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보험에서 자전거보험까지…‘미니 보험’이 뭐길래

단기 가입 가능한 소액 상품 봇물
전문 미니 보험사 설립 요건도 완화

[비즈니스 포커스]

2021년 3월 8일 종료된 토스 미니보험 서비스 이미지. 이후 토스 미니보험은 토스인슈어런스에서 직접 판매하고 있다./사진=비바리퍼블리카


올해 6월 소액 단기 전문 보험업을 골자로 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됐다. 펫보험·여행자보험·날씨보험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소액 단기 보험사(미니 보험사)가 설립될 수 있도록 자본 요건을 완화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기존 보험사는 물론 인슈어테크·핀테크 중 선뜻 나서는 주체가 없다. 종합 보험사들은 이미 미니 보험을 만들고 있어 자본금을 들여 가면서 시장에 참여하기에는 매력이 떨어지고 핀테크 업체는 수익성 대비 초기 투자 부담이 커 성공 사례가 나올지 미지수다.
특정 암만 보장하는 미니 암보험 ‘인기’
우선 짚고 넘어갈 부분은 ‘미니 보험’ 상품 자체는 아직 갈 길이 먼 ‘미니 보험사’의 상황과 달리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미니 보험의 정식 명칭은 ‘소액 단기 전문 보험’이다. 보험료가 소액이고 보험 가입 기간이 단기인 것이 특징이다. 필요한 시점에 간단한 가입 심사로 손쉽게 가입할 수 있다. 즉 불필요한 특약과 담보를 없애는 대신 보험료를 1만원 미만으로 낮춘 소액 보험 상품이다. 여행을 갈 때 가입하는 여행 보험이나 스마트폰의 파손 등을 대비해 가입하는 휴대전화 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생명보험사의 온라인 채널 가입자가 낸 초회 보험료(1회 차 보험료)는 2017년 102억원에서 지난해 253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점점 증가 추세로 특히 지난해에는 50% 성장률을 기록했다. 온라인 채널 생명보험 상품은 대부분 미니 보험이다.

실속을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건강’과 ‘비대면’이란 키워드가 맞물리면서 생명보험사들이 미니 보험을 쏟아냈다.

대표적인 장기 상품으로 여겨지던 암보험도 미니 보험 형태로 출시됐다. 미니 암보험은 암 중에서 폐·간·위 등 한 부분만 보장하는 대신 가격을 대폭 낮춘 상품이다. 미래에셋생명은 2019년 10월, 월 1000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온라인 미니 암보험 시리즈를 선보이며 1년 만에 신계약 4000건을 돌파했다. 출시 전 미래에셋생명의 기존 온라인 암보험 가입자 중 20대의 비율은 6%였지만 미니 암보험 출시 이후 10.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 대형 보험사는 가입 연령을 넓히거나 보장성에 힘을 줬고 올해는 메트라이프생명·ABL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도 미니 암보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존 보험사는 고객 끌기용 상품으로 활용


전통적인 보험 상품은 기간이 길고 여러 가지 담보를 한 번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개발돼 비싼 편이다. 또 언제 보상받을지 모르는데 매달 보험료를 지출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반면 미니 보험은 기간이 짧고 값이 싸며 반려동물 보험이나 자전거 보험 등 생활 밀착형 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 기존 보험 상품이 종합 선물 세트 개념이라면 미니 보험은 원하는 것만 골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인 셈이다.

소비자로선 미니 보험이 다양해질수록 실생활에 맞는 맞춤형 보험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일례로 간편 송금 플랫폼 토스가 지난해 에이스손해보험과 제휴해 출시한 휴대전화 파손 보험은 ‘중고 폰까지 가입할 수 있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인기를 끌면서 1주일 만에 가입자가 4400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종합 보험사로선 미니 보험이 주력이라기보다 고객을 자사로 끌어당기기 위한 미끼 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가 상품인 만큼 판매 수수료가 적어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니 보험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미니 보험사 설립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본과 중국 등에선 미니 보험사 설립을 도입한 이후 이색 보험이 대거 출시됐다. 일본은 현재 약 200곳의 보험사 중 절반이 미니 보험사다.

