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명품업계 ‘모피프리’ 선언을 이끌다

모피 사용 중단부터 친환경 컬렉션, 신소재 개발까지…체질 바꾸는 구찌

[ESG 리뷰]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

구찌에서 출시한 지속 가능 컬렉션 상품. ⓒCourtesy of Gucci


패션 기업으로서 구찌의 본질은 의류다. 지속 가능 경영 또한 바로 이 본질에서 시작된다. 구찌는 제품에 사용하는 소재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한다. 제품의 지속 가능성이 곧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구찌는 2017년 10월 ‘모피 프리(fur-free)’를 선언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선언을 한 브랜드가 있지만 브랜드 영향력 면에서 구찌의 선언은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마르코 비차리 구찌 회장은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것은 구찌의 핵심 가치다. 환경과 동물을 위해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해 계속 힘쓸 것”이라며 변화의 시작을 알렸다.

본질적 변화로 지속 가능성 노린다

구찌는 모피반대연합(Fur Free Alliance)에도 합류했다. 캥거루 모피를 램스울로 대체하는 등 단계적으로 모피 사용을 중단했다. 남아 있는 모피 제품은 자선 경매를 통해 처분했다. 2018년부터 모피반대연합의 기준에 따라 양·염소·알파카 등을 제외한 모피 사용을 전면 중단했다. 구찌의 선택 이후 버버리·베르사체·프라다 등 다른 명품 브랜드도 잇달아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특히 패션업계에서 피할 수 없는 소재인 가죽을 다루는 구찌의 결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구찌는 사용하는 가죽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원재료를 추적한다는 것은 공급망 전체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다. 구찌는 모기업인 케링(Kering)이 만든 원재료 표준 원칙에 따라 지속 가능한 축산 방법, 동물 복지, 노동자에 대한 합리적 대우 등의 기준을 세워 2025년 축산 농가까지 추적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찌가 개발한 신소재 데메트라로 제작한 상품. /ⓒCourtesy of Gucci


가죽 공정에서도 시스템을 조정해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한다. 태닝 공정 전 가죽을 제품 크기에 맞게 미리 절단해 생산에 꼭 필요한 부분만 가공한다. 버려지는 가죽의 양을 줄이면 폐기물 감소뿐만 아니라 가공에 필요한 에너지·물·화학물질의 양도 줄일 수 있다. 구찌는 2019년부터 가죽 가공 업체 8곳과 함께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2년 동안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40톤 줄였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134만1000kW, 물과 폐수 1600만 리터, 자투리 가죽 104톤, 화학 물질 230톤을 절감했다.

하지만 모피가 과거의 패션이 됐듯이 가죽도 언젠가는 기술이 없던 시절의 ‘옛 소재’가 될 것이다. 구찌도 그러한 미래를 정확히 간파했다. 구찌는 6월 18일 혁신적 럭셔리 신소재 ‘데메트라(Demetra)’를 공개했다. 2년간의 자체 연구·개발(R&D) 끝에 나온 신소재로,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자리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소재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는 삼림에서 공수한 비스코스 원단, 목재 펄프 화합물, 바이오 폴리우레탄 등 지속 가능하고 재생 가능한 바이오 자원이 주성분이다. 구찌 본연의 태닝 공정과 전문 기술을 적용해 럭셔리 신소재로서의 가치를 담았다. 공정에서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발생한 폐기물도 ‘구찌 업(Gucci-Up)’ 프로그램을 통해 재사용한다.

구찌는 이미 신소재로 만든 상품을 출시했다. 상품 비율도 더욱 높여 나갈 예정이다. 다른 패션 기업에도 데메트라를 공급할 계획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구찌 경쟁사들이 구찌가 개발한 신소재를 얼마나 사용할지는 알 수 없지만 구찌의 자신감은 꽤 높아 보인다. 소재의 본질에 집중하며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구찌의 일관성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구찌 이퀼리브리엄 영향 보고서 ⓒCourtesy of Gucci


럭셔리업계 최초 환경 손익 분석 도입

구찌는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환경 손익 분석(EP&L)을 도입했다. 모기업인 케링이 도입한 EP&L은 전체 공급망의 온실가스 배출량, 대기·수질 오염, 물 소비, 토지 이용, 폐기물 배출을 수치화하고 환경 변화를 감안한 사회비용을 측정한다. 구찌는 2011년 환경 손익 분석을 도입해 2015년부터 대외적으로 수치를 공개했다. 2019년에는 구찌 맞춤형 EP&L 디지털 플랫폼을 공개했다. 구찌가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환경 영향을 국가별·공급망별로 살펴볼 수 있다 .

구찌는 EP&L 수치를 기준으로 2025년까지 2015년 대비 탄소 발자국 40%, 온실가스 배출량 5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구찌의 2020년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목표는 거의 달성한 상태다. 총 탄소 발자국 44%, 온실가스 배출량 47%를 감축한 것이다. 구찌는 “밸류체인 전체에서 환경적 영향이 많이 발생하는 영역을 개선하려고 집중적으로 노력한 덕분”이라며 “재활용 소재와 유기농 섬유 사용, 지속 가능한 가공과 제조 효율성 확장,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등이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한다.

마르코 비차리 회장 ⓒFrancesco Ormando


지속 가능 브랜드, 구찌 이퀼리브리엄

구찌는 이 모든 지속 가능한 전략을 ‘구찌 이퀼리브리엄(Gucci Equilibrium)’으로 브랜딩했다. 2018년 론칭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사람과 지구를 두 축으로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과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구찌의 성과는 지난 6월 처음 공개한 ‘구찌 이퀼리브리엄 영향 보고서(The Gucci Equilibrium Impact Report)’에도 집약돼 있다. 앞서 말한 2020년 환경 손익 분석 결과와 지속 가능한 소재를 위한 노력 등 자세한 사례가 소개돼 있다.

환경 분야에서는 구찌의 매장·사무실·공장 등에서 재생에너지 소비율 93% 달성, 원재료 이력 추적 95% 달성, 순환 생산 컬렉션 출시, 친환경 패키징 출시 등이 있다. 사회 분야에서도 여성 임원진 비율 57.4%, 양성 평등 프로젝트 ‘차임 포 체인지’로 기금 1750만 달러 조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구호 프로젝트 기부, 명품 수제 장인 제작 기업 전수 교육 등 다양한 교육 및 임파워먼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비차리 회장은 “구찌의 사상 첫 이퀼리브리엄 영향 보고서는 모든 분야에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구찌의 모든 실행 방안과 다짐을 상세히 보여준다”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으로, 사업 전반은 물론 사람과 기후, 자연을 위한 진정한 가치를 확립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를린(독일)=이유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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