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벡스’ LG전자 ‘클로이 수트봇’…한국타이어, 스타트업 제품 현장 시범 도입
한국 제조업 현장서 웨어러블 로봇 산업 경쟁 치열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자신의 모든 능력과 현실에서 가능한 최강의 최첨단 과학 기술이 집적된 하이테크 슈트 ‘마크3(Mark3)’를 마침내 완성, 최강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으로 거듭난다.” (영화 ‘아이언맨’ 소개 발췌)
영웅 시리즈를 좋아한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아이언맨’의 붉은 슈트. 하늘을 날고 적을 무찌르는 강력한 무기까지 겸비한 ‘아이언맨’의 슈트가 현실화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자신의 능력을 최첨단 과학 기술로 끌어낼 수 있는 하이테크 슈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보조해 줄 이른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이다.
연평균 41% 고성장, 9조8000억원 기대
‘하루 평균 4600회, 1년에 수백만 회.’
제조 공정에서 작업자들이 팔을 사용하는 평균적인 횟수다. 장시간의 반복 업무는 누적된 피로나 부상으로 연결돼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제조 공정에 웨어러블 로봇이 속속 도입돼 공정을 혁신하고 있다.
차세대 기술인 웨어러블 로봇은 입는 로봇 또는 착용형 로봇, 외골격계 로봇이라고 불린다. 인간의 운동 능력과 근력을 보조하거나 증강시키기 위해 인체에 착용해 인간과 함께 동작하는 모든 로봇을 총칭하는 용어다. 사람의 팔·허리·다리 등의 신체 일부 또는 전신에 착용, 착용자의 근력과 지구력을 돕는 데 착용 부위와 적용 분야 등에 따라 세분화된다.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성장성이 돋보이는 미래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작업자들 사이에서 근력을 보조하는 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웨어러블 로봇은 인류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로봇 기술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브리지마켓리서치와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웨어러블 로봇 시장은 2017년 5억2800만 달러(약 6252억원)에서 2025년 83억 달러(약 9조8000억원)로 연평균 41% 고성장이 예상된다. 국방·소방 등 기업 간 정부(B2G), 제조·건설 물류, 간병·요양 등 기업 간 기업(B2B)을 넘어 농업·요식업 등 기업 간 개인(B2C) 시장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준석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로봇 PD는 2020년에 쓴 ‘웨어러블 로봇의 기술 동향과 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현재는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 웨어러블 로봇의 파급력이 우세하지만 2022년 이후 점차 제조 현장에서의 자세 보조용 제품 시장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술이 고급화되고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2030년에는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군수·건설 분야를 아우르는 산업 전반에 걸쳐 산업 현장 노동자의 작업 지원용 웨어러블 로봇 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이 PD의 전망처럼 오늘날 시장에서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제조 현장이다. 산업 현장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기계 설비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작업 공정에서 수작업으로 중량물을 반복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과도한 중량물을 취급하고 몸통을 반복적으로 굽히거나 펴는 동작들은 요통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허리를 이용해 중량물을 취급하는 들기, 내리기 작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요통 등의 근골격계 질환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고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웨어러블 로봇 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타 분야보다 노동자의 작업을 지원하는 용도인 산업 분야 웨어러블 로봇 시장의 성장세를 매우 높게 전망하고 있다.
장밋빛 기대에 기업은 물론 여러 정부 기관, 비영리 단체와 협회가 시장에 투자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차·LG 등 대기업을 비롯해 기술 스타트업까지 웨어러블 로봇 시장에 진출하면서 ‘아이언맨’의 붉은 슈트를 제조 공정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현대차·기아의 로보틱스팀은 2019년 생산 라인에서 위쪽을 보고 장시간 일하는 노동자를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인 벡스(VEX)를 개발했다. 벡스는 구명조끼처럼 간편하게 착용해 즉시 사용할 수 있고 중량도 2.5kg으로 기존 제품보다 최대 42% 가벼워 노동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또한 산업 현장의 특성을 고려해 전기 공급이 필요 없는 무동력 작동 형태의 로봇이다. 작업자들의 만족도를 자체 조사한 결과 동작 자유도가 높고 근력 지원 기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차·기아는 벡스를 일부 개조해 건설·물류·유통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LG전자는 2018년 8월 하체 근력을 지원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허리 근력을 보조하는 웨어러블 로봇인 ‘LG 클로이 수트봇’을 선보였다. LG 클로이 수트봇은 착용하는 사람의 하체를 지지하고 근력을 향상시키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산업 현장에서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제조업·건설업 등 산업 현장에서는 훨씬 적은 힘으로 무거운 짐을 손쉽게 옮길 수 있게 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보행이 불편한 사용자가 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500만~700만원…보급화 가능성 높여
