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년’ 정의선號…위기 뚫고 새 중흥기 맞이

현대차 2분기 매출 30조원 돌파…전통 제조 기업 이미지 탈피,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스페셜 리포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출처: 한국경제신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0월 14일 취임 1년을 맞는다. 그는 지난해 10월 14일 그룹 내 ‘원 톱’ 지위에 올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반도체 대란 등에 발빠르게 대응하며 현대차그룹이 ‘중흥기’를 맞이하는데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정의선 회장은 회장 취임 후 1년간 코로나19 사태와 노동조합 파업 리스크 등 대내외 악재 대응에 분주했다. 또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라인이 중단되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룹의 위기 대응 능력을 총동원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최근 성적표는 코로나19 사태의 확산과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기 전보다 오히려 더 좋다. 현대차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014년 2분기 이후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고 매출은 사상 첫 분기별 매출 30조원을 돌파했다.

정 회장이 진두지휘해 출시한 제네시스의 성공과 전용 전기차 등 신차 출시가 ‘효자’ 노릇을 했다. 이를 통해 현대차뿐만 아니라 기아 역시 최고 실적을 갈아 치웠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속에서 이뤄 낸 깜짝 실적에 글로벌 자동차업계는 정 회장의 리더십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통 제조 기업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회장 취임 직후 자율주행과 로봇 등에 수조원대의 투자를 결정하고 모빌리티 생태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정·재계 인사와 연이어 만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는 광폭 행보를 보였다. 정 회장의 지난 1년은 현대차그룹의 미래 기틀을 짜는 시간이었고 그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숫자로 증명한 탄탄한 3세 경영 포문

정 회장은 숫자로 경영 능력을 입증했다. 이는 ‘실적’이라는 데이터로 확인된다.

현대차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30조3261억원, 영업이익은 1조886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그가 회장이 되기 전인 지난해 2분기(5900억원) 대비 219.5% 늘어났다. 순이익도 5배나 늘어났다. 2분기 영업이익률은 6.2%로 지난해 동기 대비 3.5%포인트 올랐다. 글로벌 판매는 103만1349대(내수 20만682대, 해외 83만667대)로 46.5% 늘었다.

기아 역시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 2분기 매출은 18조3395억원, 영업이익은 1조4872억원이다. 지난해 2분기 대비 매출은 61.3%, 영업이익은 924.5%씩 늘어난 규모다. 기아의 2분의 실적 중 역대 최대다. 영업이익률은 8.1%로 같은 기간 6.8%포인트 상승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글로벌 판매량은 75만4117대(국내 14만8309대, 해외 60만5808대)로 46.1% 늘었다.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아산공장이 4차례나 가동이 중단되는 등의 악재가 있었지만 정 회장은 반도체의 선제적 확보와 유연한 생산 체제 구축으로 타격을 최소화했다.

양 사의 합산 2분기 매출은 48조6656억원, 영업이익은 3조3732억원이다. 매출은 지난해 2분기보다 46.5%, 영업이익은 358.6% 늘어난 수치다. 글로벌 판매량은 178만5466대로 46.3% 늘었다.

현대차·기아가 올해 2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한 것은 급증한 해외 판매 덕분이다. 지난해 2분기에는 극심한 코로나19 악재로 미국·유럽·인도 등 주요국에서 해외 판매가 급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경기 부양책과 백신 접종 확대 등으로 시장과 소비 심리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높은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아이오닉5·쏘렌토·카니발 등 글로벌 시장에 신차가 대거 투입되면서 해외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힌 전략도 주효했다. 글로벌 차량 제조사가 코로나19 사태로 신차 출시 및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고 있는 와중에도 현대차그룹은 선제적 투자에 나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주력 차종의 모델 체인지의 주기는 5~6년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핵심 차종의 모델 체인지는 올해 몰려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시장이 위축된 상황이어서 신차 출시가 ‘악수’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정 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재도약을 바라보며 새 모델을 시장에 내놓았다.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상황에도 현대차그룹은 계획된 일정대로 신차를 출시했고 이 차량들이 주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판매량이 늘어났다. 반도체 수급 차질과 환율 등 대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릴 수 있던 비결이다.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오른쪽)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 2족 직립 보행 로봇 ‘아틀라스’. 출처: 현대차


사재 투입해 신사업 육성 의지 피력

정 회장은 본업인 자동차 제조 외에도 그룹의 지속 성장을 위해 신사업 진출을 위해 활발한 1년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사재를 투입하며 신사업을 통한 지속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글로벌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가 대표적이다. 이 기업은 기업 가치가 11억 달러(약 1조2560억원)에 달한다.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으로 지난해 12월 본계약을 체결한 후 올해 6월 인수 작업을 완료했다.

현대차그룹은 소프트뱅크그룹과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를 진행했다. 현대차그룹이 지분 80%, 소프트뱅크그룹이 20%를 보유한다. 현대차그룹의 지분 투자는 정 회장 20%를 비롯해 현대차 30%, 현대모비스 20%, 현대글로비스 10% 등으로 구성됐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사재 2490억원을 출연했다.

