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랩스·카카오브레인, AI 연구 허브로 활약…AI 서비스, B2B로 영역 넓혀
[스페셜 리포트]최근 가장 급격히 덩치를 불린 기업들을 꼽자면 단연 정보기술(IT) 기업들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가 총액이 불어나면서 양 사는 한국 주식 시장 시가 총액 3위와 4위에 나란히 자리 잡았다. 그만큼 IT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기세를 모은 이들은 콘텐츠·미디어·메타버스·블록체인 등 다양한 신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신사업의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인공지능(AI)’이다. IT 기업이 AI 기술력을 높이는 것은 향후 기업의 경쟁력을 올리는 것과 같다.
최근 IT 기업들이 새로 진출하는 콘텐츠·미디어·메타버스 등 다양한 신사업군에는 AI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AI 연구와 사업을 전담하는 자회사 등을 통해 AI에 대한 투자를 실행 중이다.시가 총액 3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3분기 성적표는 일단 카카오가 한 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카카오는 올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한 1조7408억원, 영업이익은 40% 증가한 168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네이버의 매출액은 26.9% 증가한 1조7273억원, 영업이익은 19.9% 증가한 3498억원을 달성했다.
카카오가 분기 매출에서 네이버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등 공신은 콘텐츠 부문이다. 게임·스토리·뮤직 등 카카오의 콘텐츠 부문 매출은 96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4% 늘어나면서 매출액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글로벌 학회로 번진 네이버·카카오 경쟁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카카오는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인해 일부 사업군을 정리해야만 한다. 또 영업이익에서는 네이버가 훨씬 선전했다. 시총 경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가올 4분기, 양 사의 활약이 큰 관심을 모으는 이유다.
단기적으로는 실적이지만 경쟁의 핵심은 결국 ‘기술력’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타버스·블록체인 등 신사업의 기반이 되는 것이 바로 AI와 같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술력이 거듭 진화한 AI는 AI 스피커에서 벗어나 각종 플랫폼과 B2B 비즈니스로 번지고 있다.
양 사의 기술력은 세계적 학회를 통해 증명받고 있다. 지난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제컴퓨터비전학회(ICCV)에서 네이버는 ‘역대 최대’로 많은 논문을 제출했고 카카오는 영상 인식 분야에서 우승했다. 컴퓨터 비전 분야의 최고 학회로 꼽히는 ICCV에는 매년 1600여 개의 논문이 제출된다.
2017년부터 ICCV에 참가한 네이버는 올해 13편의 논문을 정규 세션에 발표했다. 역대 최대로 많은 논문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네이버 측은 그중 한 논문은 상위 약 3%의 연구에만 주어지는 구두 세션 발표 기회를 얻었다고 밝혔다. 네이버 클로바 AI 랩(LAB)을 이끄는 하정우 책임리더는 “AI는 이제 연구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며 “서울대·연세대·튀빙겐대 등 국내외 연구 기관들과의 산학 협력을 활성화한 것도 이러한 성과에 기여 했다”고 말했다.
카카오브레인도 10월 18일 ICCV의 ‘2021 밸류 챌린지’에서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ICCV’는 오픈 전, 경쟁 챌린지를 진행하는데 카카오브레인이 참여한 ‘밸류 챌린지’는 AI의 영상 인식과 이해 능력을 평가하는 대회다. 비디오와 자연어를 동시에 이해하는 AI 모델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것으로, 영상을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AI 기술 수준이 당락을 가른다.
카카오브레인 비디오 언더스탠딩팀 신민철 AI 리서처는 “카카오브레인은 향후 비디오 인식 분야에서 새로운 방법론을 개발하는 등 영상 관련 혁신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매진할 것” 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카카오브레인은 지난해 국내외 저명 학회에 총 13편의 AI 논문을 등재했고 올 상반기에는 글로벌 학회에 총 9건의 논문을 등재하며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
네이버, ‘한국 최고’ AI 연구 기관 네이버랩스 앞세워양 사의 AI 기술은 세계적 학회에서 인정받음은 물론 최근에는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하며 편의를 높이고 있다.
