 하반기(1억1790만원)를 포함해 두 번뿐이다. 1년 기준으로 보면 지난해 6월부터 2억원 이상 올랐다. 동시다발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면서 무주택자가 서울에서 자력으로 집을 마련하는 것은 ‘언감생심’이 됐다.
문재인 정부 첫 규제 철회, 벌집만 쑤셨다
현재까지 발표된 수십 차례의 부동산 대책은 오히려 집값 폭등을 야기했다. 결국 정부 역시 시장 상황을 감안해 수요 억제에 집중하던 정책 방향을 수정했다. 공급 확대로 전환해 올해 2·4 대책에서는 서울에 32만 호, 전국에 83만 호를 추가 공급하는 대책 등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단, 해당 가구는 모두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 주택’이다. 또 2025년까지 공급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당장 집값을 잡기에는 무리다. 현 정부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공급 물량 확대는 ‘묘수’가 아닌 ‘악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 강력한 규제 실패를 절감하며 철회를 발표했지만 부동산 벌집만 쑤신 모양새가 됐다. 국토교통위원회는 7월 12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재건축 2년 거주 의무는 지난해 발표된 6·17 대책의 핵심이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이 아파트를 분양 받기 위해선 해당 단지에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발표 당시부터 여러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란 지적이 끝없이 쏟아졌다. 조합원인 집주인이 분양권을 받기 위해 2년간 실거주해야 한다면 전세나 월세 등으로 살고 있던 세입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결국 야당 의원과 반발 민심에 부딪쳐 1년여간 법안 통과가 지연되다가 철회됐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수많은 부동산 대책 중 핵심 규제가 철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거주 의무 규제가 강남 집값 상승을 자극했다고 평가한다. 압구정동 등 재건축 단지들이 조합 설립에 나서면서 해당 지역의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조합 설립 인가를 신청하면 실거주 규제 대상에서 빠질 수 있어서다.
실제로 대표적 재개발·재건축 대상인 압구정동 현대 7차 아파트 전용 면적 245.2㎡는 조합 설립 인가 직전인 지난 4월 2일 80억원에 실거래되면서 6개월 전 팔린 67억원 대비 13억원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신중하지 못한 대책 발표가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하지만 2년 실거주 의무가 백지화되자 그로 인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분양권을 받기 위해 세입자 대신 입주한 집주인들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지난해 6·17 대책 발표 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는 매일같이 이사를 가거나 들어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세입자들은 새 전셋집을 구해야만 했고 집주인은 실거주 2년을 채워야만 했다.
또한 집주인들은 실거주를 위해 비싼 인테리어도 시공했지만 의무 조항이 사라지면서 의미 없는 돈만 쓴 꼴이 됐다.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피해를 봤다는 불만이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쏟아지면서 정부의 신뢰도가 바닥에 뚝 떨어진 분위기다.
‘오락가락’ 정부에 하반기에도 주택 가격 상승 지속
정부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동산 정책 스탠스에 올해 하반기에도 주택 가격 상승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10명 중 5명은 하반기에도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부동산 정보 업체 직방이 지난 6월 14~28일 자사 애플리케이션 접속자 1669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49.4%가 하반기에도 본인의 거주 지역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역별로는 경기에서 하반기 집값 상승을 예상한 비율이 53.1%로 가장 높았고 인천(52.0%), 지방(47.6%), 서울(47.3%), 5대 광역시(23.7%) 순으로 나타났다.
상승 전망의 이유로 전·월세 상승 부담에 따른 매수 전환(25.6%)과 신규 공급 물량 부족(23.4%), 경기 회복 기대(11.9%) 등이 꼽혔다.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공인중개사 등도 집값 상승을 예상했다. KB국민은행이 7월 초 조사한 전국 주택 매매가격전망지수 역시 117.4를 기록해 100을 훌쩍 넘었다. 이 지수는 중개업소가 예상하는 3개월 후 시장 흐름 조사다. 지수가 100을 넘을수록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6월 24일 발표한 6월 주택 가격 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도 127로 올해 2월(129) 이후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 수치 역시 100을 넘을수록 주택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국민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하반기 전국 주택 매매 가격이 1.5%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도권은 1.6%, 지방은 1.3% 상승할 것이란 예측이다. 연간 상승률로 보면 전국은 5.5% 올라 지난해 5.4%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했다.
집값 지속 상승의 원인으로는 정부의 강력한 수요 억제책과 공급 확대 신호에도 집값 상승에 관한 기대가 여전하고 주택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아 수요 우위가 여전히 크다는 분석에서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수요자의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고 주택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계속되면서 기존 주택 매매 시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며 “역대급 유동성이 수년간 실물 자산에 집중되면서 집값이 계속 고점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