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원료에 리튬 이온 전지보다 가벼워…제로에이비어·에어버스 등 수소 비행기 상용화 계획
[테크 트렌드]육상 도로에 연료전지 자동차가 있다면 하늘길에는 수소 비행기가 있다. 친환경 비행기의 개발 추세 속에서 대표적 신재생에너지인 수소를 이용하는 비행기를 만들려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수소 비행기의 동력원으로는 연료전지와 내연기관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전기비행기 단점 보완한 동력원 실험 중
현재 개발 중인 전기비행기는 대부분 리튬 이온 전지 등의 2차전지를 동력원으로 삼는다. 2차전지 기반의 전기비행기는 중장거리 노선이나 대용량 화물 운송에는 부적합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2차전지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약 600명의 승객을 태운 A380이 제트유를 사용하는 터보팬 엔진으로는 1만5000km를 비행할 수 있지만 제트유와 동일한 중량의 리튬 이온 전지를 이용하면 비행 거리는 고작 1000km에 불과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수소가 차세대 비행기의 유망한 동력원으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친환경적인 동시에 리튬 이온 전지보다 훨씬 가볍기 때문이다. 수소와 리튬 이온 전지 그리고 대표적 석유화학 연료인 가솔린의 에너지 밀도를 비교하면 수소의 높은 잠재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에너지 밀도는 단위 질량이나 부피에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질량 기준(kg) 에너지 밀도의 경우 수소는 3만9405 W-h·kg(kg당 와트 아워), 리튬 이온 전지는 243.1 W-h·kg, 가솔린은 12,889 W-h·kg로 측정된다. 수소는 가솔린의 3배, 리튬 이온 전지의 약 162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저장한다는 것이다. 부피 기준의 에너지 밀도로 비교해도 리튬 이온 전지에 비해 기체 상태의 수소는 약 2배, 액화수소는 약 4배 많은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비행기의 개발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수소 전기비행기다. 수소 전기비행기는 전기비행기의 주동력원을 리튬 이온 전지에서 수소 연료전지로 대체한 것이다. 리튬 이온 전지는 원자력·화력·수력 발전소나 태양광 설비 등의 외부 발전 장비에서 만들어진 전기를 충전해 보관하는 저장 탱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튬 이온 전지는 전기가 필요할 때마다 별다른 외부 장치없이 전기를 바로 꺼내 쓸 수 있다.
반면 수소 연료전지는 수소가 연료전지 내부의 촉매를 지나면서 산소와 결합할 때 전기를 발생시키도록 만들어진 작은 발전 설비다. 연료전지는 전기를 공급하려면 발전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소를 공급받아야 하므로 연료전지 외부에 별도의 수소 저장 탱크가 필요하다. 이런 기능적 차이 때문에 수소 연료전지 비행기의 구조는 리튬 이온 전지 기반의 전기비행기와 다르고 오히려 기존 비행기와 유사한 면이 있다.
기존 비행기에 항공유 저장 탱크가 적재돼 있듯이 수소 전기비행기에는 수소 저장용 탱크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비록 수소 저장 탱크를 추가하는 바람에 중량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에너지 밀도 차가 워낙 커 많은 기업들이 연료전지 비행기에 주목하고 있다.