네이버가 10월 27일 출시한 ‘웹툰 AI 파인더’ 베타 서비스가 창작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점 하나만 찍으면 그러데이션으로 색이 채워지는 방식인데 결과물의 질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웹툰을 그릴 때 채색에 드는 시간이 짧아질 것이다’, ‘세밀한 채색은 아직은 인간의 몫이다’, ‘웹툰 어시스턴트들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등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다.
‘웹툰 AI 페인터’는 스케치 맥락에 맞게 자연스러운 채색을 도와주는 서비스다. 창작자가 색을 선택하고 원하는 곳에 터치하면 AI가 필요한 영역을 구분해 자동으로 색을 입힌다.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기존과 달리 몇 번의 터치만으로도 채색이 가능해지면서 웹툰 작가들이 채색에 들어가던 노력과 시간을 줄여 창작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웹툰 AI 페인터’는 네이버웹툰이 3년 동안 연구·개발(R&D)한 기술들이 접목됐다. 딥러닝 기술로는 약 30만 장의 데이터셋을 활용해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배경 등 이미지 속 각 영역에 대한 특징과 다양한 채색 스타일을 학습시켰다. 특히 웹툰 이미지 학습을 통해 웹툰 채색에 특화되도록 개발해 개성이 뚜렷한 그림체도 깔끔하고 뚜렷하게 표현할 수 있다. 관련 기술 연구는 ‘글로벌컴퓨터비전학회(WACV) 2022’에 채택돼 발표를 앞두고 있다.
AI를 통해 창작자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네이버의 서비스는 또 있다. 네이버는 11월 5일 AI 음성 기록 서비스 ‘클로바노트’가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서비스를 선보인 지 1년 만에 이룬 성과로 가입자 수는 올해 1월 대비 13배 증가했다.
클로바노트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녹음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STT(Speech-To-Text) 서비스다.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기록할 때, 직장인들이 회의록을 작성할 때 음성으로 오간 여러 비즈니스 활동을 텍스트로 자동으로 바꿔 준다. 특히 9월 신학기가 시작된 이후 학교 강의와 그룹 과제에 클로바노트를 활용하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20대 주간 사용자가 전달 대비 4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클로바노트’가 입소문을 탄 이유는 정확도 높은 음성 인식 기술 덕분이다. 네이버가 자체 개발한 초대규모 AI ‘하이퍼클로바’ 기반의 음성 인식 기술과 화자 인식 기술이 적용돼 정확도 높은 음성 인식과 화자 분할이 가능하다는 것이 네이버 측의 설명이다. 지난 8월부터는 한국어 외에 영어와 일본어 등 다국어 인식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더해 클로바노트 팀은 터치 한 번으로 녹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위젯을 출시하고 화상 회의 솔루션인 줌(Zoom)과 연동하는 등 사용자 편의를 위한 기능도 계속 강화하는 중이다.
AI를 활용한 다양한 플랫폼의 출시로 네이버의 AI 기술은 이미 실생활에 침투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AI가 삶의 편의를 높이는 여러 플랫폼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네이버가 꾸준히 투자해 온 AI 기술력이 한몫했다. 네이버는 지난 수년 동안 매출의 약 25%를 R&D에 투자해 왔고 특히 AI 분야 투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17년 분사한 네이버랩스는 ‘한국 최고 AI R&D 기관’으로 여겨진다. 증권가에서는 네이버랩스의 가치를 2조원 정도로 파악한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네이버랩스는 매출액이 10억원 미만이지만 로보틱스·자율주행·메타버스와 같은 초고성장 차세대 산업에 활용할 기반 기술을 개발한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누적 출자금은 2600억원으로 AI·로봇·빅데이터·정밀지도·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을 연구하고 있다.
네이버랩스의 연구 결과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2년 전 네이버랩스가 선보인 세계 최초의 5세대 이동통신(5G) 브레인리스 로봇 기술이 올해 말 완공되는 네이버의 제2 사옥에서 확대될 예정이다. 네이버랩스는 빌딩 단위에서 5G 기반의 자율주행 로봇 서비스를 위한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높인다. 네이버랩스는 지난 10월 19일 자사 오피스에서 로봇 연구를 위해 허가받은 5G 실험국을 제2 사옥으로 이전하는 것을 허가받았다고 밝혔다. 2019년 1월 세계 가전 박람회(CES)에서 첫선을 보인 브레인리스 로봇이 투입될 예정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로봇 제어 시스템 ARC와 5G 망을 연동해 제2 사옥의 로봇을 제어한다.