결국 금융 당국은 미니 보험사 설립의 문턱을 낮추기로 결정하고 올해 6월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한 데 이어 8월 중순 신청사 10곳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실시했다. 자본금 요건을 50억~300억원에서 20억원으로 대폭 낮춘 것이 주요 골자다. 미니 보험사는 소규모 자본으로 소비자의 실생활에 밀착된 소액 간단 보험을 취급한다. 보험 기간은 1년(갱신 가능), 계약자당 최대 보험금은 5000만원이다. 자동차보험과 같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보험과 연금 및 간병 처럼 장기간 보장이 요구되는 종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종목을 취급할 수 있다. 또 생명보험과 제3보험을 함께 취급할 수 있고 손해보험과 제3보험도 겸업이 가능하다.

컨설팅 신청사는 대형사인 신한라이프, 법인 보험 대리점(GA)인 인카금융서비스 그리고 핀테크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통합 법인인 신한라이프는 손해보험 라이선스가 없어 선발 주자로 유력하게 예상된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까지 사업 허가 신청서를 제출한 곳은 없다”고 말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새로운 풀랫폼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 진입 장벽을 낮췄을 뿐 수익이 보장된 사업이 아닌 데다 최근 빅테크(대형 IT 기업) 규제 움직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미니 보험사 수익성 불투명…추가 규제 완화 필요
어쨌든 미니 보험사가 자리 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시장 참여자가 제한적이다. 기존 종합 보험사들은 이미 미니 보험을 개발하고 있어 메리트가 적고 그룹 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모두 갖추고 있는 곳은 진출할 수 없다. 비금융 대기업도 현행 공정거래법상 참여가 불가능하다.

인슈어테크나 핀테크가 많이 참여해야 하는데 미니 보험은 소위 ‘돈 안 되는 사업’이다. 자본금 요건이 최대 15분의 1로 줄었지만 낮은 보험료로 거둬들이는 보험료보다 나가는 보험금이 더 많아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핀테크 업체들은 적자를 견디지 힘든 구조다. 이들보다 규모가 크지만 주로 미니 보험 상품을 팔았던 디지털 보험사 ‘캐롯손해보험’과 ‘교보라이프플래닛’도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캐롯손해보험은 최근 장기·일반보험 경력자 채용을 진행하는 등 건강보험 같은 장기 보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디지털 손해보험업 본인가 신청을 앞두고 있는 카카오페이도 장기인보험 기획과 개발을 담당할 수 있는 경력직을 채용하고 있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미니 보험사 설립 때 기본 자본금 요건이 1억원이다. 우리도 논의 초기엔 3억원 또는 10억원 정도의 말이 나왔다”며 “20억원은 우리에게 시장에 참여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미니 보험사가 활발하게 세워지려면 부수 업무 허용 등의 규제 완화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을 주력으로 하는 보험사가 반려동물의 간식·영양제 등을 판매하는 식이다. 또 건전성, 내부 규제, 이사회 설립 등 운영 부분에 대해 단계적으로 규제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본금 요건도 높지만 설립 이후 상품 개발자 및 관리 비용이 더 우려되기 때문이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디지털혁신팀장은 “소액 장기 보험은 작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시장성이 있다. 사업비나 인건비로 많이 쓸 수 없다. 즉 조직을 슬립화해야 한다”며 “조직의 사이즈가 줄어든 만큼 설립 규제만이 아니라 운영 관련 규제도 리스크 수준에 맞게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기존 보험사가 미니 보험을 내놓는 것은 자체 수익성 때문이 아니라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려는 마케팅 차원”이라며 “미니 보험 자체에서 수익이 나야 하는 미니 보험사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보험 산업은 진입과 퇴출 자유롭지 않아 그간 신규 플레이어가 없었다. 산업의 유연성·역동성·다양성 면에서 떨어졌는데 미니 보험사 도입으로 핀테크가 진입할 수 있는 틈새가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면서 “시장의 상황을 지켜보며 단계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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