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PTPP 가입, 필요할 때 [정인교의 경제 돋보기]

미‧중 경제분리, 팬데믹으로 GVC 재편
범지역적 메가 FTA 필요

[경제 돋보기]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을 전후해 글로벌 기업들은 효율성을 기초로 생산 공정을 여러 국가에 걸쳐 분산하는 글로벌 가치 사슬(GVC)을 발전시켰다. GVC 확산은 세계 무역 확대의 바탕이 됐고 개도국의 무역 참여 수단으로 작용했다.

WTO 출범 이후 전 세계적으로 많은 수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경쟁적으로 체결됐다. 일부에서는 경쟁적 지역주의의 문제점을 우려했지만 지역 경제 통합은 GVC를 확장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중국을 WTO에 가입시켜 세계 경제 성장의 모멘텀(원동력)으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2018년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국 국무장관이 닉슨도서관 연설에서 설파했듯이 중국은 미국의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발생 이후 미국의 글로벌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그 자리를 중국이 넘보기 시작했다.

마침 중국에서는 중국 굴기가 국가 목표로 설정됐고 미국발 금융 위기를 수습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전격 추진했다. 일본이 참여하기로 하면서 TPP의 경제 규모가 커졌고 오마바 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TPP 협상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 2015년 서명했다.

2013년 한국 정부는 TPP 가입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여건이 좋지 않아 판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당시로서는 어렵사리 한·미 FTA를 발효시킨 상황에서 미국과 다시 TPP 협상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고 일본과의 협상을 진행하기에는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또한 한국이 양자 간 FTA 협상을 하고 있던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시장 개방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웠다. 이들 국가들은 한·미 FTA에 준하는 수준으로 한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또한 이 시점에는 협상이 한참 진행 중이던 한·중 FTA에 통상 전문 인력을 전부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TPP 12개 국가와의 협상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중 FTA와 TPP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당시 협상이 진행 중이던 중국과의 FTA를 선택한 셈이다.

더구나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TPP 회원국과 양자 간 FTA를 체결한 한국으로서는 TPP 가입의 경제적 실익을 확신하기 어려웠다. 경제학에서는 ‘공짜 점심(free lunch)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좋다고 모든 일을 선택할 수는 없다. 무엇을 선택하면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TPP에 가입할 필요성은 있지만 한·중 FTA를 포기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답변하기 어렵다. 둘 다 추진했어야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실익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 자원(통상 분야 인력)이 제한돼 있어 고민이 깊어졌을 것이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TPP를 탈퇴했고 일본이 나머지 회원국을 독려해 점진적‧포괄적 TPP(CPTPP)로 출범시켰다. CPTPP에 대한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복귀다.

미‧중 갈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 중국·대만·영국 등이 CPTPP 가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가입 신청서를 이미 제출했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은 현재 가입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는 2013년과 상황이 다르다. 미‧중 경제 분리(디커플링)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으로 GVC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무역 협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과 FTA 발효국 간 무역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 이상이다. 소규모 경제와의 FTA 체결도 필요하지만 범지역적 메가 FTA는 WTO의 위상이 현저히 약화된 현재 상황에서 통상 분야의 보험이 아닐 수 없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