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비자 ‘눈도장’…해외 스포츠 리그 접수한 韓 기업

NBA·NFL 등 글로벌 팬덤 막강한 리그 및 구단 후원…해외 영토 확장 노려

[스페셜 리포트]
10월 19일 미국 프로농구(NBA)의 개막을 앞두고 LA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는 10월 3일 미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프리 시즌 경기를 치렀다. 정규 시즌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는 연습 경기에 불과했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두 팀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이날 LA레이커스 선수들은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 외적으로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 왼쪽 상단에 CJ제일제당의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패치가 선명하게 새겨 있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수많은 국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미국 프로농구(NBA),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등과 같은 스포츠 리그 또는 여기에 소속된 구단들과 파트너십을 잇달아 체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 이들을 활용해 해외 고객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 글로벌 매출을 증대시키겠다는 전략이다.

CJ제일제당 또한 지난 9월 NBA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팀으로 손꼽히는 LA레이커스와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CJ제일제당 측은 현재 정확한 계약 금액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LA타임스 등 미국 현지 언론 보도를 보면 양측은 5년간 1억 달러(약 1200억원)에 계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LA레이커스 선수들은 2026년까지 ‘비비고’의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 대가로 CJ제일제당은 매년 2000만 달러(약 250억원)에 달하는 돈을 LA레이커스에 지불하기로 했다.
‘비비고’의 NBA 진출, 현지에서도 화제비용적인 측면만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하지만 이를 통해 거둘 수 있는 효과를 예상하면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이커머스 기업인 라쿠텐을 예로 들 수 있다. NBA는 2017년부터 소속 구단들이 유니폼을 활용해 스폰서 광고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이후부터 수많은 기업들이 구단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선수들의 유니폼을 광고판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라쿠텐도 이런 기업들 중 하나였다.

글로벌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 LA레이커스와 함께 NBA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골든 스테이트워리어스(이하 골스)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쿠텐은 자사 로고를 골스 유니폼에 붙이는 조건으로 연간 20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라쿠텐이 거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스포츠 스폰서의 미디어 가치를 책정하는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검검스포츠’는 라쿠텐이 골스와의 유니폼 스폰서십 계약에 힘입어 2018년 북미 시장에서 4000만 달러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NBA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소속 스테판 커리. 유니폼 왼쪽 가슴에 일본 이커머스 기업 라쿠텐의 패치가 새겨져 있다. 라쿠텐은 골스를 후원하며 북미 시장에서 큰 매출 상승 효과를 거뒀다. /사진=연합뉴스


투자한 금액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라쿠텐 측 역시 “골스 유니폼 후원 이후 미국 농구 팬들 사이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300%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서는 기아가 NBA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기아는 2008년부터 NBA 리그의 공식 후원사가 된 이후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매 경기가 중계될 때마다 TV 화면에 ‘기아(KIA)’ 로고와 광고를 노출하고 있고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MVP와 신인상 등을 선정할 때도 기아의 이름을 붙여 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북미 시장에서 많은 이들에게 기아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아가 최근 북미 시장에서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스포츠 마케팅의 힘이 컸다”고 분석했다.



CJ제일제당도 이들과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일단 출발은 좋아 보인다. NBA 정규 시즌 시작 전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1등 식품 기업과 LA레이커스의 파트너십 체결이 큰 화제를 모으며 벌써부터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리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LA레이커스는 비비고와의 파트너십 계약 체결 사실을 약 600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구단 인스타그램에 게재했다. 이 글은 ‘좋아요’ 100만 개를 넘겼고 K푸드에 대한 호감과 새로운 파트너사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댓글이 이어졌다.

미 스포츠 매체인 ‘클러치포인츠(Clutchpoints)’는 르브론 제임스가 비빔밥을 들고 있는 합성된 이미지와 함께 한국 식품 기업과의 파트너십 소식을 알려 현지 NBA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LG전자, NFL 통해 북미 영향력 강화CJ제일제당은 이번 파트너십을 ‘비비고’가 글로벌 메가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는 지난해 주력 상품인 만두를 앞세워 연매출 1조원을 기록한 바 있다. 미국 시장에서 만두 점유율 1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 상승이 이어지는 등 해외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 주효했다.

CJ제일제당은 LA레이커스를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 비비고의 입지를 더욱 넓혀 나갈 예정이다. LA레이커스가 세계 곳곳에 보유하고 있는 강력한 팬덤을 활용해 이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이번 파트너십 계약에 따라 레이커스의 홈 경기장의 광고 패널, 코트 바닥, 골대 등 곳곳에 비비고 브랜드를 걸 수 있게 됐다. 또 LA레이커스에 대한 글로벌 마케팅 권한도 갖게 됐다. 가령 미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비비고 만두 포장지에 LA레이커스 로고를 넣어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LA레이커스는 노출도와 화제성 측면에서 최상”이라며 “전 세계 농구 팬들에게 브랜드를 제대로 각인시키고 K푸드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 담당이 지니 버스 LA레이커스 구단주와 비비고가 새겨진 새 유니폼을 공개했다. 왼쪽부터 경욱호 CJ제일제당 부사장, 버스 구단주, 이 담당, 팀 해리스 LA레이커스 최고경영자.


북미 가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LG전자는 NFL을 통해 자사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LG전자는 NFL 소속인 테네시 타이탄스를 앞으로 3년간 공식 후원하기로 결정했다고 9월 13일 밝혔다. NFL은 메이저리그(MLB), NBA,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와 함께 미국의 4대 스포츠로 불린다.

특히 북미 시장만 보면 MLB나 NBA보다 더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운 종목이다.

LG전자 역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의 판매 증대를 꾀하며 타이탄스를 파트너로 정하게 됐다.