그의 지분 참여는 현대차그룹이 향후 본격화할 신사업에 대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지속적인 투자 의지를 밝히기 위한 ‘각오’ 차원으로 풀이된다. 로봇 사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 줬다는 측면에서 글로벌 우수 인재 확보와 우량 거래처 유치 등에 큰 힘이 실리고 있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인수 발표 당시 “현대차그룹이 지향하는 인류의 행복과 이동의 자유,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 가치 실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하겠다”며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역량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이 더해져 미래 모빌리티 혁신을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에 8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 기업의 최대 규모의 대미 투자다.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25년까지 미국에 74억 달러(약 8조4000억원)를 투자한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5년간 31억 달러 투자의 두 배 규모다.

투자 범위는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과 수소 관련 사업 등이다. 내년부터 현대차 최초로 미국에서 전기차가 생산돼 현지에서 팔린다.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모두 한국에서 수출된 물량이었다.

미국을 향한 역대급 투자가 실시된 배경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제품 구매)’을 강조하고 있어서다. 또 정부의 관용차 역시 현지 생산 전기차를 우대하려는 정책을 펼치고 있어 현대차그룹으로선 미국 생산에 관한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했다. 자국 중심의 공급망과 생산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보조금 등이 중요한 전기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미국에 공장을 세울 수밖에 없다.

정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수차례 미국 출장을 떠나 바이든 행정부와 현지 시장 상황 등을 점검했다. 시찰 후 미국 생산 체제가 필수라는 판단에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추기로 했다. 또한 현지 전기차 시장이 2030년 480만 대, 2035년 800만 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진 기지를 미리 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9월 온라인으로 열린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현대차


본업 ‘車’에도 충실, 내연→수소·전기 전환

정 회장은 지속 성장을 위한 신사업을 준비하면서도 본업인 ‘자동차’의 내실 다지기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연기관 차량의 시대가 끝날 전망인 만큼 하루빨리 친환경 차량으로 라인업을 바꾸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지난 9월 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하이드로젠 웨이브’에서 기조 발표자로 나서 현대차그룹의 ‘수소 비전 2040’을 발표했다. 이 행사는 현대차그룹이 처음 선보이는 수소 관련 글로벌 행사로,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에너지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수소 사회를 조기에 실현할 수 있도록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정 회장은 “수소 사회 실현을 앞당길 수 있도록 앞으로 내놓을 모든 상용 신모델은 수소전기차나 전기차로만 출시하고 2028년까지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을 적용하겠다”며 “가격과 부피를 낮추고 내구성과 출력을 크게 높인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을 선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상용차 라인업 친환경 전환 계획 발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 중 현대차그룹이 처음이다. 정 회장의 말처럼 2028년까지 글로벌 자동차업계 최초로 이미 출시된 모델을 포함한 모든 상용차 라인업에 수소 연료전지를 적용한다. 특히 앞으로 대형 트럭과 버스 등 모든 상용차 신모델은 수소 전기차와 전기차로 출시해 배출 가스가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30년 한국 시장에서만 연간 20만 톤 이상의 수소 수요가 창출될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보고 있다.

정 회장은 “수소 연료전지를 자동차 외의 모빌리티와 에너지 솔루션 분야에도 적용하는 등 미래 비즈니스 영역을 지속해 확장하겠다”며 “트램·기차·선박·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 다양한 이동 수단뿐만 아니라 주택·빌딩·공장·발전소 등 일상과 산업 전반에 연료전지를 적용해 전 세계적인 수소 사회 실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K수소경제 ‘가교’, 주요 기업과 생태계 구축

정 회장은 ‘K수소경제’로 불리는 한국 수소 산업 생태계의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각 기업과의 협력 생태계 구축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상 효성 부회장 등 한국 15개 기업이 참여한 ‘코리아 H2 비즈니스 서밋’에서 정 회장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정 회장은 유럽과 일본 등에 비해 한국의 수소 산업 생태계 구축이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각 기업이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의 목소리에 호응해 서밋에 참여한 기업들은 수소 생태계 구축에 향후 5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서밋 구축 이전부터 현대차그룹을 중심으로 한 수소 관련 협업 작업은 계속돼 왔다. 현대차와 SK는 지난해 수소 사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현대차는 SK에서 생산한 수소를 활용하고 SK는 현대차에서 생산한 수소차를 제공 받아 시너지는 내는 협업 구조다.

포스코와도 손잡았다. 현대차는 포스코의 철강·물류 특성을 고려해 수소 사용 트럭을 개발한다.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생산되는 부생 수소를 수소 트럭의 에너지원으로 제공한다. 포스코는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과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재계에선 정 회장이 그룹 차원에서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세계 정상급 수소 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기업과 협업을 통해 한국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평가한다. 그가 회장으로서 걸어온 1년간 현대차그룹은 대내외적으로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 회장 취임 후 예전보다 대화와 소통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모든 임직원에게 전파되고 있다”며 “아직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을 중심으로 변화와 혁신의 DNA가 그룹 전반에 전파됐다”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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