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왕의 술 '한통의 구절초꽃·연꽃술'

고문헌에 기록된 전통 방식 그대로
한 병 완성에 100일간의 정성 담아

[막걸리 열전]
한통의 구절초꽃술·한통의 연꽃담은술은 트렌디한 패키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막걸리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사랑받는 술로 자리매김한 데는 라벨도 한몫했다. 몇 년 사이 청년 생산자들이 대거 늘어나면서부터 라벨에 변화가 일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투박하고 촌스러운 느낌을 주던 막걸리는 개성 넘치는 옷을 입히면서 막걸리에 세련된 이미지를 덧입혔다. 한통술 이노베이션의 ‘한통의 구절초꽃술’과 ‘한통의 연꽃담은술’이 대표적이다. 두 막걸리는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이름과 트렌디한 로고는 MZ세대의 감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양조장에서 취재진을 반기는 김용완 대표가 ‘반전’처럼 느껴진 것은….

김용완 대표는 평생을 전통술과 함께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2년 문을 연 마산 지역 첫 양조장 ‘마산대동양조장’의 창업자가 그의 할머니다. 어려서부터 직접 누룩을 띄우고 정성껏 술을 빚던 할머니를 지켜본 덕분일까. 그는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술 연구에 매진하는 길을 택했다. 주로 고문헌 속에 나타난 술 제조 방법을 이화학과 미생물학을 동원해 현재의 양조 방식으로 새롭게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고려시대의 ‘양온서’, 조선시대의 ‘사온서’ 등 왕의 술을 빚는 기관의 기록과 ‘산가요록’, ‘동의보감’ 등의 고서를 파고들었다. 이와 함께 한국전통술계승원을 설립하고 제자를 양성해 노하우를 전수해 왔다. 그의 연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양조장 한쪽의 사무실도 숙성 기한과 재료에 차이를 둬 빚은 각종 술 샘플로 빼곡해 마치 과학자의 실험실을 연상케 했다.

재료와 배합을 다르게 만든 각종 전통술 샘플
어주를 빚을 때 쓰이는 누룩 ‘향온곡’

꽃 향기 담기 위해 10년 연구

김 대표는 ‘한통의 구절초꽃술’과 ‘한통의 연꽃담은술’을 지금까지의 연구를 총체적으로 구현한 제품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조상님들은 꽃으로 술을 즐겨 빚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절초꽃과 연꽃은 각각 연화주·애주라는 이름으로 오래전부터 사랑받은 술입니다. 특히 구절초꽃은 쑥과의 일종으로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어 반가의 여인들이 마셨던 약주죠. 하지만 환경 오염으로 자연에서 꽃을 채취하기가 어려워 사라져 가고 있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이를 제대로 구현해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막걸리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했던가. 막걸리의 맛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시행착오를 가장 많이 거친 부분은 꽃의 향미를 살리는 것이었다. 생화에서 느끼는 향기를 술에서 재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아무리 원료로 꽃을 듬뿍 사용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향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꽃의 비율을 조절하고 도꼬마리·개똥쑥 등천연 재료를 조합하며 여러 번 실험을 거친 끝에 술에서 꽃의 향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실제로 두 막걸리를 잔에 따르면 생화 꽃다발을 안은 듯한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한통의 구절초꽃술’, ‘한통의 연꽃담은술’을 수식하는 또 다른 단어는 ‘임금의 술’이다. 왕에게 진상하는 어주(御酒)를 만들 때 쓰는 특별한 누룩 ‘향온곡’을 가지고 빚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누룩과 다르게 밀과 보리를 넣어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만드는 방식도 세 배의 정성을 들인다.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막걸리가 덧술 과정을 생략하고 한 번만 발효하는 단양주 방식인데 비해 한통술은 두 번의 덧술 과정을 거치는 삼양주 방식으로 만든다.

당연히 밑술과 덧술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할수록 고급 술로 여겨진다. 저온 숙성을 거쳐 한 병의 술이 완성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0일이다. 여기에 한통술의 자부심이 있다.

“조선시대 의서를 보면 약으로 술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온몸에 빠르게 퍼지는데, 그만큼 약효가 잘 전달된다는 의미니까요. 조상님들이 술을 ‘약주’라고 부른 것도 그래서죠. 그래서 한통술은 애초에 맛있는 술을 넘어 건강한 술을 만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김용완 대표가 막걸리에 들어가는 약초와 꽃 등을 손질하고 있다

덧술 작업에 들어가는 죽을 쑤는 과정


조상님의 지혜를 담아 고급스럽게, 건강하게

탄산이 남아 있지 않도록 오랜 시간 숙성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술을 발효할 때 발생하는 탄산에는 여러 가지 유해 물질이 포함돼 있는데, 이를 장시간 숙성해 완전 발효를 거치면 탄산과 함께 유해균도 사라진다. 이 때문에 한통술은 마신 뒤에도 트림이나 숙취가 없이 속이 편안하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되도록 빨리 마시기를 권하는 다른 막걸리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깊어진다. 1년이 지나면 묵직한 꽃향이 감칠맛을 더하고 3년에 가까워지면 풍성한 곡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시간과 정성을 쏟아 만든 술이죠. 하지만 시장의 반응을 보면 때로는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막걸리 시장이 크지 않다 보니 이렇게 힘든 시간을 거친 끝에 완성한 술과 저렴한 원료로 빠른 시간 안에 만든 술이 같은 취급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저렴하다는 이유로 후자를 더 선호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요. 하지만 이것이 제가 책임감을 가지고 전통주를 계속해 나가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통술 이노베이션의 김용완 대표


그는 한국 고유의 전통술을 최대한 복원하는 것이 한통술의 숙제라고 말한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집집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술 제조법이 있고 1300여 가지의 전통주가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강제로 명맥이 끊긴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이를 복원하는 것은 전통주를 넘어 우리의 정신적인 유산을 되살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소비자에게도 전통술의 가치와 진정성이 전달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때까지 한통술은 건강하면서도 조상님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우리 술의 진면목을 알려 나갈 생각입니다.”

김은아 기자 una@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