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불안감·자녀 고민도 회사와 상담…‘마음케어’ 나선 기업들

직원의 행복이 생산성 좌우
심리 상담으로 업무 성과 높이고 ESG까지 잡는다

[스페셜 리포트]


LG화학 직원이 모바일 채팅(왼쪽)과 전화로 상담받고 있다. 사진=LG화학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적 관계 감소, 활동량 저하로 불안·우울·고립감·무력감·스트레스 등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직장인들의 멘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직원들의 심신 건강이 업무 생산성에 직결되는 만큼 기업에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직원들이 겪는 다양한 고민을 상담해 주며 ‘심리 방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상사와의 갈등, 성과급 불만, 고용 불안 등 직장 생활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전후로 재택·원격근무, 화상 회의가 일상화되며 직장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국갤럽이 올해 3월 전국 만 25~54세 직장인 12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절반가량이 ‘업무 스트레스가 늘었다(52%)’, ‘회사 매출 및 경영 상황이 나빠졌다(52%)’고 답했다. 42%는 ‘직장 생활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반적으로 나빠졌다’고 평가했고 37%는 ‘실직 가능성이 높아졌다’, 32%는 ‘업무 효율성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직장인 52%, 코로나19 이후 업무 스트레스↑
직원 심신 건강 놓치면 생산성에도 큰 손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산성 증대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생산성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는 질병 중 하나가 바로 우울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 정신 질환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16조 달러로 예상되며 세계적으로 우울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연간 1조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 인원은 코로나19 발병 전인 2019년과 비교해 6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한 심리 상담은 920% 급증했다.

실제 환자도 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21 건강 생활 통계 정보에 따르면 우울증·수면장애(불면증)·공황장애·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등 주요 정신과 질환 진료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늘었다. 특히 우울증 환자 수는 2019년 79만8787명에서 2020년 83만1721명으로 4.1% 증가했다.

직원들의 심신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조직의 성과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아플 때 참고 출근하는 것과 결근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업무 생산성에 더 부정적일까.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결근·조퇴·지각 등의 노동 시간 손실을 의미하는 앱센티즘(absenteeism)보다 어떻게든 참고 출근하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 노동 생산성을 더 갉아먹는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모열 교수(교신저자)와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이동욱 연구강사(제1저자) 연구팀이 2020년 1~2월 만 19세 이상 성인 임금 노동자 3890명을 대상으로 노동 시간과 건강 관련 노동 생산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 프리젠티즘이 기업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에서는 직원이 일단 정상 출근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컨디션은 업무 집중도·완성도·정확도 등을 크게 떨어뜨려 전반적으로 생산성 저하를 불러온다.

생산성 저하는 곧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 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내 프리젠티즘을 해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득이 되는 투자다. 기업이 직원들의 심신 건강을 챙겨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기업들이 기존에는 직원들의 심신 건강을 위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단순 사내 복지로 생각했다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추세다. 심리 상담 창구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노동 환경 조성 등을 통해 직원들의 심신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건강 악화로 인한 직접 비용과 결근율 감소와 같은 간접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기업 생산성 향상, 산업 재해 감소 등 기업 활동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에서 리조이스 심리 상담소를 운영 중이다. 사진=롯데쇼핑 제공


선진국에선 EAP로 생산성 관리
일본, EAP 우수 기업에 각종 세제 혜택 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직원들의 심신 건강 관리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AP)’이 주목받고 있다.

EAP는 기업 내 임직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업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 대해 상담·컨설팅·코칭 서비스 등을 연계해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지원하는 기업 복리 후생 제도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EAP협회에서는 EAP를 생산성 문제가 제기되는 직무 조직을 돕고 건강 문제, 가족 문제, 법·재정 문제, 알코올·약물 문제, 정서 문제, 스트레스 등 업무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사업장 기반의 프로그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 EAP는 1999년 듀폰코리아를 시작으로 삼성그룹·포스코·LG·SK 등이 사내 상담실과 복지문화센터를 도입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아직 정신 건강 위주의 워크숍과 심리 상담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선진국에서는 직원들의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과 솔루션까지 제공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EAP 선진 시장인 미국에서는 1940년대 제조업 노동자들의 알코올 중독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했던 알코올 중독 프로그램(OAP)이 EAP의 시작이었다.

