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文대통령-이재명 후보 관계가 묘하다

李, 정부 비판 강도 높이며 대통령과 선 긋기…“문재인 정부 성공 최선 다할 것”에서 돌아서

[홍영식의 정치판]

사진=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0월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나 차담을 나누고 있다. 최근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어 정권 말 문 대통령과 이 후보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 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묘하다. 더 정확히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대선 후보와의 관계다. 정권 말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을 꿈꾸는 사람은 긴장 관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현재 권력인 대통령은 최소한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자신과 소속 정당을 주종 관계, 적어도 자신의 말발이 먹히는 관계이길 바란다. 그래야 국정이 끝까지 원활하게 돌아간다고 믿는다. 여당부터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차기에 줄을 대려는 속성을 가진 공무원들에게 대통령 지시가 먹혀들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에서 모두 경험한 대로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친문재인 의원들이 당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송영길 신임 대표가 취임한 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청와대에서 5월 14일 열린 문 대통령과 민주당 새 지도부 간담회 자리에서 송 대표는 “모든 정책에 당의 의견이 많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뒤로 빠지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는 원전과 관련, “소형 모듈 원자로(SMR) 분야나 원전 폐기 시장 같은 것을 한·미 간에 전략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성역’으로 여겨지는 탈원전 정책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는 내심 불쾌해 했다고 한다. 송 대표가 문 대통령 임기 초·중반이라면 이럴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었다.

경선 승리 뒤 청와대 향해 서서히 비판 칼날 세워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의 레임덕 징후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의 뒤에 철옹성 같은 ‘찐문’들이 버티고 있어 레임덕 징후는 시기상조라고 보는 기류가 강했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동산 등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민심이 악화일로를 걸었지만 후보들은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삼갔다. 역시 문 대통령이 당원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경선 승리 직후인 10월 26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가진 회동에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역사적 정부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대선(2017년) 때 제가 모질게 했던 것을 사과드린다”고 하는 등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이 후보가 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징후들이 뚜렷하다. 그 무엇보다 답답한 지지율이 좀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권 교체 여론도 심상치 않다는 것도 차별화를 꾀하는 한 요인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는 단순히 경선 승리에 따른 컨벤션 효과로만 치부하기엔 간단하지가 않다. 물론 윤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국민의힘과 윤 후보의 장점이 부각된 결과라기보다 컨벤션 효과와 함께 이 후보와 민주당에 대한 민심의 반작용도 일부 반영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른바 스윙보터, 캐스팅 보터로 꼽히는 ‘2030세대’와 중도층의 이탈이 두드러진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지지층에 더해 이들의 표심을 잡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가망이 없다. 이들의 이탈은 이 후보에 대한 반감도 있겠지만 문재인 정부의 실정 원인이 크다는 것이 이 후보 측의 판단이다.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 특히 그렇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서민과 청년층의 민심 이반이 두드러진다. 거의 대부분의 여론 조사에서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부동산 정책이 1순위로 꼽히고 청년층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고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차별화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후보는 11월 2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서부터 “높은 집값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국민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께 너무 많은 고통과 좌절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난 11월 17일 대학 학보사 기자들을 만나 “민주당이 인정받지 못하고 불신받는 것 중 제일 큰 게 부동산 문제”라며 “평생 벌어도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불안감을 만든 결과에는 분명히 책임질 수밖에 없고 민주당 주요 구성원으로서 또 한 번 사과드린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11월 23일엔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억제에만 신경 썼다”고 날을 세웠다.

현 정부와 문 대통령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다. 하준경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전환적 공정성장위원회’ 위원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 집권 후 돈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못해 부동산에 고였고 집값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 후보가 부동산 고통에 대해 사과한다고 해놓고 공약은 현 정부보다 오히려 규제 강도를 더 높였다는 점이다. 이율배반이 아닐 수 없다. 국토보유세 신설,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어쨌든 이 후보의 현 정부와의 거리 두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 1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소에서 “공공 선박을 조기 발주하는 약속은 지켰으나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구조 조정에 대해 노조가 원하는) 결과를 못 만든 데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와대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 후보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는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애초부터 무리였다. 이 후보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초과 세수를 활용하자고 했다. 하지만 초과 세수는 법적으로 지방교부금과 나랏빚을 갚는 데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 이 때문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통령 “부동산 안정”에 이 후보 “부동산 고통 사과”

문 대통령이 11월 20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로 줄어든 고용이 99.9% 회복됐다”는 등의 자화자찬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 다음날 이 후보는 당 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며 “저와 민주당은 따끔한 회초리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사과’ 단어를 여러 차례 꺼냈다.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연일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문 대통령과 뚜렷이 구분된다. 11월 8일엔 “청년이 희망을 잃은 데는 민주당과 집권 세력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조국의 강은 건너긴 건너야 한다”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과도한 수사로 피해를 봤어도 그게(의혹) 사실이라면 책임 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현 정부와의 선 긋기를 통해 명실상부한 여당 ‘원톱’이 대선 후보인 자신이란 것을 뚜렷하게 각인하려는 의도도 있다.

문 대통령과 이 후보 사이가 대부분의 역대 정권 말 당청 관계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지는 미지수다. 민주화 이후 6개 정권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5명의 대통령이 정권 말 여당을 탈당한 바 있다. 이 후보는 현재까지 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붙는 모양은 피하고 있다. 홍 부총리 등 내각을 겨냥하면서 우회로를 택하고 있다. 역대 정권 말에 비해 비교적 높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여당과 여당 지지층에선 친문 세력을 무시할 수도 없다. 다만 대통령과 본인 지지율 답보 상태가 지속되거나 하락할 때는 청와대에 반기를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 탈당의 흑역사가 이번에도 반복될까.

홍영식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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