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험 산업 성장 수년째 제자리
사전 예방·관리 중심 전담 자회사 설립하고 자체 앱 강화
최근 건강·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아픈 뒤 비싼 병원비를 쓰기보다 아프기 전에 몸 관리를 철저히 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전까지 사후 치료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사전 예방·관리로 중심축이 옮겨 간 것이다. 지난해부터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헬스케어(건강 관리) 사업에 불을 댕겼다.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의 신사업으로 헬스케어를 육성하겠다고 나서며 규제 장벽을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고령화·저출산·저성장 등 3중고를 겪고 있는 생명·손해보험사들은 헬스케어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앞다퉈 서비스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 50대 A 씨는 얼마 전 건강 검진을 받고 깜짝 놀랐다. 1년 전과 달리 건강 수치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이다. A 씨는 “직장 동료가 ‘운동하면 보험료를 할인해 준다’는 상품을 소개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고 보험 상품에 가입했는데 보험료 할인에 따른 동기 부여로 매일 운동량을 체크한 게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 직장인 B 씨는 결혼을 앞두고 다이어트에 돌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코로나19의 4차 유행으로 헬스장 이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결국 A 씨는 홈트(홈 트레이닝)를 하기 위해 지인에게 앱 추천을 부탁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보험사 앱을 추천 받았다.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보험사의 건강보험 상품이 질병에 걸리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사후 서비스에 그쳤다면 이제는 헬스케어 서비스로 가입자의 적극적인 건강 관리를 유도해 사전에 질병을 예방하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걷고 뛰는 등 건강 관리 활동에 따른 바우처를 제공하는 단순한 방식에서부터 식단 관리·홈트·명상 등 다양한 서비스를 건강 관리 플랫폼에서 제공한다. 최근엔 구독 경제를 도입하는 등 점차 진화하는 모양새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5월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주요 생명‧손해보험사의 최고경영자(CEO) 38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기회 요인으로 ‘디지털 금융 전환 가속화(48%)’와 ‘헬스케어 등 신사업 확대(25%)’를 꼽았다. 특히 이 두 키워드는 대형사는 물론 중소형사까지 골고루 주목했다.
지난해 반짝 이익 봤지만 다시 역성장 전망
왜 하필 헬스케어일까. 배경은 이렇다. 첫째, 전통 사업만으로는 전망이 밝지 않다. 보험 산업은 수년째 성장이 제자리걸음 중이다. 생명·손해보험사들은 시장 포화로 빨아들이는 보험료가 정체돼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낮아지고 저성장으로 인한 소득 정체,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부담 비율 상승 등 악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보험업계의 성장 지표 중 하나인 신계약 초회 보험료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생명보험 산업과 손해보험 산업의 성장성도 내림세를 보였다. 특히 생명보험은 2016년 이후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다만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로 자동차와 병원 이용이 감소하며 손해율이 개선됐고 증시 활황의 수혜까지 더해져 보험업계가 반짝 이익을 봤다. 생명보험은 4년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됐고 손해보험은 2012년 이후 가장 높은 성장률(6.1%)을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다시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은 보장성 보험 성장 둔화와 저축성 보험의 위축 등으로 수입 보험료가 전년보다 줄어들면서 다시 마이너스 성장했고 손해보험은 저축보험 부진과 자동차보험의 성장세 둔화로 전년 대비 4.0% 늘어난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장기 전망도 밝지 않아 보인다. 보험연구원은 2025년까지 퇴직연금을 제외한 생명보험 수입 보험료가 연평균 0.13%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해보험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수 보험료의 80%를 차지하는 자동차·장기보험 시장 포화로 추가적인 수요 확대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고령화…사망보험 수요 감소
둘째, 초고령화 사회가 눈앞에 다가왔다. 인구 구조 변화는 보험업계의 미래 대응 전략도 바꿔 놓았다. 1인당 노인 의료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년기의 월평균 급여 의료비는 29만7000원 정도로 중년기 10만원의 3배에 이른다. 노후에 급증할 수 있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예방에 관심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성훈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생명보험의 주력인 사망보험은 남는 사람들을 위해 들어 놓는 것”이라며 “그런데 저출산·고령화의 고착화로 사망보험을 들어야 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 대비가 중요해지고 결국엔 자산 운용과 건강 관리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어 보험사들이 새 먹거리로 헬스케어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해외 보험사들은 이미 각 나라에 맞는 의료 환경에 따라 헬스케어 사업이 한창이다.