한국타이어는 최근 일부 현장에 웨어러블 로봇을 시범 도입하며 작업자의 노동 강도를 낮췄다. 타이어를 옮기고 교체 작업을 할 때 웨어러블 로봇을 통해 무거움을 분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웨어러블 로봇은 생산기술연구원과 로봇 스타트업인 FRT가 개발한 ‘스텝업’이다. 큰 힘이 필요할 때는 유압을, 가벼운 작업에는 전기 모터나 스프링을 적용할 수 있도록 구동 방식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한국타이어를 비롯해 산림청·요양원 등에 납품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로봇 가격은 품목에 따라 대당 500만~700만원 정도로 기존 제품의 3분의 1 수준까지 낮췄다. 장재호 FRT 대표는 생산 규모를 늘리고 공정을 개선한다면 로봇 가격을 100만원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 현장과 일상생활 보조를 위한 웨어러블 로봇은 높은 관심과 수요가 있는 반면 비싼 가격과 상당한 무게, 불편한 착용감 등이 대중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장 대표는 “이미 고객 수요가 밀려 있는 상황”이라며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춘다면 보급 속도를 따라갈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웨어러블 로봇이 제조 현장에 이른 시간 내에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 제조업 현장에서도 웨어러블 로봇 산업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PD는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시장의 전 세계적 성장 추세는 노동 환경 개선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노동 인력 감소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할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19년 20.4명에서 2067년 102.4명으로 5배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의 고령 인구 부양비가 100명을 넘어서면서 역시 전 세계 최고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PD는 “세계적으로 노동 환경 개선과 노동 수명 향상을 목적으로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근력을 보조하기 위해 저렴하게 보급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에 대한 연구·개발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장재호 FRT 대표
“웨어러블 로봇 일상화 머지않았다”
한국타이어 티스테이션 대전점에서는 노동자들이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타이어를 교체한다. 현장에서 웨어러블 로봇은 노동자들의 허리와 다리 근력을 보조해 20kg 내외의 무거운 타이어를 자동차에 장착하는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슈트를 만든 곳은 바로 한국 기술 중심 스타트업 기업인 FRT다. 이 회사는 한국 최초로 유압식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장재호 FRT 대표를 만나 웨어러블 로봇 산업에 대해 물었다. 장 대표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로봇그룹에서 10년간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고 연구원 기업 창업과 웨어러블 로봇 최초 현장 상용화의 이력을 지닌 로봇 전문가다.
-FRT는 어떤 기업인가요.
“FRT는 실험실 환경에서만 구동되는 로봇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을 가진 회사란 의미로, 실제 현장에서 구동될 수 있는 로봇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중 웨어러블 로봇을 핵심 아이템으로 개발하고 있죠.”
-한국 최초의 유압식 웨어러블 로봇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박사 과정 때부터 웨어러블 로봇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만 미국에서 주로 연구하던 유압 구동 방식의 웨어러블 로봇은 연구비 규모, 기술, 요소 기술 미비로 할 수 없었어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근무하면서 기존 생기원 보유 기술(유압 구동 4족 보행 로봇 기술)을 활용해 유압 구동식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 수 있었죠. 유압 구동식 로봇에 들어가는 정밀 유압 기술인 서보밸브, 제어 알고리즘 등은 방산·우주항공 기술로 분류돼 외국에서 수입도 잘 안 되고 가격도 매우 비싸 기술을 도입하기가 어려웠죠. 유압으로 구동되는 웨어러블 로봇은 제조 현장뿐만 아니라 큰 힘을 지원해야 하는 분야인 국방과 소방에도 꼭 필요한 로봇이라고 생각해 생기원과 협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타이어에 적용된 웨어러블 로봇은 무엇인가요.
“‘스텝업’이란 웨어러블 로봇입니다. 수요가 많을 것으로 판단되는 노동자 작업 지원 웨어러블 로봇은 유압 구동식보다 무구동 또는 전기 구동식 웨어러블 로봇이 좀 더 비즈니스 모델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많은 현장에 저렴하고 빠르게 보급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한국타이어·산림청 등 우리가 주력으로 제공하고 있는 ‘현장 맞춤형 웨어러블 로봇 서비스’는 이미 하루에 3~4개 이상 기업이 현장 적용 가능 여부를 문의하거나 구매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웨어러블 로봇의 일상화’가 가능할까요.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모든 동작을 지원하는 웨어러블 로봇을 생각한다면 비용이나 무게 등 단점들 때문에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작업 현장마다 꼭 필요한 기능만 담은 웨어러블 로봇을 값싸게 만든다면 ‘웨어러블 로봇의 일상화’는 머지않은 시간에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미국·유럽·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도전이 시작됐어요.”
-한국은 2023년 로봇 산업의 4대 강국을 꿈꾼다고 합니다. 글로벌 경쟁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기업이 웨어러블 로봇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많은 경쟁이 예상됩니다.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웨어러블 로봇 분야를 산업화하기 위한 연구·개발(R&D) 과제 및 보급 사업을 통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산업부 관련 사업으로 많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의 웨어러블 기술 자체는 이미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품화·상용화 등의 노력은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이 부분은 기업·투자자·고객 측면에서 많이 노력해야죠. 4대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관련 주체들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겁니다. 특히 웨어러블 로봇 시장처럼 관련 분야 세계 1등 산업이나 제품 리더가 없다면 기술 개발 제품 도입 등에서 많은 실패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현재 시장의 크기나 완성도를 비교할 때 기존의 다른 산업과 같은 시각으로 웨어러블 로봇 산업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