영국의 제로에이비어(ZeroAvia)는 2020년 9월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하는 6인승 상업용 비행기의 비행에 성공했다. 제로에이비어의 연료전지 비행기는 유명한 상업용 프로펠러 비행기인 파이어 말리부(Piper PA-46 Malibu)의 터보프롭 엔진을 연료전지로 교체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항공기 극저온 고효율 전기기술센터(CHEETA : Center for Cryogenic High-Efficiency Electrical Technologies for Aircraft)라고 불리는 더 진일보한 연료전지 비행기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자금을 지원하고 미 공군 등 정부 기관과 매사추세츠공과대(MIT)·보잉·제너럴일렉트릭(GE) 등 유수의 민간 대학과 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인 CHEETA의 특징은 액화수소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액화수소의 에너지 밀도는 같은 중량의 가솔린보다 약 4배나 높아 고효율 연료전지와 함께 사용하게 되면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일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내연기관보다 열효율이 약 2배 정도 높은 60% 수준인 수소 연료전지에 에너지 밀도가 높은 액화수소를 사용하게 되면 같은 중량의 연료로 더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소를 내연기관의 연료로 삼는 수소 엔진 비행기의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수소 엔진 비행기는 기존 터보팬 엔진이나 터보프롭 엔진의 연료를 항공유 대신 수소로 대체한 비행기다. 수소 엔진 비행기는 현재 사용 중인 비행기의 기체 구조나 내연기관 엔진 중 많은 부분을 큰 폭의 구조적 변화 없이 재활용할 수 있어 무척 경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점에 착안해 오래전에 수소 엔진 비행기를 개발하려고 시도되기도 했다. 1950년대 후반에는 미국 록히드의 선행 개발팀인 스컹크 웍스(Skunk Works)가 군사용 수소 엔진 비행기 개발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수소의 생산과 보관,연료 보급망의 유지 등 관련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어려워 결국 록히드의 시도는 무산됐다.
최근에는 글로벌 항공기 제작 업체인 에어버스가 수소 엔진 비행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9월 에어버스는 수소를 주동력원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탄소 제로 상업용 비행기를 2035년까지 상용화할 계획을 공개했다. 에어버스는 총 3가지의 수소 엔진 비행기를 개발할 예정이다.
가장 큰 것은 약 200명의 승객을 태우고 2000마일 이상의 대륙간 비행을 할 수 있는 중형 터보팬 엔진의 비행기다. 해당 기종은 기존 중형 비행기와 외형상으로 비슷하고 엔진의 연료를 기존의 제트유가 아닌 수소로 한다는 점에서만 다르다.
둘째 기종은 최대 100명의 승객을 태우고 1000마일 내외의 중거리 비행을 할 수 있는 터보프롭 엔진의 비행기다. 이 기종 역시 외형은 여타 터보프롭기들과 동일하고 단지 프로펠러를 돌리는 터빈 엔진의 연료가 수소라는 것만 다르다.
셋째는 주익과 동체가 일원화된 블렌디드 윙 타입의 비행기다. 이 기종은 최대 20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중형 비행기이고 동력원은 수소를 연료로 하는 터보팬 엔진이 될 것이라고 한다. 블렌디드 윙 타입의 비행기를 제외한 두 가지의 기종은 기존 비행기 구조에서 많은 부분을 거의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개발 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공항 시설 등 기존 항공 인프라도 크게 교체하지 않고 재사용할 수 있어 사용성 측면에서도 상당히 우수할 것으로 보인다.
에어버스는 새로운 항공기의 에너지원으로 액화수소에 주목하고 있다. 수소를 압축 기체 상태로 저장하면 수소 저장 공간이 너무 커져 비행기의 무게와 부피에 많은 제한이 걸리지만 액화수소는 이런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소의 생산과 저장 문제도 해결해야
수소의 생산과 액화수소의 저장 기술이 확보되면 친환경 수소 비행기의 개발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수소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처럼 다른 에너지를 매개로 생산해야 하는 2차 에너지원이다. 이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 친환경적이면서도 저렴한 비용에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보다 우수한 초저온 생산, 저장 기술도 확보돼야 한다. 액화수소는 기체 상태의 수소보다 약 800배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지만 생산과 저장 과정에서 초저온 상태로 유지돼야 한다. 외부 온도와 액화수소의 온도 차이로 인해 수소 저장 탱크에 열 유입 상태가 발생하면 액화수소는 기화돼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이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초저온 설비 기술은 액화수소의 활용 가능성을 높여 수소 비행기의 상용화를 앞당길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