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함께 익어 가는 술 [막걸리 열전]

오산의 자부심으로 자라나는 ‘오산양조’

[막걸리 열전]

물건을 사고팔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시장 풍경 속에 양조장이 있다. 불그스름한 벽돌이 켜켜이 쌓인 예쁜 건물 위로 ‘술에 스미다’라는 간판이 견고히 자리 잡았다. 이곳에 술로 뭉친 두 사람이 있다. 만면에 포근한 미소를 띠고 또 다부진 목소리로 그들은 우리 삶 속에 은은히 스며들어 깊어지는 술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오색시장 길목에 자리 잡은 ‘오산양조’.


오색시장 길목에 자리 잡은 ‘오산양조’는 경기도 오산시에 딱 하나뿐인 양조장이다. 김유훈 대표와 오서윤 이사, 두 지역민을 필두로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오산양조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마을기업이다. 마을기업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수익 사업을 통해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곳이다. 주민 주도형 기업으로 기업과 지역 사회 간 선순환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 김 대표와 오 이사는 바로 전통술이 오산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통을 잇는 마을기업

시에서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며 시장 일대를 정비할 때 김 대표는 잘 운영하고 있던 가업을 정리했다. 오로지 나고 자란 오산을 생각하며 새 사업을 모색하던 중 그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큰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활기차고 정겨운 동네 양조장을 말이다. 한편 오 이사는 취미로 양조를 접하고 전통주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오산의 대표 전통주를 만들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됐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오산양조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왼쪽부터) 오서윤 이사, 김유훈 대표.


양조장은 김 대표의 옛 사업체 자리에 새로 지어졌다. 공간을 둘로 나눠 한쪽 제조장에서는 술이 익어 가고 다른 쪽 실습장에서는 전통주 정규 교육과 1일 체험, 각종 문화 행사들이 이뤄진다. 제조와 판매를 기반으로 주민들과 소통하고 전통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다. 오산양조는 전통주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지역과의 상생에 대한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 의식 아래 최근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통주 캐릭터 ‘까미’를 지역 사회와 공유했다. 오산시와 막걸리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기업들이 널리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양조장을 마을기업으로 운영하며 김 대표와 오 이사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틈이 없다. 몸은 힘들지만 양조장 운영이 지역의 발전으로 확장되기 때문에 하루는 늘 보람차다. 두 사람의 진심을 헤아린 주민들도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가 도우며 만든 선한 에너지는 오산양조의 원동력이 된다.

△우리 삶 속에 은은히 스며들어 깊어지는 술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를 담은 슬로건 ‘술에 스미다’.


오산의 정체성이 담긴 술

오산양조는 현재 탁주를 기본으로 증류주와 요리술도 선보이고 있다. 모두 오산의 특산품인 세마쌀로 만든다. 1만 병 이상으로 생산량이 늘면서 올해만 8톤의 쌀을 사용했다고 하니 지역 농산물을 순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시그니처 제품으로 처음 ‘오산막걸리’가 탄생했고 고도수의 진한 탁주인 ‘오매백주’는 시조(市鳥) 까마귀와 시화(市花)인 매화를 상징한다. 문화 유적인 독산성 세마대지에서 영감을 얻은 증류식 소주 ‘독산’ 시리즈까지 제품마다 오산의 색깔을 듬뿍 담았다.

△(왼쪽부터) 고도수의 탁주 ‘오매백주’, 전통 방식대로 빚은 시그니처 제품인 ‘오산막걸리’, 산뜻함과 삼양주의 보디감이 조화로운 ‘하얀까마귀’.


세마쌀·물·누룩의 재료를 전통 방식대로 빚은 오산양조의 막걸리는 한마디로 담백하다. 적절히 숙성되면 부드러운 요구르트 향과 단맛이 올라오는데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은 생주만이 낼 수 있는 자연의 매력이다. 또 발효가 완전히 끝난 후 병입하기 때문에 마셨을 때 더부룩함 없이 속이 편안하다. 특히 이번 여름 출시한 ‘하얀까마귀’는 산뜻함과 삼양주의 보디감이 조화로운 막걸리다. 전통술의 새로운 소비층을 겨냥해 맛과 패키지 디자인 등 전체적으로 젊은 감성으로 풀어 내며 준비 기간에만 1년이 걸렸다. 오산양조는 로컬 브랜드로서 기본을 지켜 나가고 이와 함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제품 라인업을 하나씩 다져 가는 중이다.

오 이사는 “양조를 시작하게 된 그 초심을 잃지 않으며 오산에서 정직하게 양조하는 것, 그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오산양조는 그 무엇보다 지역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양조장이고 싶다. ‘정성을 다하면 겉으로 배어 나오고 이는 감동과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된다’는 중용의 구절처럼 오산양조만의 가치를 발효한 술이 퍼져 나가고 더 많은 사람이 젖어들 수 있도록 지나온 5년처럼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이소담 객원기자 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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