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위탁 생산 등으로 사상 최대 실적 앞둬…자체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순항
[비즈니스 포커스]SK바이오사이언스가 실적 ‘퀀텀 점프’를 눈앞에 뒀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2018년 SK케미칼에서 분사한 백신 전문 기업이다. 2008년부터 백신 한 우물만 공략해 왔다. 세계 최초 4가 세포 배양 독감 백신과 한국 최초 3가 세포 배양 독감 백신, 세계 둘째 대상포진 백신, 한국 둘째 수두 백신을 보유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올해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지난해의 4배 이상이다. 기존 자체 백신 제품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위탁 생산 사업 실적이 더해진 결과다. 내년에는 개발 중인 ‘국산 코로나19 백신’ 상용화 등으로 매출이 더욱 늘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글로벌 백신·바이오 허브로 진화
SK바이오사이언스는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파이프라인) ‘GBP510’의 우수한 임상 1·2상 결과를 확보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임상 3상이 순항 중인 가운데 성공적 임상 1·2상 결과도 확보하면서 ‘한국 1호’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GBP510은 SK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워싱턴대 항원디자인연구소(IPD)와 공동 발굴하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팬데믹 면역 증강제(Adjuvant)’ 기술을 활용해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파이프라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고려대 구로병원 등 14개 기관에서 건강한 성인 328명을 대상으로 GBP510을 투여하는 임상1·2상을 진행했다. 면역 증강제를 함께 투여한 투약군 99% 이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중화항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 GBP510 투약과 관련성이 있는 중대한 이상 반응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안전성은 물론 충분한 내약성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국제백신연구소(IVI)와 함께 유럽·동남아 등에서 다국가 임상 3상 진행을 위한 국가별 승인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임상에 진입한 베트남에 이어 이르면 11월 안에 모든 대상 국가에서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8월 첫 투약과 함께 시작한 임상 3상을 고려대 구로병원 등 14개 임상 기관이 진행하고 있다. 당초 계획보다 5배 이상 많은 500여 명의 한국인에게 투약을 완료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4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을 통해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한국 보건 당국의 신속 허가를 받는다는 목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전 적격성 평가(PQ) 인증과 해외 국가별 긴급 사용 허가도 획득할 계획이다.
GBP510은 국제 민간 기구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 유망한 코로나19 백신 파이프라인을 지원하기 위해 가동한 ‘차세대 코로나19 백신(Wave2)’ 프로젝트 대상에 선정된 바 있다. GBP510은 상용화 뒤 백신 보급 국제 연합체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수억 회 접종 물량이 전 세계에 공급된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백스 퍼실리티 외에도 국가별 허가 과정을 거쳐 GBP510의 자체 생산·공급 계획을 수립해 세계 시장에 제공할 예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앞서 지난 10월 경북 안동의 백신 공장 ‘L하우스’ 원액 생산 시설 일부를 CEPI가 지원하는 기업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활용하는 ‘시설 사용 계약’을 연장하기도 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에 따라 내년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하게 됐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CEPI와 맺은 동일한 계약으로 미국 바이오 기업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한 바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노바백스 백신 외에도 지난해 7월 아스트라제네카와 영국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원액과 완제를 위탁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수억 회 분량의 백신을 전 세계에 공급했다.
올해 영업이익 전년 대비 1100% 증가 전망
SK바이오사이언스가 글로벌 코로나19 백신 ‘생산 기지’로 낙점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10여 년간 우직한 투자를 통해 한 우물만 파 온 노력의 결실이라는 평이다. 최신 백신 개발을 완료하는 즉시 L하우스에서 대량 위탁 생산이 가능한 측면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SK케미칼은 2006년 세계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방 의학의 첨병인 백신 사업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과감한 결단을 통해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하기로 했다. 2008년부터 인프라 구축과 연구·개발(R&D)에 약 5000억원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안동에 백신 공장 L하우스를 완공하고 프리미엄 백신 개발 전략을 추진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자체 독감 백신 개발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서기 전부터 국내외에서 여러 성과를 이뤄 왔다. 2018년 2월 ‘세포 배양 방식의 백신 생산 기술’을 글로벌 백신 리더인 사노피 파스퇴르가 개발하는 ‘범용 독감 백신’에 적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이다.
범용 독감 백신은 바이러스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염기 서열을 표적으로 해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까지 예방할 수 있는 차세대 독감 백신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사노피 파스퇴르와 체결한 기술 이전 및 라이선스 계약 규모는 최대 1억5500만 달러로, 한국 기업의 백신 기술 수출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다수의 글로벌 기업 및 국제 기구와 ‘블록버스터급’ 백신 개발을 위해 협업하고 있다. 사노피 파스퇴르와 공동 개발 중인 폐렴구균 백신 파이프라인 ‘GBP410’은 미국에서 임상 2상 중이다.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BMGF)의 지원으로 국제 비영리 단체 패스(PATH)와 개발 중인 소아 장염 백신 파이프라인 ‘NBP613’도 임상 3상 단계다. IVI와는 수출용 장티푸스 백신 파이프라인 ‘NBP618’의 품목 허가 신청을 완료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백신 개발과 생산, 상업화 과정에서 축적해 온 R&D 플랫폼과 바이오 의약품 공정·생산 플랫폼을 활용해 제품군을 확대하고 사업을 다각화할 것”이라며 “세계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금융 정보 제공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1월 17일 기준 SK바이오사이언스의 올해 개별 기준 매출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334.8% 증가한 981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1100.3% 껑충 뛰어 4525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에는 자체 코로나19 백신 상용화 등으로 매출 1조7670억원, 영업이익 6129억원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예측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최근 기업공개(IPO)를 통해 확보한 공모 자금을 바이오 의약품 등의 추가 위탁 생산을 위한 연구소 및 생산 설비 확충과 신규 파이프라인 발굴, 기술 협력을 위한 해외 각국 정부 및 국영 기관과의 파트너십 체결, 기초 백신 포트폴리오 확장 등에 활용해 글로벌 백신·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