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플랫폼 호라이즌 구축 중...기술 우위보다 신뢰 회복과 기업 문화 개선 필요
[테크 트렌드]페이스북은 매년 2개의 중요한 연례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하나는 연초에 열리는 기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용 도구를 업데이트하기 위한 F8 개발자 콘퍼런스이고 또 하나는 연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에 대한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는 커넥트(connect) 콘퍼런스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28일 연례 VR 개발자 행사인 페이스북 커넥트 2021이 개최됐다. 이번 행사를 통해 페이스북이 내세운 메타버스의 핵심 화두는 실재감, 아바타, 거주 공간, 순간 이동, 상호 운용성, 사생활과 안전, 가상 재화, 자연스러운 조작 환경 등이었다.
가상 공간 확대와 현실감 제고
무엇보다 공간(space)에 대한 부분이 눈에 띈다. 페이스북이 구축 중인 소셜 플랫폼 호라이즌(Horizon)은 홈(Home)·월드(World)·워크(Work) 등 3개 공간으로 이뤄진다.
‘호라이즌 홈’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고 게임을 즐기고 홈 오피스를 만들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가상 주거 공간이다. 사용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집을 만들어 아바타 형태로 친구나 지인들을 초대해 영화나 라이브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인터넷 클릭을 통해 웹사이트를 이동하듯 순간 이동(teleport)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호라이즌 월드’도 사용자가 자신만의 공간을 직접 만들어 게임을 즐기거나 친구를 초대해 파티를 열 수 있는 가상 공간이다. 작년 베타 버전 공개 이후 사용자와 가상 공간 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 8월 베타 버전으로 출시된 ‘호라이즌 워크룸’도 사용자들이 가상 회의실에서 만나 화이트 보드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협업 공간이다.
이러한 가상 공간에서 현장감 있는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3차원(3D) 개체 지원 환경도 소개됐다. 프로젝트 캠브리아(Project Cambria)와 프로젝트 나자레(Project Nazaré)라고 불리는 미래형 VR과 AR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캠브리아는 최고급 VR 헤드셋이다. 자연스러운 눈맞춤과 사용자의 실시간 얼굴 표정 구현이 특징이다. 오큘러스 퀘스트에서 헤드셋을 착용한 채 물리적인 주변 환경을 볼 수 있는 완전 컬러 혼합현실(MR) 패스 스루(pass through) 보기 기능을 갖췄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헤드셋을 벗지 않고도 책상에 놓인 볼펜을 집어 메모할 수 있다.
VR 헤드셋인 캠브리아와 달리 나자레는 페이스북 최초의 차세대 AR 안경 개발 프로젝트다. 아직 프로젝트 단계이긴 하지만 나자레를 이용하면 왓츠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와 함께 AR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사용자들이 현실감 있게 활동할 수 있도록 실제 인간과 닮은 아바타와 주변 환경 등 한층 진화된 기반 기술도 선보였다. 예를 들어 실제 위치를 3D로 재구성한 전신 코덱 아바타(Codec Avatars)가 실시간으로 렌더링되고 실제 물체에 반응한다. 코덱 아바타는 3D 캡처 기술과 인공지능(AI)을 접목해 실사처럼 구현된 가상 아바타 제작 프로젝트다.
뇌가 손으로 보내는 신호를 컴퓨터 명령으로 바꾸는 근전도(EMG)를 이용해 손가락을 움직여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는 신경 인터페이스도 특징이다. 이 밖에 사용자 간 커뮤니케이션과 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VR 메신저 통화 기능과 창작자와 사용자들이 직접 3D 디지털 아이템을 팔거나 공유할 수 있는 ‘호라이즌 장터’도 소개되면서 메타버스 기술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된 기술적 기능보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고 핵심 비즈니스 전환과 수익 모델에 변화를 줬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변신, ‘메타’를 통해 실현?
2004년 출범한 페이스북은 오늘날 월 실사용자(MAU)만 무려 29억 명을 보유한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자 인스타그램(10억 명)과 왓츠앱(20억 명)을 거느린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글로벌 거대 기술(big tech) 기업이다.
페이스북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번 커넥트 2021을 통해 VR과 AR이 혼합돼 훨씬 더 몰입감 있는 디지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메타버스 사업자가 되겠다고 천명했다.
