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중국 견제 전략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

미국-유럽 공조 환경 조성해 중국 견제
합의안 도출시 국제 질서 재편 가능성 높아
한국, 대응 방안 고심할 때

[경제 돋보기]



미국과 유럽이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10월 말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시작된 철강·알루미늄 관세 분쟁을 마무리하고 이들 산업에서 중국 견제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또한 양측은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의 과잉 생산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글로벌 협정에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는 과잉 생산의 근원인 동시에 극심한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중국의 관련 산업을 겨냥한 것으로 판단된다. ‘앙숙’ 관계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물러나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과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미국과 유럽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EU 의회 대표단의 대만 방문 역시 이러한 긴밀한 관계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만 문제에 대해 EU는 미국과 공조하고 있다고 중국에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 과연 미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사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이후 중국 견제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추가 관세 부과를 연장했을 뿐 구체적인 추가 조치를 취한 것이 없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예산안 처리, 지지율 하락 등 국내 이슈로 인해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적 이슈에 추가적인 역량을 투입하기에 벅찬 상황이다.

다만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국가 안보 관련 이슈에 추가해 노동·환경·인권 등 전선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인 중국 견제에서 벗어나 동맹국과의 공조를 통한 중국 견제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유럽과의 공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6월 미국·EU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측은 ‘미국·EU 무역기술협의회(TTC)’를 설치하고 기후·녹색 기술, 정보통신기술(ICT) 보안 및 경쟁력, 데이터 관리와 기술 플랫폼, 수출 통제, 투자 심사, 글로벌 통상 문제, 핵심 공급망 강화 등 총 10개의 작업반을 구성해 협력을 가시화하고 있다. 나날이 중요성이 더해지는 디지털 통상 분야에서 미국과 EU 양측이 국제 규범의 틀을 잡고 합의에 도달한다면 글로벌 통상 질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미국은 중국 견제에 대한 직접적인 정책을 구체화하지 않은 채 유럽을 중심으로 한 동맹국과의 공조 환경을 조성하고 협의해 나가는 단계에 있다. 즉 공조 분위기 조성 단계를 넘어 유럽과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합의안을 도출한다면 미국은 이를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가져와 중국 견제의 공조 환경을 이 지역에서 만들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합의 결과가 국제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진 사례는 무수히 많다. 미국과 유럽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규범을 만들고 이를 수행할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결국 그것이 국제 질서가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련돼 1948년 발효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우루과이 라운드 막바지 협상에서 도출된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재 디지털 통상과 관련된 규범에서 미국과 EU는 개인 정보 보호,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 등 분야별 구체적인 수준에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디지털세에 합의한 경험을 활용한다면 양측이 관련 규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이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규범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 역시 관련 논의 동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사전에 이러한 논의에 참여할 기회를 포착해 한국의 국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대응 방안에 고심해야 할 때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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