현재 미국 100대 기업 중 90% 이상, 500대 기업 중 95% 이상이 EAP를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미국 EAP 시장은 4조원으로 추산되며 단순 노동자 수로만 비교하면 한국 EAP 시장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인 4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광고 회사 덴쯔 직원이 초과 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이후 회사가 유족에게 2억5000만 엔(약 25억7000만원)을 배상한 것을 계기로 EAP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2007년 기업이 임직원의 정신 건강 대책 수립을 의무화하는 관련 법을 제정했고 2015년 직원 수 50명 이상의 사업장에 대해 1년에 한 번씩 스트레스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EAP 우수 기업에는 금리 우대나 세액 공제 등 혜택을 주면서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멘털 케어 잘하는 기업이 ESG 등급도 우수
‘하모니아’ 운영 중인 SK이노베이션 ‘A+’ 등급

직원들의 행복은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기업이 직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교육하며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직원들의 행복감이 곧 생산성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체질량지수(BMI)로 비만도를 측정해 임직원의 건강 관리에 힘쓰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이토추상사는 ESG 평가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한·미·일 주요 기업 ESG 등급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이토추상사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ESG 등급 평가에서 기업 행태·제품 안전 및 품질·건강 및 안전 등 항목에서 최상위 등급인 ‘AAA’ 등급을 획득했다.

주목할 부분은 건강 및 안전 항목이다. 이토추상사는 구내식당에서 건강한 식단을 제공해 직원들의 비만도를 2% 줄였다. 전 직원의 건강검진을 지원해 건강검진 완료율 100%를 달성했고 중증 질병에 대한 치료비를 지원해 암 또는 기타 질병으로 인한 퇴사율 0%를 달성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건강 관리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도 마련했다. 구체적인 목표 설정과 계량화할 수 있는 지표를 통해 임직원의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이토추상사는 직원들의 심신 건강을 챙기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 가능 경영 체계를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생산성 향상 효과까지 극대화할 수 있었다.


채팅과 전화 상담이 가능한 트로스트 모바일 앱. 사진=LG화학 제공


대표적 ESG 평가 지표인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SI)에서도 노동 지표(3), 인권(5), 인적 자원 개발(3), 인재 확보와 유지(4), 기업 시민 정신(2), 보건·안전(9) 등 인적 자원(HR) 분야가 100점 만점에 36점으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으로 인해 생긴 질병 또는 극단적 선택으로 기업 이미지가 손상되고 관련 소송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직원들의 정신 건강 관리를 사전에 제대로 하지 못하면 ESG 리스크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6년 183건에 불과했던 정신 건강 관련 산업 재해 신청 건수는 지난해 517건으로 급증했다.

한국에서도 직원들의 심신 건강에 힘쓰는 기업들이 높은 수준의 ESG 등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ESG 경영에서 인적 자원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발표한 2021년 ESG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주요 기업들을 살펴보면 직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줄이고 다양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 상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전문 상담센터 14개, 마음 건강 클리닉 10개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20개 생산법인에서 11개의 전문 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다. 공인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상담진과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며 임직원들의 스트레스와 고민에 대해 일대일 상담을 진행한다.

SK그룹에서는 최종현 선대 회장 때부터 내려오는 건강관리법인 ‘심기신수련’ 수업을 통해 임직원 심신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강좌가 중단되자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월 1회 점심시간을 활용한 온라인 마음 챙김 강좌를 운영해 임직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05년부터 직원들의 멘털 관리를 위해 사내 상담센터 ‘하모니아’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용자 수가 급증해 지난해 상반기 862건에서 올해 상반기 1194건으로 약 38% 늘었다. 임직원 행복 증진이 ESG 사회(S) 항목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하모니아는 SK이노베이션의 ESG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는 신입 사원 대상의 심리 상담 치료 ‘사이-다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며 입사 초기 적응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SK하이닉스는 직원의 심리적 안정감이 업무에서 본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고 ‘마음산책상담소’를 2011년부터 운영하며 직원들의 직무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음산책상담소에는 현재 총 10명의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의 임선영 상담사는 “집에서 부부 관계나 자녀에 대한 고민이 심하면 회사에서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없고 반대로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집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며 “상담 주제를 정해 놓지 않고 사적인 영역의 고민은 물론 회사 생활 중 받게 되는 여러 형태의 업무 스트레스와 심리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이 컸던 국가 중 하나인 인도에 있는 인도법인 직원들을 위해 ‘해피 콜링’ 시스템을 운영했다. 회사 인사관리팀이 4~5일마다 직원 개개인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과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 직원과 가족들이 적시에 적절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LG화학은 전 세계 2만여 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8개 언어가 지원되는 24시간 비대면 글로벌 심리 상담 프로그램 ‘더(the) 좋은 마음그린’을 도입했다. 심리 상담 스타트업 휴마트컴퍼니의 모바일 플랫폼 ‘트로스트’ 앱을 통해 실시간 채팅 등 비대면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ESG 5대 프로그램 중 하나로 심리 상담을 포함시켰다. 직원들뿐 아니라 일반 고객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했다. 롯데쇼핑은 2017년부터 여성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기 위해 심리 상담,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리조이스’ 캠페인을 펼쳐 왔다.

롯데인재개발원은 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통해 코로나 블루를 진단하고 심리 상담,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원격 피트니스 클래스, 캠페인 등을 진행하는 ‘롯데 회복 탄력성 프로그램’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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