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과제 앞장서며 영업이익 줄고 인건비 증가
전기·철도 등 공공 요금 인상 억제로 재무 악화
여행·관광 업종은 코로나19에 휘청…적자 수렁
공기업의 영업이익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70% 정도 급감한 반면 인건비와 부채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한국판 뉴딜, 탈원전, 공공 주택 공급, 비정규직 제로화 등 정부의 정책 추진 비용 상당수를 주요 공기업에 의존하면서 ‘신의 직장’,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기업도 재정난에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탈원전 등 ‘정책 코드’ 맞추다 실적 곤두박질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부터 2020년까지 36개 공기업의 영업이익이 27조6255억원에서 8조3231억원으로 69.9% 감소했다.
같은 기간 공기업 임직원 수는 12만6972명에서 15만79명으로 2만3100여 명(18.2%) 늘면서 인건비는 9조7730억원에서 11조7887억원으로 20.6% 뛰었다. 공기업들의 몸집은 불었지만 실적은 4년 내내 곤두박질친 것이다.
공기업들의 실적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주된 요인으로는 코로나19와 정책 이행을 위한 비용이 꼽힌다. 코로나19로 공기업 매출이 급감했고 탄소 중립 이슈로 에너지 공기업들이 화석 연료 기반의 수익 실현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투자 비용도 늘고 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으로 지난해 36개 공기업 중 11곳이 당기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했다. 여행·관광 업종이 대표적이다.
한국마사회는 코로나19 사태로 주요 수익원인 경마가 중단되면서 지난해 4368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마사회가 적자를 낸 것은 1949년 설립 이후 6·25전쟁 때를 제외하고 처음이다.
벼랑 끝에 놓인 마사회는 온라인 마권 발매 등 비대면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마사회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지만 사행성 논란에 발목이 잡히면서 단기간 내 실적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당기순이익 3347억원을 올렸던 강원랜드는 휴업과 영업 시간 제한 등으로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으면서 지난해 당기순손실 2759억원을 냈다. 2019년 72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던 그랜드코리아레저(GKL)도 방한 외국인 수의 급감, 카지노 사업장 휴장으로 2020년 당기순손실 643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항공 수요 감소 여파로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019년 당기순이익 8634억원에서 2020년 4229억원의 당기순손실로 적자를 냈다. 코로나19로 여객 수요가 급감하면서 한국철도공사는 2019년 469억원에서 지난해 1조3247억원으로 적자 폭을 키웠다.
전기·가스·수도·철도·도로 등 공공 요금 사업을 수행하는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의 부채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정부의 공공 요금 억제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공공 서비스 요금을 원가 이하로 강제하면서 효율적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공공 요금 사업을 수행하는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공기업들은 돈 쓸 곳이 계속 늘고 있지만 공공 요금 인상 등의 수익 개선 방안은 요원하다. 특히 전체 공기업의 실적을 견인해 오던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7개 에너지 공기업의 실적 악화가 두드러진다. 탈원전 정책과 국제 연료 가격 변동 등으로 실적이 악화했다.
우량 공기업이던 한전·한수원과 발전 5사(한국남동발전·한국남부발전·한국동서발전·한국서부발전·한국중부발전)는 2016년 영업이익 총계가 19조67억원에서 2020년 5조3074억원으로 무려 72% 정도 증발했다.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한 연료비 연동제가 정부의 입김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한전은 올해 적자를 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의 ‘재생에너지 3020’ 이행 계획에 따라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이 함께 투자해야 하는 금액은 약 120조원에 달한다.
한전은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에너지공과대(한전공대) 설립·운영 비용도 상당 부분 부담해야 한다. 발전 자회사들은 국제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지난해 적자 전환됐는데 기존의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생산에서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설비 투자를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기업 부채 544조원…미래 세대에 전가 우려
공공 기관의 부채는 지난해 544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350개 공공 기관 중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IBK기업은행 등 국책 은행을 제외한 347곳의 부채 규모로 전년보다 17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공공 기관 부채를 집계해 공시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최대치다.
공공 기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부채가 늘어나면 결국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연계되기 때문에 공공 기관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공기업 직원 수가 증가한 데는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 개 공약과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무원 17만 명을 증원하고 공공 부문에서 64만 명 등 81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고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보안 검색 요원 19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8년 공공 기관 경영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구현’을 별도 지표로 도입해 2019년 평가 배점을 공기업 24점, 준정부 기관 22점으로 확대했다. 사회적 가치 구현은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 통합, 안전 및 환경, 상생·협력 및 지역 발전, 윤리 경영 등 5개 세부 지표로 이뤄졌다.
배점이 가장 높은 항목은 ‘일자리 창출’인데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 미취업자 고용 실적, 시간 선택제 일자리 실적으로 평가된다. 경영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평가 비중이 확대되면서 재무 성과와 업무 효율성 배점은 축소됐다.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점수가 배분됨에 따라 공기업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전체 공공 기관의 임직원 수는 사회적 가치 평가를 하기 전인 2015년보다 34.7%나 급증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조세 재정 브리프-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추구와 재무 성과 연구’ 보고서에서 공공 기관의 사회적 가치 평가가 도입된 2018년을 기점으로 부채가 늘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며 “공공 기관의 사회적 가치 평가 확대로 공익성이 강조됨에 따라 재무 성과와 효율성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공공 기관의 재무 성과 악화는 사회적 가치 추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공공 기관의 사업 확대와 기관 인력 규모 증가에 따른 비효율성, 도덕적 해이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