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승부수’ 완성차 업체의 4가지 필승 전략

아우디 ‘Electric has gone Audi’ 슬로건으로 브랜드 승부수…친환경·사회적 비전 등 철학 파는 완성차 업체

[테크 트렌드]

포르쉐 ‘타이칸 터보 S’ / 포르쉐 제공


리텐션(retention)이라는 용어가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한 번 사용했던 사람이 몇 번이나 더 재사용하는가에 대한 지표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성공하려면 리텐션 지수가 높아야 한다. 리텐션 지수가 높다는 말은 반복해 쓰는 고정 팬이 있다는 뜻이다.

전기차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전기차의 숙제 또한 ‘리텐션 지수’다. 전기차 시장에서 리텐션 지수를 높이려면 어떻게 승부해야 할까.

1. 브랜드 매력 승부수

“좋은 회사는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하지만 위대한 회사는 고객과 감성적으로 연결되고자 한다.” 미국 월간 경제 매거진 INC에서 한 말이다. 전기차도 리텐션 지수 제고를 위해 감성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포르쉐는 최초 순수 전기차 타이칸을 2020년 출시했다. 고성능 가솔린 스포츠카의 대명사인 포르쉐가 전기차 시장을 공략한 방식을 보자. 포르쉐는 ‘영혼, 전기화하다(Soul, electrified)’라는 메시지를 대문에 내걸었다. 젊음과 열정 같은 포르쉐 고유의 스포츠카 정신이 전기차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의미가 묻어난다.

아우디는 전동화 트렌드에 맞춰 2026년부터 순수 전기차만 출시한다고 6월 22일 밝혔다. 아우디는 ‘전기는 아우디로 갔다(Electric has gone Audi)’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전기차가 아우디했다’라는 말이다. 자신감 넘치는 표현이다. ‘검색하다’라는 말을 대표적인 포털 사이트 이름을 써 ‘구글링하다’라고 쓰듯이 ‘가솔린 차의 날것의 느낌, 꽈트로 4륜 기술이 있다’를 아예 ‘아우디하다’라고 써버린 것이다. 전기차만의 대단한 기술, 충전 도메인이 초점이 아니다. 아우디만의 개성과 아우라를 어필하는 것이 전략이다.

다임러 벤츠 역시 전기차 기술 자체보다 1886년부터 지속된 벤츠의 오랜 브랜드 역사를 강조했다. ‘벤츠 전기차는 전기차 그 이상의 것’이라며 클래식의 위엄을 상기시켰다.
볼보의 전기차 XC60 등은 볼보 특유의 곡선 형태 우드트림이 매력이다. 풍부한 침엽수림을 보유한 스웨덴의 목공 기술과 스칸디나비안 분위기를 차 안에 녹였다. ‘내 집 거실 같은 편안함’, ‘인간 중심’을 추구하는 볼보의 전략이다.

이들은 모두 전기차의 반짝 인기나 핫한 신제품 홍보로 승부하지 않는다. 유행에 따라 스쳐 지나가는 소비자는 이들의 주 관심사가 아니다. 자신들의 오랜 팬, 자신들의 전통을 알아주는 팬, 자신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팬, 자신들에게 꾸준한 신뢰를 줬던 팬들에게 계속 어필하고 있다. 이번엔 우리가 전기차를 내놓았다고 리텐션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사실 전기차는 완성차 업체가 강조할 자체적인 기능 포인트가 없는 것도 맞다. 정보기술(IT)과 배터리가 모두다. 이것이 완성차 업체가 브랜드 전통과 클래식에 호소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우디의 슬로건. /아우디 제공

2. 스타 CEO 승부수

테슬라는 단순한 차 브랜드가 아닌 감성의 아이콘이 돼 가고 있다. 테슬라는 품질에 대한 불만에도 브랜드 충성도가 높다. 실제로 미국 신차 품질 평가에서 테슬라 차주들은 가장 낮은 점수를 줬지만 브랜드 매력도에서는 최고 점수를 줬다. 테슬라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감성의 아이콘이 돼 가고 있다.

테슬라는 전통적 광고가 아닌 고객들의 입을 통해 홍보한다. 판매도 기존 완성차 기업들의 딜러(사람) 판매 방식이 아닌 웹사이트를 통해 시승 신청부터 차량 계약을 진행한다. 테슬라는 세일즈 조직이 사실상 없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엘론 머스크 때문이다. 머스크 CEO의 트위터 팔로워는 한국 전체 인구수와 맞먹는다. 스타 CEO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장악하고 압도적으로 충성스러운 팬덤을 만들었다. 그의 독특한 세계관, 재미있는 행보, 자유로운 언행, 창의적인 사고 방식, 짧은 시간 안에 시가 총액 톱 기업군으로 테슬라를 끌어올린 경영 능력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모은다. 머스크 CEO는 2019년 자사의 전기 픽업트럭 ‘사이버트럭(Cyber Truck)’ 발표회에서 방탄 유리가 깨진 이유를 본인 트위터에서 친구에게 설명하듯이 가볍게 올렸고 팬들의 답 글에 의견도 적었다. 회사 공식 발표회에서 할 법한 것들을 본인 트위터에서 해 버린 것이다.

팬덤은 테슬라가 빅데이터를 축적하게 해 개선 방향을 잡게 해준다. 그냥 사용자 빅데이터가 아니라 앞서 말한 리텐션 지수가 높은 고급 빅데이터들을 축적하게 해준다. 지나가다가 한 번 호기심에 사용해 본 소비자의 의미 없는 데이터가 아니라 진짜 오랜 ‘찐팬’의 사용 형태 빅데이터가 테슬라에 쌓인다. 팬덤 자발적으로 테슬라의 홍보 대사가 돼 주기도 한다. 어디에서 많이 본 그림 같다면 맞다. 아이폰을 만든 애플 CEO 스티브 잡스와 결을 같이하는 행보다.