AI B2B 영역 넓히는 카카오
올해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겪은 카카오는 3분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카카오를 향한 규제는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업종 대신 IT 기업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본분에 해당하는 것이 AI일 것이다. 카카오는 2017년 2월 설립한 카카오브레인과 2019년 12월 설립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AI 관련 연구와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머신러닝 방법론, 로보틱스, 강화 학습,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및 합성, 의료 진단 등 한국 AI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한국기원 등 국내외 다양한 기관과 학계, AI 커뮤니티와 제휴, 교류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기업 파트너들과 전 산업 분야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돕는다. 출범 후 가전·문화·레저·헬스케어·물류 등 다양한 이종 산업과 협력을 통해 기업 간 거래를 하고 있다. 2020년 9월 종합 업무 플랫폼 ‘카카오워크’를 선보였고 올해는 카카오의 10년간 데이터 구축 기술과 운영 노하우가 집약된 클라우드 솔루션 ‘카카오i 클라우드’를 선보였다.
김현용 애널리스트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대해 “후발 주자이지만 ‘올인원 업무 플랫폼’인 카카오워크와 카카오 아이클라우드, 여기에 AI 기반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는 카카오 아이인사이트 등 포괄적인 라인업을 갖추고 선두 기업을 빠르게 추격 중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최근 카카오의 AI 관련 사업 중 눈에 띄는 것은 ‘B2B’다. 카카오는 여러 기업과 협력을 맺고 다양한 산업군에 AI를 이식 중이다. AI B2B 사업은 카카오와 네이버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신흥 시장’으로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게 여겨진다.
카카오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2017년 초부터 커넥티비티 시스템 개발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첫 결과물인 ‘서버형 음성 인식’은 음성으로 목적지를 입력할 수 있는 기술로, 2017년 9월 제네시스 G70를 시작으로 이후 출시된 현대차·기아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과거 출시 차량에도 대거 적용했다.
2019년 3월에는 ‘대화형 음성 인식 비서 서비스’에 카카오의 AI 플랫폼인 ‘카카오i’ 기술을 접목해 음성 인식으로 다양한 비서 및 차량 제어 기능들을 구현될 수 있도록 하고 쏘나타에 처음 탑재했다. 뉴스 브리핑부터 날씨, 영화 및 TV 정보, 주가 정보, 일반 상식 등 다양한 정보와 기능을 음성 명령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에어컨, 히터 작동, 바람 방향 조절 등도 음성 명령으로 가능하다. 카카오와 현대자동차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주요 서비스들을 계속 추가하고 음성 인식 기술의 고도화는 물론 적용 차량 범위도 확대해 갈 예정이다.
카카오의 AI 기술은 스마트 홈을 만드는 데도 활용된다. 카카오는 포스코건설·GS건설·삼성물산·HDC산업개발·호반건설·코맥스와 제휴하고 카카오i를 아파트에 적용해 스마트 홈 시스템을 구축해 나간다.
포스코건설이 지은 평택 소사벌 더샵(2018년 입주) 전 가구에 카카오i가 적용돼 있다. 입주민들은 조명·난방·가스밸브·환기팬·엘리베이터 호출 등 다양한 스마트 홈 기능을 카카오 미니를 통해 음성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제어할 수 있다.
현재 건설 중인 많은 단지들에도 카카오i가 적용될 예정이다. HDC산업개발(아이파크)과는 카카오i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홈 시스템을 아이파크 아파트 내에 빌트인으로 탑재해 스마트 스피커 등 별도의 장치 없이 아파트의 사물인터넷(IoT)과 각종 가전제품 제어가 가능해진다. 2020년 11월 인터폰·비디오폰·홈네트워크 시스템과 시큐리티를 연동하는 융·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코맥스’와 협업을 2차 MOU를 맺고 월패드뿐만 아니라 신축 공동 주택 등 다양한 생활 주거 공간에 들어가는 코맥스의 다양한 스마트 홈 제품에 카카오i를 탑재, 음성 명령으로 다양한 서비스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