LG전자는 이번 계약을 통해 홈구장에 설치된 전광판 등에서 브랜드 광고를 노출할 수 있게 됐다. 또 타이탄스 팬을 위한 가전 체험 공간을 운영하는 행사를 수시로 마련하며 고객과의 접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TV 중계를 시청하는 수요자에게도 브랜드가 노출되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특히 테네시 타이탄스가 만약 NFL의 최종 우승자를 정하는 ‘슈퍼볼’에 진출한다면 LG전자가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전문학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슈퍼볼은 중계 방송을 관람하는 시청자가 매년 약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광고 단가는 상상을 초월한다.유럽 프로 축구도 ‘K마케팅’ 바람내년 2월 열리는 슈퍼볼은 얼마 전 광고 입찰이 마감됐는데 30초당 650만 달러(약 76억원)라는 천문학적인 값에 판매됐다. 만약 테네시 타이탄스가 슈퍼볼에 진출해 홈 경기를 갖게 되면 LG는 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홈구장 전광판 등을 통해 자연히 상품이나 브랜드 로고 등을 노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테네시 타이탄스의 우승 가능성은 낮게 예상되지만 저력이 있는 강팀으로 분류되는 만큼 이런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언제나 예상을 깨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스포츠 경기가 가진 매력이다.

해외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기록 중인 타이어업계도 자사의 제품을 알리기 위한 대표 수단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 타이어업계 관계자는 “사업의 특성상 타이어업계는 자동차 산업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 지역에서의 저변 확대가 중요하다”며 “한국의 주요 타이어 회사들이 유럽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를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한국 타이어 3사는 유럽 프로 축구 4대 리그로 불리는 EPL, 라리가(스페인), 세리에A(이탈리아), 분데스리가(독일)에서 활약 중인 구단들을 후원하며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넥센타이어는 8월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밀란과 후원 계약을 체결했다. 기간은 3년이다. 넥센타이어는 AC밀란의 홈 경기장인 산시로 스타디움에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 A보드 등을 통해 브랜드를 노출시켜 이탈리아와 유럽의 축구 팬들에게 인지도를 높여 나갈 예정이다.

또 EPL의 강팀인 맨체스터시티와의 후원 계약도 연장했다. 넥센타이어는 2015년부터 맨시티를 공식 후원하시 시작했고 2017년부터 유니폼 소매에 기업의 로고를 노출하는 방식의 슬리브 파트너십을 맨시티와 체결하기도 했다. 올해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하면서 맨시티 선수들은 넥센타이어의 로고가 소매에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필드를 누비게 됐다.

맨체스터시티 유니폼 소매에 새겨진 넥센타이어 로고. /사진=연합뉴스

금호타이어 역시 손흥민 선수가 몸담고 있는 EPL의 토트넘 홋스퍼와 2016년부터 이어 온 공식 파트너 계약을 연장했다. 손흥민 선수가 시즌 대표 골을 넣을 때면 어김없이 금호타이어의 A-보드 광고가 송출돼 최고의 광고 효과를 얻고 있다.

독일의 명문 축구 구단 바이엘 04 레버쿠젠과 글로벌 공식 타이어 파트너사로서 후원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을 통해 레버쿠젠 홈 구장에서 열리는 리그 경기 중 LED 광고는 물론 선수 유니폼 소매에도 금호타이어의 로고를 새겨 넣었다.

금호타이어는 손흥민 선수의 소속팀인 EPL의 토트넘을 후원하며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금호타이어


한국타이어는 최근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의 공식 후원 계약을 3년 연장했다. 리그 경기 진행시 스코어보드와 광고판, 미디어 월 같은 경기장 내 마케팅 홍보 수단을 이용해 다양한 홍보 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다.

스페인 최고 명문 구단인 레알마드리드와도 2016년부터 시작된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레알마드리드의 경기가 열릴 때마다 다양한 프로모션 등을 펼치며 브랜드 알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한국 완성차 업계 중에서는 현대차동차가 축구를 활용해 활발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차는 첼시와 유니폼 소매에 자사의 로고를 노출시키는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차는 EPL의 강팀인 첼시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있다. 첼시 선수들은 소매에 현대차의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누빈다. /사진=연합뉴스


이외에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리가), AS로마(세리에A) 등 유럽 무대에서 활약 중인 다수의 팀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브랜드를 알려나가고 있다.

인터뷰
김일광 한체대 교수
“팀 성적 좋을수록 스포츠 마케팅 효과 극대화”“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스포츠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인 김일광 한국체육대 레저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최근 기업들이 해외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배경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김 교수는 스포츠 마케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바로 ‘심리적 감정 이입’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해당 팀에 대한 충성도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후원 브랜드가 유니폼 혹은 전광판에 노출되면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일반적인 미디어 광고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후원하는 팀이나 선수의 성적이 좋을수록 스포츠 마케팅의 효과는 더욱 커지게 된다. 김 교수는 “만약 팀이 연승한다거나 우승하게 되면 팬들도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경기장 또는 TV 등을 통해 기업의 브랜드나 상품을 접하게 된다”면서 “자연스럽게 후원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심어지게 되고 이를 통해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게 된다”고 진단했다.

물론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업이 후원하는 팀 성적이 추락하거나 소속 선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그렇다. 후원하는 기업들의 이미지까지 함께 떨어질 수 있다. 그는 “이런 측면에서 스포츠 마케팅이 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한국 시장은 비인기 종목에 후원하는 스포츠 마케팅이 기대 이상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견해도 내비쳤다. 실제로 현대차(양궁)를 비롯해 SK(핸드볼·펜싱), 포스코(체조) 등 수많은 기업들이 비인기 종목에 지속적인 후원을 이어 가고 있다. 김 교수는 “이를 통해 기업들이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중심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만큼 전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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