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되는 공급망 차질과 인플레 우려

팬데믹 장기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내년 하반기 공급망 점차 완화 기대

[머니 인사이트]

사진=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월 29일 미국 텍사스주 라포트의 휴스턴 항구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EPA·연합뉴스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차질이 심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공급 병목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고 에너지 전환 정책과 맞물리면서 일부 에너지 자원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공급망 차질은 대부분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의 장기화에 따른 결과인데,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 모두 원인이 있다.

재화 소비 급증 속 공장 가동 제한이 원인

수요 측면에서의 원인은 대규모 보조금 지급으로 상품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에 따라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무르면서 재화 소비가 급증했지만 공장 가동 제한으로 생산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면서 재고 부족이 심화됐다. 팬데믹 초기부터 전면적 이동 제한에 나섰던 미국과 유럽 등에 비해 생산과 수출이 가능했던 중국·한국·대만 등 아시아 기업에 일부 수혜가 나타나기도 했다.

공급 측면에서의 원인은 조금 더 복잡하다. 팬데믹 수요 예측 실패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 공급 부족과 동남아의 델타 변이 확산, 해상과 내륙 운송 차질, 노동력 부족 등 다양한 배경으로 생산 회복이 제약됐기 때문이다. 또한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의 생산 비용도 빠르게 늘어났다.

팬데믹 이후 자동차 수요 부진을 예상한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이 정보기술(IT)용 반도체 등으로 설비를 전환하면서 올해 초부터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됐고 올가을에는 IT·반도체·자동차 부품 생산 비율이 높은 동남아 지역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부품 조달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이는 결국 제너럴모터스(GM)·포드·폭스바겐·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축소로 이어졌다. 반도체와 자동차 이외에도 우유·새우·토마토·커피 원두 등 식품은 물론 가전·가구 그리고 영국에서는 가솔린까지 공급 병목이 확산됐다.

근본적으로는 운송 차질과 노동력 부족 등 물류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재화 소비가 늘면서 물동량이 급증했지만 코로나19 방역과 검역 강화로 수출입 처리가 지연되고 노동자 부족으로 항만 하역 작업도 지체되고 있다. 중국 등에서는 델타 변이 확산으로 주요 항구가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극심한 정체로 미국 서부 항만에 대기 중인 컨테이너 화물량이 팬데믹 이전보다 약 3배나 증가했고 중국 컨테이너운임지수(CCFI)는 1년 전보다 3배나 높아졌다.

해상뿐만 아니라 내륙 운송 문제도 심각한데, 주로 노동력 부족이 원인이다. 지난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항만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주5일, 주간’에만 운영되던 항만 작업 시간을 ‘주7일, 24시간’ 운영 체제로 전환, 컨테이너 처리량이 기존보다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컨테이너 하역 작업이 늘더라도 철도와 야간 운송에 나설 트럭 운전사가 부족하다. 야간 운송에 성공해도 창고가 있는 물류센터에서 야간 하역 작업을 할 노동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석탄·석유·천연가스 등에서도 공급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재개방으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한 반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과 탈탄소 정책에 따른 화석 연료의 채굴 투자 감소로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의 구조적인 강세가 나타나고 있다. 원유 수급의 타이트한 균형은 향후 2~3년 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중국 등 석탄 발전 비율이 높은 국가와 영국 등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전력난이 발생하고 있다.

내년 1분기 이후 인플레 부담도 완화 전망

공급 병목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력 부족과 신규 선박 투입, 기업들의 재고 확충 등은 단기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공급망 차질 문제는 대부분 팬데믹의 장기화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서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이동 제한 정책들이 회수되고 있다. 이동 제한과 항만 폐쇄로 차질을 빚었던 운송과 생산이 재개되고 재화 소비 수요는 서비스로 이전되며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의 자동차 부품 생산이 정상화되고 있고 정부의 방역 규제 등이 완화되면 불가피하게 구직 활동을 못했던 사람도 노동 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저임금 서비스업에서 이탈해 업종을 전환하려던 사람도 마찰적 실업 기간 동안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공급 차질 문제의 핵심 지역은 동남아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은 각각 반도체와 자동차 관련 생산의 주요 기지고 베트남에는 IT 제품과 의류·잡화 등 소비재 공장이 집중돼 있다. 하지만 동남아의 공급 차질이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신 접종 확대와 ‘위드 코로나’ 도입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이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주요국은 코로나19 종식의 어려움과 경제 성장 둔화 부담, 백신 접종 확대를 바탕으로 위드 코로나 추진 계획을 밝혔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은 TSMC와 삼성전자의 신규 생산 능력 증설 효과가 나타나며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생각해 볼 문제도 있다. 첫째, 수요 급증에는 일부 ‘가수요’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재고 증가율이 크게 낮지 않다는 점에서 공급 차질의 원인은 재고 부족보다 주문 급증일 가능성이 있다. 유통 업체들이 연말 소비 시즌을 앞두고 물류망 선점과 선주문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수요는 연말이 지나면서 약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원자재 공급 병목에는 일부 투기적 수요 영향도 있다. 최근 원자재 선물 시장에서 높아진 개인들의 거래 비율 중 상당수는 단기 차익을 노린 자금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이런 성격의 자금은 정부의 개입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셋째, 공급 병목 현상은 아시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미국 등 서방 선진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규모 보조금 지급으로 수요가 급증했지만 노동력 복귀가 지연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산 시설 부족보다 해당 국가들의 일시적인 물류망 교란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문제도 미국 등 선진국에 국한돼 있다. 최근 중국은 1% 이하, 한국은 2% 중반, 일본은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의 물동량이 가장 많은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둔 선주문과 가수요, 동절기 난방 수요가 고비가 되겠지만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중국의 생산 차질 완화와 함께 공급망 차질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의 에너지 가격 안정 정책과 기저 효과 등으로 내년 1분기 이후 인플레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위기와 미·중 무역 분쟁, 무형 자산 투자 확대로 각국의 설비 투자는 상당 기간 부진했다. 팬데믹 이후 광범위한 공급 병목 현상을 겪은 기업과 정부는 글로벌 밸류 체인 확대에서 필수 부품과 인력을 내재화하는 자국 내 투자 확대 전략으로 변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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