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건비·시간 줄이고 안전도 높이고”…건설업계 ‘모듈러’ 총력전

공장에서 주택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자재 재활용하고 현장 오폐수 줄여 친환경적

[비즈니스 포커스]

DL이앤씨 부산 공장에서 모듈러 주택이 조립되고 있는 모습. 사진=DL이앤씨 제공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금리 인상과 전세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에 대한 수요가 큰 탓도 있지만 집을 지을 때 투입되는 인건비와 시간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현재의 집은 예전처럼 생활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재택근무·교육이 일상화되면서 집은 더욱 스마트한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단, 이 과정에서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해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공사 기간도 늘어나는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모듈러 공법, 공사 기간 20~50% 단축

건설업계는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모듈러’를 선택했다. 공장에서 건물의 뼈대와 외장 마감, 내부 바닥과 벽지, 주방 가구와 화장실 위생 도기 등까지 모두 설치된 3차원 공간인 ‘모듈’을 만들어 이를 건설 현장에 운송하고 이 모듈을 단순 설치해 공사를 마무리하는 조립식 공법이다. 쉽게 말해 레고 블록을 쌓듯 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또한 현장 작업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현장과 공장에서 동시 공사 진행이 가능해 공사 기간을 20~50% 단축할 수 있다. 공장 제작으로 자동화 비율을 높여 고른 품질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장 작업도 최소화돼 공사 진행 시 나타날 수 있는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모듈러 공법이 이미 대중화된 상황이다. 고층 건물도 이 방식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 미국 브루클린에 2016년 완공된 최초의 고층 모듈러 32층 아파트, 지난해 영국 크로이든에 지어진 44층 모듈러 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주택을 구성하는 부품의 70% 이상을 공장에서 생산해 인건비·공사비가 크게 감소한다. 또 유지 관리비 절감 효과도 크다. 열이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게 시공하면 난방비를 최대 80%까지 줄일 수도 있다.

친환경적이란 장점도 눈에 띈다. 주요 자재의 80~90%를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오폐수나 쓰레기, 교통 혼잡 등의 문제도 최소화할 수 있다.

조립식으로 지어져 자연재해 등에 약할 것이란 고정관념에서도 자유롭다. 외부 충격을 각각의 모듈이 분산해 감당하기 때문이다. 내진 설계와 방염 처리도 필수적으로 진행돼 지진이나 화재에도 강하다.



모듈러 공법은 크게 3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가장 대중적인 방식은 ‘유닛박스’로 공장에서 제작된 박스형 구조 모듈을 적층해 건축하는 형태다. 공장에서 기본적인 구조 프레임과 전기·설비 매입, 내·외부 마감 작업까지 완료해 현장에 운송해 쌓는 과정을 진행한다.

‘패널라이징’은 박스 형태의 유닛이 아닌 바닥과 벽체 패널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유닛박스가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쌓는 형태라면 패널라이징은 공간을 구성할 벽체를 모듈로 만드는 것이다. 유닛박스와 비교해 운송에 대한 제한이 없고 평면 구성에도 자유롭지만 현장 조립이 필수여서 다른 방식의 모듈러 공법보다 공사 기간 단축이 적은 편이다.

‘인필’은 현장에서 철골과 철근 콘크리트로 뼈대를 쌓아 올리고 그 안에 박스 형태로 제작한 유닛을 넣는 공법이다. 서랍장에 서랍을 만들어 넣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모듈러 개발 속도…“조립·건축 시간 50% 단축”

한국에서도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모듈러 공법 개발에 속도가 붙고 있다. ‘선봉’은 DL이앤씨다. 2016년부터 소규모 골조 공사에 모듈러 건축 기술을 도입하는 등 관련 공법을 개발해 왔다. 2017년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용 구조물에 모듈러 공법을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아파트 경비실 공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올해 10월에는 모듈러 골조를 연결하는 볼트 기반의 커넥터를 개발했다. 기존에 사용되던 용접 방식보다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까지 DL이앤씨는 모듈러 구조와 외장·마감 등과 관련된 특허 19건을 출원했다.

현재까지 쌓아 온 노하우와 기술력으로 전남 구례의 귀농·귀촌주택과 충남 부여의 국민임대·행복주택 등 총 176가구의 모듈러 주택을 건설할 예정이다.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 전통 건축 방식 아파트와 모듈러 주택을 패키지로 묶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프로젝트 2건을 수주했다.

DL이앤씨는 ‘한국에서 가장 빠른 모듈러 공법’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전략이다. ‘조립·생산·현장 시공 시간 50% 단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DL이앤씨는 “모듈러 공법으로 기존 건설 방식의 개선과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며 “기능공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용접 방식 등과 비교해 모듈러 공법은 생산 속도가 더 빠르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다”고 밝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근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모듈러 공법으로 짓기로 한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의 시공자로 선정됐다. 경기 용인 기흥구 영덕동에 지어지는 이 주택은 13층 높이의 아파트로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중고층 모듈러 주택 실증 사업’의 일환이다.

106가구 규모로 전용 면적 18㎡의 원룸과 32㎡의 신혼부부용 주택 등으로 구성된다. 11월 착공에 들어가 내년 말 준공될 예정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13층 건물 중 스포츠 시설 등 주민 공동 시설과 편의 시설이 들어서는 하층부는 기존대로 콘크리트 공법을, 상층부는 모듈러 공법으로 시공한다. 통상 18개월이 걸리는 공사 기간은 15개월로 3개월 단축될 전망이다.

GS건설도 모듈러 공법에 진심인 모습이다. 지난해 8월 모듈러 전문 자회사인 ‘자이가이스트’를 설립한 후 올해 4월 자이가이스트 건축사사무소도 세웠다. 8월부터는 경기 하남 덕풍동 일대에 목조 주택을 짓기 위한 설계와 인허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하남 현장을 시작으로 한국에 목조 모듈러 주택을 선보인 후 시장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

또한 충북 음성의 14만8426㎡ 부지에 콘크리트 블록을 생산하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공장도 올해 준공했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는 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기둥·보·슬래브·벽체 등의 콘크리트 부재다. 이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해 공사 기간 등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모듈러 주택과 비슷한 공법이다.

GS건설 관계자는 “모듈러 주택은 공장에서 자재 대부분을 완성한 후 운송하고 나머지를 현장에서 완성하는 방식으로 건설 산업과 제조업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며 “최근 기존 건축 방식의 대안으로 부상해 지속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한국에서 기반을 다진 후 핵심 진출 지역으로 점찍은 유럽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호승 기자 y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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