개인 의료비 부담이 큰 미국은 보험사들이 건강보험 사업의 지원 수단으로 헬스케어를 활용하는 케이스다. 존행콕은 건강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포인트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보험료 할인과 제휴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모든 생명보험 상품에 탑재했고 카이저퍼머넌트는 병원 검진·진료 정보를 분석해 치료 시기가 지연된 환자들을 자동 감지하는 등 고위험 환자 사전 예측 서비스를 개발했다.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헬스케어 전문 자회사 옵텀을 통해 건강 관리 플랫폼을 운영 중인데 옵텀의 매출은 2011년 390억 달러에서 2018년 1010억 달러로 증가했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간병 서비스 중심의 헬스케어 사업이 활발하다. 솜포재팬홀딩스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시설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감지기가 장착된 침대를 요양 시설에 설치해 그로부터 얻어지는 고령자의 수면 활동과 생활 활동 등의 데이터를 확보한 뒤 고령층의 치매 방지를 위한 분석에 활용한다.
의료 공급이 부족한 중국은 당국이 보험사들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적극 지원하며 헬스케어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평안보험사는 운동 용품, 건강식품, 디지털 건강 기기 등을 판매하는 자회사를 운영 중인데 원격 의료 서비스와 건강 검진, 질병 위험 분석, 사후 모니터링 등의 헬스케어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시장 조사 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는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2020년 130조원에서 연평균 29.6% 늘어나 2025년엔 6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달라지는 정부 기조…보험사 헬스케어 사업에 긍정적
넷째,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사업에 대한 정부의 기조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이 최근 5년간 790억 달러에서 2060억 달러로 확대되는 동안 보험사들은 정부 규제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시동을 걸 수 없었다.
특히 2017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민간 보험사와 연구 기관에 국민 동의 없이 공공 의료 정보를 넘겼다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이슈로 비판이 계속되자 같은 해 11월 심평원의 진료 데이터 제공을 중단했다.
이후 보험사의 헬스케어 서비스는 스마트 기기와 연결해 많이 걸으면 보험료를 일정 부분 할인해 주는 등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됐다. 통계가 없는 만큼 다양한 상품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사태로 10대 비대면 신사업에 헬스케어가 선정되며 규제 완화의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해 말부터 보험 계약자 외에 일반인들에게도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보험사가 제공하는 혈압이나 혈당 관리, 당뇨병 예방, 의약품 정보 제공, 비만도·식단 관리 등 비의료 건강 관리 서비스를 보험 가입 여부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 7월엔 4년 만에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의 빗장이 풀렸다. 삼성생명·KB생명·한화생명·메리츠화재·삼성화재·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는 심평원에서 공공 의료 데이터 이용을 위한 최종 승인을 획득했다. 이와 별도로 보험사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공 데이터 이용을 위한 신청도 준비 중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공 데이터 개방 취지에 맞게 보험 사각지대에 있던 고령자·유병력자의 전용 상품 개발에 활용할 예정”이라며 “암 같은 중대 질환의 발병 이력과 패턴, 골다공증 환자의 골절 발생률 등 데이터를 분석해 예방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또 보험사가 헬스케어 관련 플랫폼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중국 핑안보험처럼 헬스몰을 자회사로 두고 운동 용품과 영양·건강식품, 디지털 건강 기기 등을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선불 전자 지급 업무도 허용돼 건강 관리 노력에 따라 보험사가 포인트를 주면 소비자는 이 포인트로 건강 용품을 사거나 보험료를 낼 수 있게 됐다.
