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메타버스 디바이스 선점 경쟁 가열

VR 디바이스에서 스마트 안경까지…가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환경 도래

[테크 트렌드]

메타버스 산업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로블록스. /로블록스 제공


메타버스는 미국의 공상과학(SF) 소설가인 닐 스티븐슨이 1992년 발표한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 나온 가상 세계다.

‘스노 크래시’ 이후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메타버스 세상은 2003년 출시돼 주목받았던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다. 하지만 단순히 현실 세계를 가상 세계로 옮겨 놓는 데 급급했던 세컨드 라이프의 생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8년 구글판 세컨드 라이프인 라이블리(Lively)가 출시됐지만 이마저도 출시 4개월 만에 서비스를 중지하게 되는 비애를 맛봐야 했다. 2012년 최고의 발명품이란 찬사를 받으며 등장했던 구글 글라스도 기술적 한계와 사생활 침해 등으로 21세기 최악의 기술이라는 혹평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가상 현실에 대한 꿈은 우리 뇌리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듯했다.

메타버스의 화려한 귀환

그런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최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혹자는 메타버스가 차세대 인터넷이나 컴퓨팅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메타버스가 모바일 플랫폼에 이은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적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비대면) 환경의 확산과 메타버스에 열광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을 고려할 때 메타버스 시장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사실 메타버스는 명확한 개념이나 정의가 정립돼 있지 않다. 현재 메타버스라고 주장하는 것도 대부분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사업 전략이나 마케팅적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메타버스는 반드시 3차원 공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정의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최근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로 상장해 주가를 높이고 있는 로블록스·포트나이트·마인크래프트는 일반적인 2차원 형태의 메타버스형 게임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초월해 가상 세계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구현되는 서비스 자체가 2차원이나 3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사례다.

혹자는 현실과 가상은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독립적인 경제 시스템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주장들이다. 하지만 메타버스라는 것이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되는 고정된 개념이라기보다 기술의 진보와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계속 진화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다만 한 가지 합리적인 추론으로 생각되는 것은 메타버스라는 것이 가상 공간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감과 몰입감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구현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특히 헤드셋(HMD)이나 글라스가 중요해 보인다. 이러한 기기들은 가상과 현실을 이어 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로서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노 크래시’에서도 메타버스는 고글(goggles)과 이어폰이라는 시청각 출력 장치를 통해 가상 세계를 체험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차세대 메타버스 디바이스 경쟁

현재 대표적인 AR·VR 디바이스로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 2’, 마이크로소프트(MS)의 ‘홀로렌즈 2’ 등이 있고 애플의 ‘애플 글라스’는 소문만 무성한 채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우선 메타버스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디바이스로는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 2’가 있다. ‘오큘러스 퀘스트 2’는 가격 면이나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 메타버스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VR 헤드셋이다. 사실 메타버스 신드롬을 가져 온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VR 헤드셋인 ‘오큘러스 퀘스트 2’라는 데 이의는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7월 28일 회사 실적 발표를 통해 에실로룩소티카(EssilorLuxottica)와 협력한 레이밴((Ray-Ban) 스마트 안경을 차세대 페이스북 제품으로 소개했다. 레이밴 안경은 사실 2019년부터 개발 중인 스마트 안경으로, 알려진 바로는 AR 안경은 아니라고 한다. 레이밴 스마트 안경은 독립형 디바이스라기보다 스냅챗 스펙터클스(Snapchat Spectacles)나 아마존 에코 프레임(Amazon Echo Frames) 같이 스마트폰이나 다른 외부 디스플레이와 함께 작동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은 공간 오디오를 스마트 안경의 핵심 퍼즐 조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스마트 안경을 통해 전화를 하게 되며 스마트폰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문가들은 페이스북의 최종 목표가 VR 기기를 AR 안경으로 진화시키거나 두 기술을 더 밀접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AR 안경은 사실 페이스북의 리얼리티 랩스를 통해 ‘아리아’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 중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1만 명 이상의 직원이 AR 안경과 스마트 팔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페이스북은 AR 안경용 센서 어레이를 테스트하고 있고 향후 VR·AR 장치의 핵심 인터페이스로 손목 착용 신경 입력 기술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AR이든 VR이든 레이밴 스마트 안경은 가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혼합하고 쇼핑이나 업무 및 사교 활동에 사용되는 다중 모드 기술 플랫폼인 메타버스를 구축하려는 페이스북의 새로운 계획의 핵심 축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월 페이스북의 미래 비전으로 메타버스라는 차세대 인터넷 구축 계획을 구상하고 페이스북이 소셜 미디어 회사보다는 메타버스 기업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현실 세계에서 이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표준을 만든 페이스북이 가상 세계에서도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 육군에 납품하는 ‘홀로렌즈’ 헤드셋. AR 기술을 활용해 전투환경 분석 능력을 향상시켜주는 장치다. / MS 제공


메타버스 기반의 온라인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와 소셜 VR 플랫폼 ‘알트스페이스 VR’을 인수한 MS는 AR 글라스인 ‘홀로렌즈 2’를 가지고 있다. ‘홀로렌즈 2’는 별도 장치 없이 홀로그램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조작하며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AR에 기반해 주로 교육이나 제조 공정, 의료 분야 등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사실상 일반 소비자용(B2C)이라기보다는 기업용(B2B) 솔루션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도 MS는 기업용 메타버스(enterprise metaverse)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2014년 구글 글라스의 실패를 맛본 구글도 MS와 비슷하게 기업용(B2B) 중심의 글라스(Google Glass Enterprise Edition)를 내놓고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를 주도했던 애플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생태계를 장악하기 위해 스마트 글라스와 AR·VR 헤드셋을 개발 중이다. 이 헤드셋은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퀘스트’와 유사하지만 머리 착용에 따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직물과 가벼운 소재에 날렵한 디자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존 스마트폰 기반으로 애플 스마트 안경을 구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애플 안경은 특히 애플이 특허를 획득한 스마트 링으로, 손가락과 손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추적해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많은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애플 펜을 들고 있다면 안경이 손의 움직임을 추적해 텍스트로 변환할 수 있다.

향후 메타버스라는 가상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기술과 접속 방식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AR과 VR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슈트(suit) 같은 다양한 웨어러블 액세서리들도 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가상과 현실의 기기 간 연동을 통해 실제 환경을 가상 세계에 통합하려는 ‘오큘러스 퀘스트 2’의 인피니트 오피스(Infinite Office) 같은 기능들도 선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물리적인 키보드를 이용하려면 VR 헤드셋을 벗어야 했지만 이제는 로지텍 K830 키보드를 블루투스로 연동해 현실의 키보드를 가상으로 가져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밖에 페이스북은 최근 패스스루(Passthrough)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공개를 통해 VR과 실제 환경을 통합해 혼합 현실 경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러한 메타버스 관련 기술 속도를 볼 때 미래에는 넷플릭스 영화 ‘블랙미러’에서처럼 안경이나 헤드셋 없이 뇌에 부착해 가상의 세계로 육체와 영혼이 옮겨 가 새로운 제2의 인생을 살아 가는 상황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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