애플은 직원 중에서 스타플레이어를 양성하기로도 유명하다. ‘마케팅의 신(가이 가와사키)’, ‘HR의 귀재(조엘 포돌니)’라는 별명을 붙인 직원을 애플 회사 차원에서 적극 양성하고 홍보한다. 스타플레이어 직원이 몰고 오는 팬덤과 언론 스포트라이트는 직원과 회사 양쪽 모두에 윈-윈인 마케팅 전략이 된다.

세계 전기차 경주대회(ABB FIA 포뮬러E 월드챔피언십)의 글로벌 홍보대사를 맡은 BTS(방탄소년단). /포뮬러이코리아 제공


3. 재미 요소로 승부수

2022년 8월 서울에서 세계 전기차 경주 대회(ABB FIA포뮬러E 월드챔피언십)가 열린다. 다임러 벤츠·포르쉐·BMW 등 세계적 자동차 회사가 참여한다. 내연기관차가 아닌 최첨단 IT로 무장한 이 대회는 온라인 시청자가 3억 명에 달하는 인기 대회다. 자동차 업체들은 이 대회를 통해 무엇을 얻을까. 끊임없이 자사의 전기차를 노출할 수 있다.

포르쉐 전기차는 가속할 때 ‘포르쉐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라는 가공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원래 전기차는 엔진 특유의 소리가 없어 조용하다. 하지만 내연기관 스포츠카에서 나는 엔진 음과 전기 모터 구동 음을 결합해 만든 이 소리는 운전하는 재미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전기 스포츠카에 짜릿함을 불어넣어 준다. 포르쉐는 주행 시 도로 표면의 진동을 사람이 전혀 느끼지 않도록 할 기술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도로 표면 진동 느끼게 설계한다. 포르쉐는 사람들이 왜 운전하는지, 사람들이 말하는 ‘운전할 맛’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브랜드다.

재미 요소는 전기차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내연 기관차 이름은 ‘스피드·파워·기술’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기차는 ‘IT·세련·미래·젊음·재미’를 강조한다. 벤츠의 EQ라는 이름 역시 감성적인 이름이다. 폭스바겐은 ID, 재규어는 아이페이스(I-PACE)라는 이름을 쓴다. 쌍용차는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이름을 ‘코란도 이모션’이라고 정했다. 롤스로이스의 순수 전기차 이름은 ‘사일런트 섀도’다. 현대차 전기차 브랜드 이름은 아이오닉이다. 혼다의 브랜드 최초 전용 전기차의 이름은 ‘프롤로그’다. 다들 재미있는 이름으로 전기차에 밝고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이다. 전기차는 자기 이름으로 자기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기아는 캐나다 밴쿠버에 전기차 체험 센터를 2021년 6월 열었다.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는 운전자들에게 확신을 주고 전기차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전기차의 매력을 어필해 이 시장을 붐업시킬 목적이다.

2020년 11월부터 테슬라는 ‘테슬라 데킬라(Tesla Tequila)’를 판매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가 주류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250달러짜리 테슬라 데킬라는 판매 고공 행진 중이다. 테슬라는 웹 사이트를 통해 자동차 용품·의류·텀블러·우산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른바 테슬라 ‘굿즈’ 개념이다.

환경을 생각한 소재를 선택하는 랜드로버. / 랜드로버 제공


4. 사회적 기여로 승부수

볼보는 차에 천연 섬유 합성 소재를 쓰고 재활용 코르크 비닐을 적용했다. 차를 생산하는 공장 자체도 기후 중립을 목표로 한다. 공장에서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이런 생산 문화를 선도한다. 벤틀리는 친환경 와인 부산물 유기농 소재가 차 안에 들어간다. 포르쉐는 탄소 마일리지 캠페인을 열어 운전자가 내연기관차를 타면서 발생시킨 탄소만큼 아프리카 노동 인권을 보장하거나 아마존 정글을 지키는 데 기부할 수 있게 했다. BMW는 차량 내부 플라스틱이 필요한 곳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랜드로버는 이른바 ‘비건’ 콘셉트를 적용해 재활용 플라스틱을 써 만든 인조 스웨드 가죽을 차에 넣었다. 테슬라는 어떤가. 머스크 CEO가 경영하거나 설립한 테슬라·스페이스X·스타링크의 기업 비전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 추구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당면 과제 해결, 환경 보호, 사회적 비전 달성을 추구한다.

이런 차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동차 메이커의 친환경 철학에 자신도 동의한다는 뜻이다. 자신은 이런 기준으로 차를 고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은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기여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자기 취향이 자신의 차에 녹아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자기 차가 보여준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어필되는 포인트다. MZ세대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때 제조사의 신념, 기후 변화 및 인종 차별 등의 사회적 이슈 참여도도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을 판다. 오토바이는 슬쩍 끼워 팔 뿐.” 위기의 할리 데이비슨을 부활시킨 전설적인 CEO 리처드 티어링크의 말이다. 할리 데이비슨 역시 스펙이 아니라 자유·열정·마니아 팬을 강조했고 이 철학에 동의하며 ‘할리 데이비슨을 타는’ 팬덤은 다시 강하게 뭉쳤다.

스마트폰도, 스마트 TV도, 전기차도 이제 나올 법한 기능은 다 나왔다. 기능과 스펙 그 자체만으로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하기는 어렵다. 아이폰이 어디 다른 스마트폰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능이 있어 인기가 있던가? 어렵고 특이한 신기술 그 자체를 구현하는 데 매몰되지 말자. 필요해서 사기보다 원해서 사는 시대다. 감성 포인트를 꽉 잡자.

정순인 LG전자 VS사업본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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