자체 앱 구축하고 특허 출원…자회사 설립도
보험사들은 당국의 규제 완화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자회사 설립, 자체 앱 출시 및 확대,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형태로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가 통합해 출범한 신한라이프는 자사 앱 하우핏으로 디지털에 친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올해 3월 출시된 후 100일 만에 회원 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하우핏은 인공지능(AI) 기반의 홈 트레이닝 서비스다. 별도 웨어러블 장비 없이 모바일 카메라가 움직임을 인식해 제대로 된 동작을 하고 있는지 평가해 준다. 스쿼트 동작 시 다리 자세도 AI가 판단해 정확도 여부를 알려준다. 또 유명 인플루언서(헬스 트레이너)가 진행하는 라이브 클래스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실시간 피드백 받을 수 있다. IPTV 사업자인 KT와 협약, 앱 기반의 하우핏 서비스를 TV 스크린으로 확대해 서비스의 편의성도 높인다. 신한라이프는 하우핏을 구독 경제 모델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보험 계약자나 일반 이용자가 월 이용료를 내면 헬스 트레이너에게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이용자 노력 여부에 따라 보험료 할인이나 바우처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 최근엔 서울 강남구에 건강 측정 키오스크로 신장·체성분·혈압·스트레스 등 건강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센터를 마련했다. 건강 검진을 받은 고객은 상주해 있는 전문 간호사에게 필요 영양소에 대한 분석과 상담을 통해 맞춤 영양제를 추천받을 수 있다. 영양제 구입을 희망하는 고객은 휴대전화로 제품 QR코드만 찍으면 신한카드 온라인 쇼핑몰 ‘올댓쇼핑’을 통해 CJ제일제당이 출시한 건강기능식품 등을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삼성화재와 한화생명은 2~3년 전부터 자체 앱을 통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들 앱의 주 사용자는 중·장년층이다. 삼성화재의 애니핏은 지난 한 해 60대 이상 이용자(2020년 말 기준 약 3만7000명)가 200% 이상 증가했다. 애니핏은 2018년 6월 출시돼 지난해 11월 확대 개편됐다. 고객의 건강 상태 파악에서부터 건강 검진 예약, 골다공증 케어 등 종합적 디지털 헬스케어를 제공한다. 애니핏 이용자는 올해 6월 말 기준 약 37만 명으로 집계됐다. 또 삼성화재는 올해 애니인스·애니인 등 헬스케어 관련 보험 상표권을 출원하는 한편 간병인 매칭 서비스 플랫폼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등 헬스케어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화생명은 2019년 개인 건강 정보 기반의 건강 관리 서비스 앱 헬로를 출시했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의 건강 검진 정보와 일상생활에서의 활동량·영양·수면 등의 건강 정보들을 기반으로 다양한 건강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사용자의 과거 10년 치의 건강 검진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동시에 건강 수준을 나이로 환산한 생체 나이를 분석해 준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잡기 위해 AI 카메라를 활용한 식단과 영양 분석 기능도 담았다. 고객이 본인이 먹는 음식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으면 어떤 음식인지, 영양소와 칼로리는 어떤지 자동으로 AI가 분석해 알려준다. 올 들어선 업계 평균 이상의 보험료 할인을 제공해 이용자의 운동을 독려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헬로 앱 이용자는 약 2만5000명 정도인데 3월부터 월평균 걸음 수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며 “한국인 평균 걸음이 약 5700보인데 하루 평균 7000보 이상 걸음을 실천하는 회원 비율이 1분기 37%에서 2분기 44%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이 지난해 8월 내놓은 앱인 케어도 이용자 20만4000명 중 40~50대의 비율이 절반 이상이다. 건강 관리, 보험금 청구 등 서비스와 함께 명상·컬러테라피 등 멘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회사 설립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KB손해보험이다. 8월까지 금융위원회에 헬스케어 자회사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KB손보는 “지난해 말부터 자회사 설립을 준비한 만큼 준비는 돼 있다. 최근엔 인력 채용도 진행 중”이라며 “8월 인가가 나면 곧바로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형태의 사업을 준비 중인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다만 헬스케어 자회사가 개인은 물론 기업 보험과 단체 보험 가입 고객들을 대상으로 운동·스트레스 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성과가 있는 고객에게 자체 포인트를 지급하면 이를 보험사가 운영하는 헬스케어몰에서 이용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KB손보는 헬스케어 자회사를 통해 향후 요양 사업과의 시너지도 노릴 것으로 보인다. KB손보는 2016년부터 KB골든라이프케어를 자회사로 두고 거주형 노인 복지 시설과 재가 노인 복직 시설을 운영하는 등 요양 산업에 진출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그간 한국은 건강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 보호 측면이 강했다. 상대적으로 해외에 비해 헬스케어 산업이 뒤떨어졌다”면서도 “정부의 기조가 바뀌고 빅테크(대형 IT 기업) 등 새로운 플레이어도 참여하면서 보험사의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말했다.
이어 “자회사를 설립하고 앱을 개발하며 자체 역량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헬스케어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선 누군가와 손잡을지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