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여행법
2156년 토성 궤도 근처의 한 우주정거장. 여태껏 봐온 광활한 우주에서 외로이 홀로 떠도는 주정거장과는 전혀 딴판이다. 이곳에는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지구를 떠난 인류가 정착해 살고 있다. 햇볕은 지구처럼 따사롭고, 땅에는 푸른 잔디가 무성하다. 공기는 우주복을 입지 않아도 편하게 숨 쉴 수 있으며, 곡물은 성인 남성 키만큼 자라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 결말 부분에 나오는 장면이다. 미래 여행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면 누구나 이처럼 쉽게 우주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소재로 주로 사용한 우주여행이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사람들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함께 우주 여행을 떠나는 티켓 값이 무려 2,800만 달러약 312억원에 낙찰됐다. 이는 경매 시초가인 490만 달러약 54억5,860만원를 훌쩍 넘어선 금액으로 전세계 최고 부자인 베이조스와 함께 떠나는 우주 관광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159개국에서 약 7,600명이 경쟁에 뛰어들며 경매에 참여했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베이조스는 지난 7월 20일 우주 여행을 떠났다. 이 날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베이조스는 2000년에 본인이 설립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의 '뉴셰퍼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떠났다. 뉴셰퍼드호는 조종사가 필요 없는 캡슐 형태의 오토파일럿 우주선으로 총 6개 좌석이 있으며, 이번 우주 여행에는 총 4명이 탑승했다. 베이조스와 그의 동생 마크 베이조스를 비롯한 탑승객 전원은 지상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지구와 우주 경계선까지 올라가 무중력 상태에서 창밖으로 지구를 감상한 후 지구로 돌아왔다.
은퇴 후 꿈꿔왔던 바를 이룬 베이조스이나 아쉽게도 민간인 '최초' 우주여행 타이틀은 영국의 버진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브랜슨은 베이조스 보다 조금 앞선 7월 8일 버진 갤럭틱Virgin Galactic의 우주선을 타고 민간인 최초로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그는 "새로운 우주시대의 새벽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첫 우주 여행 소감을 밝혔다.
우주 여행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테슬라 창업주 겸 CEO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 역시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과 같은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 엑스Space X를 2002년 설립, 운영하고 있다. 스페이스 엑스는 지난해 민간 유인 우주선을 최초로 개발한 데 이어 나사NASA 우주비행사들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2011년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종료한 이후 9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특히 지난 4월에는 블루 오리진을 제치고 미국의 달 착륙선 개발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
머스크는 2024년 첫 번째 유인 화성 탐사 우주선을 보내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2050년에는 화성에 수만 명이 살 수 있는 식민지를 개척하겠다는 원대한 구상도 갖고 있다. 일찌감치 우주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머스크 역시 지난 9월 15일 민간인 4명을 태우고 우주로 떠나 사흘 동안 지구 주위를 돈 뒤에 돌아왔다.
영화를 통해 우주와 먼저 만나다사실 우주여행을 누구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를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방법은 어떨까? 코로나19가 촉발한 뉴노멀 시대답게 여행의 기술 또한 앞당겨져 간접적으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실제 우주에서 촬영한 국내 VR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16일 LG유플러스가 초대 의장사를 맡은 글로벌 5G 콘텐츠 연합체 ‘XR 얼라이언스’는 국제 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한 <우주 모험가들:우주정거장 경험Space Explorers: The ISS Experience> 에피소드 2를 선보였다. 해당 콘텐츠는 실제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 비행선 내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모습과 무중력 식사 장면 등을 촬영해 360도 VR로 실감 나게 볼 수 있다.
또 SK텔레콤 본사 2층에는 총 1,370㎡ 약 414평 규모의 정보 통신 기술ICT 체험관이 있다. ‘티움T.um’이라 부르는 이 공간은 온택트 투어 프로그램 ‘티움 유튜브 라이브 투어’를 운영 중이다. 라이브 투어를 통해 우주와 해저에 자리 잡은 2051년의 미래 도시 하이랜드로 떠날 수 있다. 투어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약 30분간 실시간으로 중계한다. 유튜브 소개 영상을 통해 공개한 우주 셔틀 장면을 보면 실제 우주선에 타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우주로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하이퍼루프와 비행 셔틀 등 미래형 이동 수단탑승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크린에서는 어떠한 우주가 펼쳐지고 있을까. 우주 영화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우주를 생생히 느끼고자 하는 이들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았다. 웜홀을 통한 시간 여행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2067년 인류가 완전히 붕괴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조종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주를 더욱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패신저스Passengers>에서는 개척 행성으로 떠나는 상품을 판다. 2016년 개봉한 이 영화가 현실이 되어 진짜 우주로 가는 상품을 사고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큰 비용을 투자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다는 내용이다.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도착하기 약 4개월 전 탑승객이 동면에서 깨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이유로 90년이나 일찍 깨어난다. 행성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우주선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묘사한 작품으로, 우주여행에 대한 불안 요소를 곳곳에 심어놓았다.
세트장에서만 촬영하던 우주 영화는 이제 직접 가서 촬영한다. 러시아와 미국에서는 세트장이 아닌 실제 국제 우주정거장ISS에서 영화 촬영을 계획한다고 밝혔다. 촬영을 위해 지난 10월 5일 러시아 여배우 율리야 페레실트와 감독 클림 시펜코가 가장 먼저 우주로 향했다.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 MS-19’을 타고 우주로 향해 <도전>이라는 영화를 촬영한다. 또 미국에서는 영화배우 톰 크루즈가 영화 촬영을 계획 중이다. 조금 더 가까워진 우주가까운 미래인 2027년, 지구 중력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인공중력으로 작동하는 우주정거장에 인류 최초로 우주 호텔 ‘보이저 스테이션Voyager Station’이 들어선다. 투숙객은 이곳에 머물면서 레스토랑, 영화관, 콘서트장, 헬스 시설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 우주에 대한 모험이 아닌, 우주를 즐기는 여행다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민간인이 우주 관광을 하는 시대는 조금 멀어 보인다. 10년만 기다리면 된다고들 하지만, 비행기처럼 각 나라가 우주선을 보유하는 것이 아니어서 스케줄을 잡기도 어려울 테고, 티켓 한 장에 수백억원이 넘어 만수르 같은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탑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또 무사히 귀환한다는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어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한다. 그래도 우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그곳을 꿈꾼다. 언젠가 누구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 볼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글. 김현기(테크M 대표)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박혜원 기자 phw062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