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정비 줄이고 도급 사업 늘리고”…대형 건설사의 변화된 주택 전술

정부 규제에 전국 집값 1년새 18.19%↑…늑장 분양하면 오히려 수익 상승

[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원베일리 아파트 공사 현장. 출처: 연합뉴스


GS건설·DL이앤씨·현대건설·대우건설·HDC현대산업개발 등 대형 5개 건설사의 주택 전술에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올해 초와 비교해 이들 건설사의 주택 공급 물량 목표의 절대적 수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선 큰 변화가 확인된다.

전반적으로 대형 건설사들은 주택 공급 계획 중에서 도시 정비 사업의 비율을 낮추고 도급 사업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올해 3월 기준으로 5개사의 합산 공급 목표의 39.1%를 차지했던 정비 사업 비율은 7월 기준 32.0%로 낮아졌다. 반면 도급 사업 비율은 51.1%에서 60.2%로 높아졌다.


정부 규제 반사이익, 분양 시기 조절하는 건설사

대형 건설사의 도급 사업의 핵심은 신규 아파트 분양이다. 이 사업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마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분양가 규제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더 높은 분양가를 받기 위해 분양 시기를 늦추거나 후분양을 고려하는 사업장이 많아지고 있다.

정부는 1년 전 8·4 대책을 발표하면서 분양가를 주위 시세의 80% 수준으로 맞추겠다고 공언했다. 민간 규제 완화 대신 공공 중심의 주택 공급 기조를 밝혔고 공공 개발로 공급되는 주택에 대해 저렴한 분양가를 강조한 셈이다.

당시 공공 재건축·재개발로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에는 시세의 80% 수준을, 인천 계양과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 등은 60~80%로 공급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8·4 대책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정부의 공언은 무색해졌다. 집값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르면서 주변 시세 대비 80%에 공급하겠다는 정책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 7월까지 1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은 18.48%, 전국 아파트 가격은 18.19% 올랐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 7월 기준 시세가 1억원이던 아파트의 분양가는 8000만원인데 올해 7월에는 약 1억2000만원으로 집값이 올라 분양가는 9600만원이 됐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집값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실수요자인 매수자보다 매도자인 건설사 위주의 주택 시장이 심화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는 분양가가 오르면 당연히 수익도 커진다. 오늘보다 내일 등 분양 시기를 늦추면 더욱 큰 마진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인지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들의 경우 지방에서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속속 있지만 대형 건설사는 브랜드 아파트를 앞세워 미분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공사 및 공급 시기를 조절해 분양가 상한제 규제에서도 큰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건축에 대한 가혹한 규제에 ‘리모델링’ 시장 주목

도시 정비 사업은 도급 사업보다 정부 규제의 영향을 더욱 크게 받는다. 정비 사업의 핵심은 재건축·재개발이다. 재건축을 하려면 준공된 지 최소 30년이 지나야 하고 안전 진단 D등급 이하를 받아야 한다. 안전 진단은 새로 집을 짓기 위해 노후·불량 정도를 살피는 점검이다.

2018년부터 붕괴 위험과 같은 ‘구조 안전성’이 진단에서 중요하게 평가를 받으면서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 단지에서 낮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졌다. 기준이 강화되기 이전까지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었던 단지도 낮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졌다. 또 재건축 조합 설립을 위해 주민의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정비 사업을 진행한 물량이 규제 등으로 줄어들자 건설사도 해당 부문의 비율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떨어지는 사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마냥 재건축·재개발 물량이 나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는 틈새시장인 ‘리모델링’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리모델링은 건축 연간 기준이 재건축의 절반인 15년으로 재건축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다. 또 초과이익환수제의 적용을 받지 않고 주민의 3분의 2인 66.7%의 동의만 있으면 진행할 수 있어 사업 진행이 수월하다.

또한 기존 주택을 유지한 채 주택을 새로 짓기 때문에 용적률 확보 부담도 적다. 단, 이러한 장점에도 건설업계가 리모델링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것은 일반 재건축보다 공사 난도가 높고 일반 분양분을 많이 낼 수 없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리모델링은 추가 동을 더 짓는 별동 증축과 면적을 늘리는 수평 증축, 층수를 올리는 수직 증축 등이 있다. 수직 증축을 하면 최대 3층까지 낼 수 있어 분양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추가로 받아야 하는 안전성 검토가 까다롭기 때문에 현재까지 이를 적용한 사례는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가 유일하다.

단, 국토교통부가 최근 신기술·신공법 검증이 용이하도록 규제를 부분 완화하면서 리모델링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GS건설은 최근 주택 리모델링 사업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재건축·재개발이 각종 규제로 여전히 막혀 있는 만큼 리모델링 사업을 적극 확대하기 위해서다. 이번 조직 개편은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또 1990년대 지은 중층 노후 아파트가 재건축 연한을 만족했지만 규제에 막혀 재건축에 발목이 잡힌 만큼 리모델링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서울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는 90개 단지, 총 7만2656가구에 달한다. 이들 단지 대부분은 1990~2000년대 초반에 준공됐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리모델링을 실시하는 곳은 소규모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었다”며 “하지만 정부의 재건축 규제로 규모가 큰 단지도 리모델링 사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아파트 조합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감지된다”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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