‘메타’는 이를 위해 기존 소셜 네트워크 사업에 추가해 사업 부문을 확대 개편했다.
하나는 자사의 핵심 사업인 SNS,즉 페이스북 관련 사업 부문이고 나머지는 메타버스를 운영하는 미래 플랫폼 사업 부문인 리얼리티 랩(Reality Labs)이다. 이번에 분사하는 리얼리티랩은 AR·VR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메타버스 사업부다. ‘메타’는 여기에 최소 100억 달러(약 11조8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고 유럽에서 약 1만 명의 엔지니어를 채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는 광고 수익 이외에도 상거래(commerce)를 통해 수익을 확대할 계획이다. ‘메타’는 물리적 제품과 디지털 제품을 모두 판매할 것이고 특히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을 온라인 쇼핑과 연계해 향후 디지털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메타’는 이번 사명 변경을 통해 메타버스를 선도하는 기업이라고 부각시킨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페이스북’은 잘못된 정보의 확산 조장과 사용자 데이터에 대한 불투명한 정책으로 인해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전직 직원인 프란시스 호겐이 그동안 페이스북이 사용자의 안전보다 사익을 추구해 왔다고 고발한 이후 어려움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도 반독점 혐의로 제소된 상태다.
그야말로 ‘메타’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명 변경을 이러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이미지 세탁용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물론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메타’는 페이스북만으로는 자사의 미래 혁신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메타’는 이번 행사를 통해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 모두에서 가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선도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장으로 전환하는 것이 단순한 기술의 완성도만으로 되는 것일까. ‘메타’가 우선 해결해야 할 이슈는 산적해 있다.
먼저 상호 운용성 측면이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폐쇄적인 플랫폼이 아니라 개방형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즉, 메타버스 플랫폼은 한 사람이나 특정 기업에 의해 소유되거나 운영되지 않는 상호 운용성이 전제가 된 플랫폼(interoperable platform)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바타가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동일한 경제 활동이 가능해야 한다. 물론 저커버그 CEO는 사용자의 아바타와 디지털 아이템을 다른 메타버스 내 여러 애플리케이션과 경험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저커버그 CEO가 페이스북으로 소셜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듯이 ‘메타’를 통해 자기만의 독립적인 메타버스 제국을 소유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이번 행사에서 ‘메타’는 상호 운용성에 대한 원론적인 방침만 표명했을 뿐 얼마나 어떻게 개방할지와 같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둘째, 개인 정보 이슈다. 올해 초에도 페이스북에서 약 5억300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됐다. 이러한 위험은 메타버스에서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현실 세계와 연결돼 있고 개인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출될 수 있는 공간이 메타버스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용자와 가상 세계를 연결하는 헤드셋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된다는 점에서 사생활이나 데이터 오용 문제가 더 심각할 수 있다.
셋째, 공정한 수익 배분을 통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다. 이 문제는 단지 ‘메타’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 모두와 연관된 이슈다. 다행히 플랫폼의 독과점화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저커버그 CEO는 디지털 아이템을 소유하는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사용자여야 하며 특히 개발자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는 상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알고리즘 조작이다. ‘메타’는 공공의 안전보다 이윤 추구를 우선시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물론 이번 행사를 통해 저커버그 CEO는 관련 이슈들에 대해 몇 가지 선언적인 대책들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진정성을 느끼게 할 만큼 공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는 듯 보인다. 최근 브랜드 신뢰 조사기관 해리스 브랜드 플랫폼(Harris Brand Platform)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사명을 바꾼 이후 ‘메타’의 신뢰도지수가 16%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 무엇보다 ‘메타’가 메타버스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인으로부터의 신뢰 회복과 새로운 기업 문화 정착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 젊은 이용자층의 이탈은 뼈아픈 대목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는 “페이스북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명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메타는 그리스말로 ‘그 이상 또는 저 너머(beyond)’의 뜻이다. 저커버그 CEO의 말처럼 메타버스는 일시적인 신기루가 아니라 모바일 인터넷을 넘어서는 신세계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이런 맥락에서 ‘메타’가 페이스북을 넘어 메타버스로 갈아 탈 수(teleport)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