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루시드 Air와 리비안 R1T 부상…중국과 유럽 시장에 뒤처진 미국은 생존 경쟁 중
[테크 트렌드]테슬라가 독주하던 전기차 시장에 신생 스타트업들이 본격적인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은 미국의 테슬라라는 절대 강자가 주도해 왔다. 테슬라의 모델 3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 대가 팔렸다. 최근 상하이 GM우링(SGMW)과 비야드(BYD) 등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의 돌풍으로 테슬라의 점유율이 점차 떨어지고는 있지만 테슬라는 올 상반기 기준 순수 전기차(EV) 점유율에서 22%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기존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많은 신생 스타트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테슬라의 입지가 점차 위협받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에서도 루시드 모터스(Lucid Motors), 리비안(Rivian), 로즈타운 모터스(Lordstown Motors), 피스커(Fisker), 카누(Canoo) 같은 스타트업들이 출사표를 내고 있고 중국에선 무려 32만 개가 넘는 기업들이 전기차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떠오르는 테슬라 대항마
현재 EV 시장에서 테슬라의 대항마로 떠오르는 스타트업은 리비안과 루시드 모터스다.
우선 루시드 모터스는 2007년 설립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이다. 초기 전기차 배터리 사업으로 시작했고 2017년 발표한 ‘루시드 에어(Air)’가 첫 전기차 모델이다. 루시드 에어는 여러 면에서 테슬라의 대항마로 언급된다. 2021년 10월 양산되는 루시드 에어의 주력 세단 ‘에어 드림 에디션 레인지’는 단 한 번 충전으로 520마일(837km)을 주행할 수 있다. 이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공식 인증한 전기차 중에서 주행 거리가 가장 긴 차다. 테슬라가 1회 충전으로 300마일(482km)만 주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루시드의 최대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루시드 에어의 최고 속력은 168mph(시속 약 270km)로 테슬라 S의 최고 속력 155mph(시속 249km)보다 뛰어나다.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 기능과 유사한 ‘루시드 드림 드라이브’라는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도 탑재된다. 이 시스템은 14개의 카메라, 고해상도 라이다(Lidar) 그리고 32개의 센서로 이뤄져 있고 향후 레벨 3 기능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된다. 2023년 하반기에는 루시드의 둘째 모델인 프리미엄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루시드 그래비티’도 출고될 예정이다.
루시드는 트럭 중심의 리비안과 달리 세단이 중심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거의 50%를 SUV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루시드 에어는 테슬라 모델 S, 포르쉐 타이칸, 아우디 e-트론 GT 등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된다.
루시드에 대한 투자 관점에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루시드가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사우디의 공공 투자 펀드(PIF)가 29억 달러(약3조4700억원) 투자로 1대 주주에 오른 이후 올해 초 200억 달러(약 23조9300억원)를 추가로 투자했다. 또한 사우디에서 가장 큰 도시인 제다시에 전기차 조립 공장을 설립하고 2024년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7월 나스닥에 상장한 이후 현재 루시드 모터스의 기업 가치는 240억 달러(약 28조6000억원)로 추산된다.
루시드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은 리비안이다. 리비안은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출신의 엔지니어인 R.J. 스캐린지가 2009년 설립한 전기차 스타트업이다. 주로 픽업트럭과 SUV에 특화돼 있고 2021년 9월 테슬라·GM 등 다른 전기차 제조 업체를 제치고 최초의 전기 픽업트럭 ‘알원티(R1T)’를 출고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에 출고된 리비안의 알원티는 주행 거리가 314마일(약 505km)이고 판매가는 7만3000달러(약 8732만원)로 알려져 있다. 알원티는 각각의 바퀴가 자체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4륜 구동형이고 최대 800마력(596kW)을 자랑한다. 자율주행을 위해 카메라에 의존하는 테슬라와 달리 라이다를 탑재했다. 또한 알원티의 기어가드(gear guard) 시스템은 여러 대의 외부 카메라를 사용해 트럭 주변을 감시하고 외부 사람이나 물체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스마트한 기능도 갖추고 있다.
리비안은 창립 당시 포드에서 5억 달러(약 5980억원), 2019년 아마존에서 7억 달러(약 8372억원)를 투자 받으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 리비안 로웨 프라이스 등 다른 글로벌 사업자들의 투자가 이어지면서 2021년 8월 현재 투자 금액이 105억 달러(약 12조6000억원)에 이른다.
물론 리비안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리비안은 아직 스타트업 회사이고 매출이나 수익도 전무하다. 리비안은 2021년 상반기 9억9400만 달러(약 1조189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고 2020년만 보더라도 순손실이 10억2000만 달러(약 1조2199억원)에 이른다.
또한 알원티(R1T)와 알원에스(R1S)를 양산한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차량이 고객에 인도되는 것은 내년 1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쟁쟁한 기존 사업자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아마존·포드·테슬라도 모두 내년에 전기차 픽업트럭을 양산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리비안에 대해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하는 한 가지는 리비안의 전기차가 양산되면 아마존이라는 든든한 고객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리비안은 이미 아마존의 배송 서비스인 ‘라스트 마일 딜리버리 서비스’를 위한 밴 차량을 2017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마존은 204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프로젝트를 위해 개발한 리비안 배송 전기차 10만 대를 사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비안의 향후 매출의 대부분이 아마존, 특히 아마존 로지스틱스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아무튼 11월 뉴욕 증시에 상장될 예정인 리비안은 현재 무려 800억 달러(약 95조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리비안이 만약 800억 달러의 가치로 상장(IPO)된다면 테슬라(5938억 달러), 도요타(2150억 달러), 폭스바겐(1618억 달러), 다임러(923억 달러), GM(814억 달러)에 이어 시가 총액 6위의 자동차 회사가 된다.
중국 유럽의 성장, 미국의 재도약
그동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 구도에 점차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중국과 유럽의 전기차 생산량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미국의 전기차 생산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국제청정운송협의회(ICCT)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전기차 생산과 보급에서 중국과 유럽에 뒤처져 있고 그 격차는 최근 3~4년 사이에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도 미국은 전 세계 전기차 1020만 대 중 약 17%에 불과한 반면 중국은 44%(450만 대), 유럽은 31%(320만 대)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전기차 생산국이다. 중국의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주로 중국 정부의 후원과 전기 인프라에 대한 지원 때문이다. 중국은 2019년 ‘신에너지차 산업 발전 계획안’을 발표하는 등 내연 기관차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전기차 시장 확대에 대해 적극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에너지 자동차로 불리는 무공해 배터리 전기·연료 전기차에 대한 복잡한 크레디크와 쿼터 시스템 기준에 미달하는 자동차 제조 업체는 벌금이나 특정 모델 생산 중단도 각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전기차 구매자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전기차를 더 쉽게 구매·등록·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전기차 구매자는 내연기관차 구매자보다 번호판을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얻을 수 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전기차 판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60%로 중국(36%)과 미국(17%)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전기차로 부르는 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중 PHEV 부문에서는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다. 유럽의 전기차 채택률이 높은 이유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로 유럽 각국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에 적극 대응하고 소비자들도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전기차 시대를 연 테슬라를 보유한 미국은 점차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위기를 인식한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8월 2030년까지 전기차가 미국 신차 판매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는 전기차 분야에서 더 이상 중국이나 유럽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묻어 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GM은 2035년까지 화석 연료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고 전기차 30종을 2025년까지 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포드와 테슬라도 각각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과 사이버트럭이라는 전기차 픽업을 내년에 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루시드와 리비안 같은 제2, 제3의 테슬라의 성공이 어떠한 결실을 볼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고 그 결과는 미국 전기차 산업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