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섬 ‘오에라’로 뷰티 시장 진출…신세계인터내셔날 중국 기반으로 매년 뷰티 매출액 성장
[비즈니스 포커스]패션 기업들이 뷰티 시장으로 전쟁터를 옮겼다.
화장품이 패션 기업의 신규 수익원으로 낙점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패션 사업에서 파악한 고객의 니즈를 화장품 시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 이들은 자체 유통망을 통해 해외 뷰티 시장 진출의 발판을 미리 확보해 둬 유리하다.
‘명품 화장품’으로 맞붙을 한섬과 신세계SI이른바 ‘한섬 마니아’들을 보유한 패션 전문 기업 한섬이 1987년 창사 이후 최초로 화장품 시장에 진출한 것은 화장품업계를 넘어 유통가의 큰 이슈였다.
한섬의 럭셔리 화장픔 브랜드 ‘오에라’는 8월 27일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1층에 오프라인 1호 매장을 열었다. 오에라는 기능성 피부 관리 제조 기술이 우수한 스위스화장품연구소와 협업해 개발한 독자 성분(크로노 엘릭서)을 원료로 사용했다. 크로노 엘릭서는 단백질 원료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프로젠’과 단백질 생산 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제넥신’이 공동 개발한 기술을 적용했다. 스킨케어 라인은 스위스의 맑은 물과 최고급 원료로 만들여졌고 전량 스위스에서 생산된다는 게 오에라 측의 설명이다.
오에라의 특징은 ‘고가’라는 점이다. 주요 상품 가격은 20만~50만원대, 대표 상품인 다중 기능성 세럼 ‘켈리브레이터’의 가격은 37만5000원대다. ‘초고가 상품’은 시그니처 프레스티지 크림 50mL로 가격은 120만원대다. 호기심으로는 쉽게 구입할 수 없는 가격대다. 오에라의 ‘고가 전략’이 어떻게 작용할지가 향후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오에라는 한섬 공식 온라인몰 더한섬닷컴의 입점을 비롯해 현대H몰과 더현대닷컴 등 온라인 유통 경로를 확보했다.
한섬의 화장품 시장 진출로 덩달아 관심을 받는 곳이 신세계인터내셔날이다. 패션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화장품 부문의 영업 이익이 더 높다. 2012년 화장품 시장에 진출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중국에서 ‘비디비치’를 성공시키며 화장품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비디비치는 중화권 밀레니얼세대를 겨냥한 히트 상품을 연달아 출시하며 ‘쁘띠 샤넬’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2018년 론칭한 자체 화장픔 브랜드 ‘연작’도 중국 업체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6월 연작이 중국 최대 뷰티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메이투와 손잡고 메이투씨우씨우 앱에 정식으로 입점한다고 밝혔다. 메이투는 전 세계 20억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고 중국 여성의 90%가 이 앱을 사용하고 있을 만큼 영향력이 막강하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지난 3월 론칭한 ‘뽀아레’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100년 전통의 프랑스 브랜드 ‘폴 뽀아레’를 인수해 선보인 자체 화장품 브랜드다. 가격대도 세럼 22만~68만원, 크림 25만5000~72만원, 립스틱 8만2000원으로 고가에 속한다. 오프라인 매장도 속속 추가 중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강남점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였고 연말에는 신세계 센텀시티점에 추가로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고가 라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오에라’와 ‘뽀아레’의 럭셔리 화장품 시장 격돌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은 품질을 입증받았지만 해외 시장에서 통하는 ‘명품 브랜드’는 아직 공석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 자리를 이들이 차지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특히 2030 ‘영리치’들이 즐겨 찾는 명품 화장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신세계 본점에 문을 연 첫 매장을 통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고객에게 뽀아레의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한다. 신세계 본점에 입점한 매장은 목표 매출을 160% 달성하고 있는데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2030 고객이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MZ세대의 명품 선호 현상에 따른 직접적 수혜를 보고 있는 셈이다.
‘캐시카우’ 된 화장품 사업
모기업의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들에겐 상당히 유리한 점이다. 뽀아레와 오에라모두 첫째 오프라인 매장을 백화점 본점에 열어 힘을 실어 줬다. 동시에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주로 입점한 백화점 1층에 점포를 마련해 명품족들의 시선을 끌고자 했다.
최근 중저가 브랜드들은 올리브영과 같은 H&B스토어 입점으로 명운이 갈리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이 론칭한 중저가 브랜드들도 온라인 판매를 통해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션 기업들은 고가 화장품 라인에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을 통해 중저가 화장품이 감히 경쟁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갖는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기초 화장품은 큰 계기가 있지 않으면 쉽사리 바꾸지 않은 품목”이라며 단순히 관심이 생겨 구매하기에는 100여 만원이 넘는 가격으로는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나 LG생활건강의 ‘후’가 중·장년 여성층과 중국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어 틈새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뭐니 뭐니 해도 패션 기업들이 화장품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가능성을 맛봤기 때문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영업이익에서 코스메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7년 24%에서 2018년 79%, 2019년 81%까지 꾸준히 높아졌고 지난해에는 무려 93%를 차지했다. 그룹의 ‘캐시카우’ 노릇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이는 중국 시장에서 비디비치와 연작 등의 성공에 따른 결과다. 3분기 또한 코스메틱 부문의 성장이 기대되는데 현대차증권은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코스메틱 부문의 매출액을 전년 동기 대비 13.8% 성장한 972억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정혜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비디비치는 아직 회복 단계이지만 양호한 수입 화장품 수요로 매출 성장을 이어 갈 것으로 예상한다”며 “주요 브랜드 리뉴얼과 마케팅 투자가 지속되면서 부문 수익성이 점진적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섬도 오에라 론칭을 통해 국내외 럭셔리 화장품 시장으로 발을 넓힌다면 새로운 수익 구조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란 평을 듣고 있다. 모기업인 현대백화점의 유통 경로를 활용해 해외 진출도 용이하다. 정혜진 애널리스트는 “오에라는 2022년 백화점·면세점에 추가 입점해 향후 중국발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패션 브랜드들은 뷰티 라인 론칭을 통해 ‘입는 것’에서부터 ‘바르는 것’까지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곳곳에 침투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뷰티에 이어 리빙 용품까지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제 더 이상 옷만 팔아선 안 되는 시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